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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극면 방축리 권제묘지(笙極面 防築里 權踶墓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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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2021. 10. 13.

 

 

권제는 본관은 안동. 자는 중안(仲安), 호는 지재(止齋). 아버지는 권근(權近)이다. 부인은 판사 이휴(李携)의 딸이다.  음보로 경승부주부(敬承府主簿)에 기용되었고 후에 감찰이 되었다. 1414년(태종 14) 문과에 급제하고, 병조정랑·예문관응교를 역임하고, 1416년(태종 16) 성균관사예, 1418년 의정부사인·전사소윤·세자시강원문학을 지냈다. 1419년(세종 원년) 사헌부집의가 되어 사은사(謝恩使)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승정원동부대언·승정원좌대언을 지냈다. 1423년(세종 5) 모친상을 마친 후 집현전부제학에서 예조참판·대사헌·함길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이어 평안도관찰사겸평양부윤, 1430년(세종 12) 경창부윤, 1431년 경기도관찰사, 1433년 예조좌참찬·예조판서, 1435년 이조판서에 올랐다. 1438년(세종 20) 예조판서에 있으면서 계품부사(啓稟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상으로 전지 30결, 노비 3명을 받았다. 예문관대제학·지중추원사를 거쳐, 1439년 겸집현전제학, 1440년 동지중추원사, 1441년 지중추원사겸성균대사성을 지냈다. 1442년(세종 24) 동지중추원사·겸승문원제조·지춘추관사, 1443년 좌참찬·겸이조판서, 1445년 1월에 의정부우찬성에 승진되었으나 4월 16일 향년 59세로 별세하였다.  권제는 총명하고 학문이 넓고, 말을 잘하고 시사 말하길 좋아하였다. 그러나 첩에게 혹하여 처자 대접을 박하게 하여 가도(家道)가 바르지 못해 세상에서 이를 좋지 않게 여겼다.  「세년가(世年歌)」가 있다. 1437년(세종 19)에 『고려사』 편수에 참여하였으며, 1445년(세종 27)에 정인지·안지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 10권을 지었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능안에 있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312-3번지[갑산로135번길 138]에 부조묘를 건립하였는데 쇄락하여 1901년에 재건되었고 1960년에 중수되었다. 2003년 4월 24일 음성군향토문화유적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제의 묘비.  권제는 세종 때 집현전부제학, 사헌부대사헌, 한성부윤, 경기도관찰사, 이조판서, 우찬성을 지냈다. 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편찬에 참여하였다.  전체 높이 170㎝, 비신 너비 59.5㎝의 크기이다. 대석을 제외한 비신과 상단 장식을 한 돌로 만들었다. 묘비 상단에는 7엽의 연화문과 연잎을 3단으로 말아올렸고, 그 위에는 보주(寶珠)를 조각하였다.  묘비의 앞면 위쪽에는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 하였고, 그 아래에 5행으로, ‘정통을축사월십육일졸 증영의정부사길창부원군행우찬성문경공지제선생권공제지묘 구월초삼일장(正統乙丑四月十六日卒 贈領議政府事吉昌府院君行右贊成文景公止齋先生權公踶之墓 九月初三日葬)’이라 쓰여 있다. 뒷면에는 모두 6행으로 “공은 안동권씨인데 어릴 적 이름은 권도(權蹈)로 양촌 문충공 권근(權近)의 아들이다. 갑오년의 친시에서 1등으로 합격하였다. 아들 권지(權摯)는 우부승지이고 권람(權擥)은 길창군판서이고 권반(權攀)은 판사이고 권미(權靡)는 의절장군이고 권설(權挈)은 고사이고 권경(權擎)은 부정이다. 딸 셋은 각각 목사 박대손(朴大孫)·현감 김모(金模)·증참판 한명진(韓明溍)에게 출가하였다. 1457년(세조 3) 3월 4일에 비석을 세운다(公安東人古諱蹈陽村先生文忠公近之子 甲午親試苐一名 男摯右副承旨 擥判書吉昌君 攀判事 靡宣節將軍 挈庫使 擎副正 女牧使朴大孫 縣監金模 贈參判韓明溍 天順丁丑三月初四日立石)”라고 기록하였다. 글자체는 모두 해서(楷書)이다. 권제의 묘소는 면적이 대략 460㎡이고, 8각분 묘소 앞에 묘비와 상석을 두고 있으며, 앞쪽에 장명등 1기와 문관석 1쌍을 갖추었다. 봉분은 권근의 묘소와 같은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