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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극면 방축리 권람묘지(笙極面 防築里 權擥墓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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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2021. 10. 1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 할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이며, 아버지는 우찬성 권제(權踶)이다. 권람(權擥)[1416~1465]은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학문이 넓었으며, 뜻이 크고 기이한 계책이 많았다. 불교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활을 잘 쏘고 문장에 뛰어났다. 35세까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있다가, 1450년(문종 즉위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감찰이 되었고, 이듬해 집현전교리로 『역대병요(歷代兵要)』의 음주(音註)를 편찬하며 수양대군과 가까워졌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한명회(韓明澮) 등과 함께 김종서(金宗瑞)·황보인(皇甫仁) 등 대신들을 제거하고 세조 집권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에 책록되었고, 이어 승정원동부승지에 특진되었다. 세조가 즉위하자 이조참판에 발탁되고, 이어 좌익공신(佐翼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벼슬은 1459년(세조 4) 좌찬성과 우의정을 거쳐, 1462년(세조 8) 5월 좌의정에 올랐다. 시문집으로 『소한당집(所閑堂集)』이 있고, 할아버지 권근이 지은 응제시(應製詩) 24편에 주석을 붙인 『응제시주(應製詩註)』가 유명하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다. 시호는 익평(翼平)이며, 세조묘(世祖廟)에 배향되었다.

 

 

 

권람의 본관은 안동, 자는 정경(正卿)이다. 양촌 권근의 손자이며 문경공(文景公) 권제(權踶)의 아들이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참모로서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1등 공신이 된 후 좌의정에 올랐고 이듬해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이 되었다. 화강암 1매로 만들어졌다. 전체 높이는 194㎝로, 비신 높이 137㎝, 너비 60㎝의 크기이다. 묘비 상단에는 7엽의 연화문을 조각하였고, 연잎을 3단으로 말아올렸다. 꼭대기에는 보주(寶珠) 장식을 달았다.  묘비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 하였고, 그 아래에 7행으로 종서를 하였다. 그 내용은 ‘成化乙酉二月初六日卒 輸忠衛社恊策靖難同德佐翼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監春秋館事 吉昌府院君諡翼平公所閑堂權先生擥正卿之墓 四月二十一日葬’이다. 뒷면에는 “공은 본관이 안동인데 문경공 지재 권제(權踶)의 아들이다. 경오년에 문과 1등으로 합격하였고 정난좌익공신에도 모두가 1등에 봉하여졌다. 아들 권걸(權傑)은 보공장군 행호군이고 권건(權健)은 어리다. 큰딸은 정난공신 가선대부 청원군 한서구(韓瑞龜)에게 시집갔고 둘째 딸은 절충장군겸도사 박사화(朴士華)에게 시집갔으며 셋째 딸은 승의랑 감찰 신억년(申億年)에게 시집갔으며 넷째 딸은 절충장군 부사인 남이(南怡)에게 시집갔으며 다섯째 딸은 진용교위겸록사인 김수형(金壽亨)에게 시집갔는데 나머지는 모두 어리다. 1465년(성화 1) 5월 5일에 비석을 세운다(公安東人止齋先生文景公踶之子 庚午文科第一名 靖難左翼皆居一等 男傑保功行護軍 健幼 女適韓瑞龜靖難功臣嘉善淸原君 次朴士華折衝兼都事 次申億年承議監察 次南怡折衝兼副使 次金壽亨進勇校尉兼錄事 餘皆幼 成化元年五月初五日立石)”라고 새겨져 있다.  권람의 묘소는 권근 삼대묘소 중 가장 아래에 있다. 묘역은 480㎡의 면적에 원형 봉분과 묘비, 상석, 장명등, 문인석 등을 갖추었다. 봉분 앞쪽은 평면 사다리꼴 모양의 호석을 들여쌓고 묘비 2기를 세웠다. 앞쪽에서 보아 왼쪽 것이 권람의 묘비이고, 오른쪽이 고성이씨의 묘비이다. 묘비 앞쪽에는 상석을 하나만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