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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면 인차리 신규식생가(加德面 仁次里 申圭植生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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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2021. 12. 3.

 

가덕면 인차리에 위치하고 있는 예관 신규식선생의 생가입니다.이 곳은 예관 신규식 선생의 생가 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조차도 모르면서 조카들 이름으로 해 놓은 표식이 있습니다. 신형호(1891년 생)는 예관 신규식 선생의 장조카 이며 1912년 예관 선생과 중국 손문의 도움을 받아서 미국으로 망명한 도산 안창호 등과 독립투쟁을 하였고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신규식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에 크게 기여한 독립운동가입니다.  구한말 계몽운동을 펼치던 중 1905년 을사오조약을 강제 당하자, 이에 분개하여 자결을 기도, 그 여파로 오른쪽 눈을 실명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상해로 망명, 중국의 신해혁명에 참가하여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였다. 1912년 이후 동제사, 신한혁명당 등 각종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 주도하였고, 1917년에는 「대동단결선언(大同團結宣言)」을 발표하였다.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충청도 의원으로서 임시의정원 부의장에 선출되었고, 법무총장을 역임하였다. 특히 1921년에는 국무총리 대리겸 외무총장으로서 손문의 광동정부와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초기 임시정부의 활동에 크게 기여하다가 이듬해 상해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한민족의 혼을 강조한『한국혼(韓國魂)』을 저술하였다. 사후 상해 만국공묘에 안장되었다가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봉환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재청등에서는 이곳을 신규식 선생의 장조카인 신형호선생의 이름을 빌려 청주 신형호 고가 (淸原 申鑅浩 古家) 라 칭하며 충북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조선 고종 18년(1881)에 지은 기와집이다. 본래는 안채와 사랑채·곡간채·뜰·아래채·마부채 등이 있었으나, 한말에 이 집에 살던 신정식이 의병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이 불을 질러 지금은 안채만 남아 있다.

안채의 구조는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과 마루가 달린 건넌방을, 오른쪽에 부엌과 마루가 달린 안방과 웃방이 있다. 앞면 5칸·옆면 4칸의 ㄱ자로 되어있으며,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이에 대한민국건국회 동제사에서는 9월 25일 예관 신규식 선생 서거 99주기를 맞아 이곳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리 148-2번지(인차3길 9-8)에 임시정부의 아버지 예관 신규식 선생의 생가(탄신)라는 표식을 대문 한쪽에 표시해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