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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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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의 창가에서/내 마음의 울림

2022. 5. 9.




밤 늦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아버지가 계신 요양병원 관계자의 전화다.
아버지의 상태가 위중하니 올수있느냐는 전화다.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셔놓고 늘 늦은 밤에 오는 전화에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몇 번이고 요양병원에서 전화를 받았지만
그 때마다 아버지는 요행이도 죽음이란 친구를 피해가셨다.
이번에는 또 어떠실까?


아버지는 혼수상태로 겨우 숨만 쉬고 계신 상태였다.


















젊은 시절 닥치는 대로 이 일 저일을 하셔도
자식들의 뒷바라지는 항상 모자람의 투성이었다.

위로 둘이나 되는 누이들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여들었고
그나마 아들이라는 미명아래 지방에 전문대 까지 나를 공부시키셨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벌이로도 늘 우리 식구들은 궁핍한 생활속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어머니는 새벽에  자식들의 도시락을 싸놓으시고
또 밥상위에 아침밥을 차려놓고
아파트의 청소일을 다니셨다.


어느 날 이 일 저 일 닥치는대로 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커다란 짐발이 자전거를 구해 시장에서 칼을 갈아주는 일을 하셨다.


시장에서 좌판을 하며
그 시장 칼갈이를  하시던 분이 
어느정도의 웃돈을 받고 아버지에게 일을 인계 하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새벽마다 시장상인들이 일을 하기전에 미리 나가 칼을 가셨다
그리고 한달에 얼마씩 돈을 받으셨다.
아버지는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와서 그나마 나아질거라고 생각을 하셨다.


그 희망도 
그 바램도
청소일을 나가시던 어머니가
새벽에 뺑소니 차에 치여 일자리를 잃고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자
일시에 무너져 버렸다.
병원비는 오로시 집안의 궁핍에 힘을 더했고
어머니는  왼쪽 다리에 뼈가 으스러져 수술을 받으셨지만
경제활동을 할수없는 지경에 이르셨다.
불편한 다리를 가지고 집에 들어오신 어머니는 그 때부터 말수가 줄어 드셨다.


없는 살림에 병원비에 집안살림까지
중학교를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여 들었던
두 누이들의 아픔을 설움을 먹고 자란 약간의 돈으로 해결해야 했다.
매일 새벽에 칼을 갈러 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에도 
그것을 바라만 보야 했던 어머니의 불편한 다리에도
군대 영장을 받고 집안에 도움이 되지못했던 나의 마음 위에도 
서러움과 아픔의 그림자가 내려 앉았다.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 계신 아버지는 
목으로 관을 삽입하고 누워계셨다.
유동식을 삽입한 관으로 넣어 겨우 모진 목숨을 연명하고 계셨다
정신이 없는 식물인간이라고 요양병원 관계자는 이야기 했다.


이번에는 운명하실것 같다고 말을 건네곤 요양병원 관계자는 문을 열고 나셨다.
늦은 밤 요양병원 관계자의 발걸음 소리만이 긴 병원 복도위로 울려퍼졌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저리 마른 몸으로 저리 작은 체구로
가장이라는 짐을 지고 힘든 세상에 부딪혔을 아버지의 힘듬이 보이는 듯 했다.


교통사고 휴우증으로 말이 없던 어머니는 불편힌 다리로도
아버지가 칼을 가는 시장통 한쪽에 노점을 차리셨다.
어떻든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누이들 시집이라도 보낼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 열심을 내시며 돈을 모으려고 했지만 항상 부족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






군에 입대한 나는 군에서 주는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집으로 보냈다.
기쁨이라고는 모르는 젊은시절을 보냈다.
군에서 제대를 한 후 나는 작은 회사에 취직을 하여 
나름 집안 생활비에 보탬을 주었다.
조금씩 생활이 펴지는 듯 했지만
호사다마랄까?


시장에서 칼가는 일을 마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시던 아버지는 그만 길에서 쓰러지고 마셨다.


"조금 일찍 발견하였으면 희망이라도 있었을 텐데..."


늦은 밤 길을 가던 행인에게 발견된 아버지는
병원에서 혼수상태로 우리를 만났다.
병원에서는 뇌출혈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늦게 발견되어 희망이 없다는 병원의 이야기에
온 세상이 나만 미워 한다고
우리 가족만 미워한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왜 자꾸만 우리에게 이런 아픔을 주느냐고...
경찰서에서 아버지가 쓰러지신 곳에 방치되어 있던
아버지의 칼을 갈던 숯돌과 연장등이 담겨져 있던
짐바리 자전거를 끌고 오면서 나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무거운 자전거를 몇년이나 아버지는 삶의 친구로
가족들을 지탱하던 가장의 도구로 끌고 다니셨을까?
그래도 아버지는 이 자전거에서 희망의 불씨를 당기셨고
삶의 힘듬을 나누어 지셨을 텐데







침대에 누워계신 아버지가 
칼갈이라고 붉은 글씨가 씌여진 나무상자가 실린 
짐바리 자전거를 끌고 가시는게 보였다.
뼈만 앙상한 아버지가 나를 향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나의 삶의 무게라고
이제는 내 인생에서 무거운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싶다고
나를 향해 말씀하시는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 이제 그만 내려놓으세요.
그 아픔을 힘듬을 내려 놓으세요"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외쳤다.


내가 잡은 아버지의 손은
늦은 밤 언젠가 어린시절 나를 위해 사오셨던
신문지에 차갑게 식었던 시장통 통닭의 느낌으로.......
차가움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짐바리 자전거 위에 앉아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착각을 느꼈다.
아버지는 그 무거운 삶이라는 굴레에서 내리시지 못하고
계속 자전거 페달을 밟으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매일매일 다니시던
시장통 가는 그 길에도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을 테지.



아버지는 나에게 작은 손을 잡히시고도
아버지는 열심히 자전거의 페달을 밞고 계셨다.




시장통 좁은길을 자전거를 타고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자꾸만 작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