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31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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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신니면 원평리 삼층석탑(薪尼面 院坪里 三層石塔)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사지 한가운데 있는 고려 전기 석탑입니다. 현재 원평리 사지에는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과 석탑 등이 남아 있다. 이 사찰은 신라 선덕왕 때 창건되어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소실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이나 유적·유물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또한 이 일대에는 법흥왕 때 선조사(宣朝寺)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전하나 후대에 각색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조성된 석불과 석탑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시대에는 사찰이 창건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석탑은 석불과 거의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독특한 문양과 조각 기법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되는 석탑이다. 한편 원평리 사지 주변에는 충주 숭선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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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신니면 문숭리 용담사석불입상(薪尼面 文崇里 龍潭寺 石佛立像)

원평리에서 원평리미륵을 보고 용원저수지 둑아래부근에 위치한 용담사를 찾았습니다.용담사는 찾는길은 교행이 불가능하나 중간중간 차의 피난지가 있어 찾는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경내에는 널은 주차장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용담사석불로 불리며 경내가 아닌 야산 언덕부근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용담사(龍潭寺)는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 산16번지에 있다. 1962년에 창건되었다. 고려시대의 석불 입상이 있다. 1978년에 송암리에서 대좌를, 선당리에서 석불을 옮겨온 것이다. 법화종 계열이다. 대좌와 석불을 접합하여 놓았습니다. ‘송암리관련항목 보기 불상’ 또는 ‘선당리 석불’ 등으로 불려왔으나 1978년 12월 지금의 용담사로 옮겨져 관리되고 있어, 이후로는 ‘용담사 석불입상’으로 명칭이 통일되어야 할 것이다. 이 불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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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가덕면 청용리 청용리석탑(加德面 靑龍里 靑龍里石塔)

청용리 삼층석탑이 있는 가덕면에는 가덕(加德)이라는 지명에 대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지명은 인차리에 위치하는 가덕산에서 유래되었다.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향토 사료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시대 인조가 보은을 가기 위해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 밖에서 은은한 풍악 소리가 울리며 백발노인이 다가와 '장차 이 고을은 선비의 고장으로 숭상될 것이오나 삼가 헤아려 주시옵소서'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인조가 놀라 잠에서 깨어 앞산을 바라보니 영롱한 빛이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어 '더욱 덕을 가하라.'라는 유시를 남겼는데, 이때부터 지명이 가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에전에는 가정집에 부처를 모신 절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는데 지금은 가정집으로 바뀌었는지 절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31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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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가덕면 인차리 신흥식 선생묘 안내석(加德面 仁次里 申洪植 先生墓 案內石)

현대판 신도비라고 표현하면 이실할까요? 가덕면 파출소 입구옆에 자리하고 있는 독립투사 신홍식선생의 묘소를 일러주는 일종의 안내비석입니다. 삼일독립운동민족대표동오신홍식선생의 묘 어귀 라고 적혀있습니다. 동오 신홍식선생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입니다. 35세 때에 청주북감리교회에서 미국인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1913년 서울의 협성신학교(協成神學校)를 졸업하고 감리교 목사로서 공주에서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17년 평양남산현교회(平壤南山峴敎會) 목사로 옮겨 재임하던 1919년 2월, 동지의 규합을 위해 평양에 온 이승훈(李昇薰)으로부터 3·1운동의 계획을 전해 들었다. 그는 곧 동참하기로 결심하고 상경하여 기독교계 동지들과 만세운동을 협의하고 평양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