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31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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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낭성면 관정리 신백우사적비(琅城面 官井里 申伯雨事績碑)

본관은 고령(高靈). 호는 경부(畊夫). 충청북도 청원(淸原) 낭성면 관정리 출신입니다.어려서는 신채호(申采浩)와 함께 한학을 수학했으며, 서울의 측량학교·외국어학교와 보성전문학교 법학과를 수료하였다. 그 뒤 청주 측량학교와 서울 태극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한편 『소년(少年)』 편집에 관여하고, 신민회(新民會)와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에 가입,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국권 상실 뒤에는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만주에 성덕태상점(誠德泰商店)을 개설하는 등,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주력하였다. 3·1운동 후에는 상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는데, 신채호와 함께 이승만 노선(李承晩路線)에 반대하여 손을 떼었다. 그 뒤 만주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와 광한단(光韓團)에서 활약하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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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향기/충주시 동량면대전리연안이씨쌍효각(東良面大田里延安李氏雙孝閣)

이시희와 이시걸은 아버지의 중환에 잉어가 약이 된다고 하여 구하려고 했지만, 겨울철이라 못이 얼어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형제가 얼음 위에서 지성으로 기도를 드리자 잉어가 솟아나왔다. 어느 땐가 약을 구하기 위해 형제가 밤길을 나서자 호랑이가 나타나 지켜 주기도 했다. 아버지가 위독하자 이시희와 이시걸은 손가락을 잘라 피를 아버지의 입에 흘려 넣어 병을 낫게 했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시묘를 할 때는 3년간이나 호랑이가 와서 지켜주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병을 얻자 대소변을 맛보며 간호를 했고, 돌아가신 뒤에는 죽을 먹으며 시묘를 하는데, 형제간에 서로 묘소를 지키며 효를 다했다. 1722년(경종 2) 정려되었으며, 1756년(영조32) 형 이시희는 통정대부승정원 우승지 겸 경연참찬관에, 아우 이시..

28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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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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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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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따라 삼천리/마을표지석 감곡면 영산리 영촌마을자랑비(甘谷面 嶺山里 嶺村마을자랑비)

영산리는 감곡면 소재지에서 8㎞ 떨어진 지점에 있다. 원통산 자락에 위치하며 앞으로는 공산정천이 흐르는 농촌 마을이다. 본래 충주군 감미곡면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1914 행정구역 개편 때에 거동(巨洞), 영촌(嶺村), 공산리(公山里) 일부를 병합하여 영촌과 공산리에서 이름을 따서 영산리라 하고 감곡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거둥터, 건너새터, 공산정이, 두덩골, 바리고개, 비아다리, 상짓말, 알고지, 양짓말, 엄장골, 우뢰편, 잔자골, 재말(영촌) 등이 있다. 거둥터는 전에 임금이 거동하였던 곳이라는 뜻이다. 공산정이는 마을 뒷 산이 공(公)자 처럼 되었으며, 정자나무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두덩골은 지형이 두덩처럼 생겼다고 한다. 상짓말은 산지기가 사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유적..

22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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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의 창가에서/내 마음의 울림 고들빼기 김치.

점심때 쯤 고향에 계시는 작은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지내니?" 코로나로 인해 자주 방문도 못하고 했던 차에 누이의 전화가 반갑다. 집에서 고들빼기 김치를 담다가 고들빼기 좋아하는 막내생각이 나서 전화 했다며 시간날 때 고향 너머 와 고들빼기 김치를 가져가란다. 예전에 어머님 생전에는 항상 고들빼기의 쌉싸르한 맛이 좋다는 나를 위해 어머니는 고들빼기 김치를 담그어 주셨는데... 막내동생 고들삐김치 좋아하는걸 작은누님이 생각이 나셨나 보다. 생전 엄마표 고들빼기 김치는 아니더라도 동생 사랑하는 마음 가득한 누님표 고들빼기를 내일은 먹을수 있겠다. 때 되고 조금 색다른 반찬을 만들면 항상 잊지않고 연락주는 누님들이 계셔 좋다. 내 마음속 가득한 채워지지 않는 엄마의 자리를 누님들의 관심과 사랑이 채워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