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03 2021년 08월

03

전설따라 삼천리/마을표지석 신니면 용원리 용원표지석(薪尼面 龍院里 龍院標識石)

용안리에 역참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용원(龍院)이라 불렸다. 옛날 한양에서 내려오는 영남대로의 길목으로서 북쪽의 노은면과도 통하는 용원삼거리에 자연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지역은 개경 또는 한성에서 영남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죽산·장호원 등에서 차령산맥을 넘어와 머무는 역원인 용안역(用安驛)이 있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외용에 용안역이 관거(官距) 45리에 있었고 충주 연원역(連原驛) 소속으로 노(奴) 103명, 비(婢) 81명, 대마(大馬) 2필, 복마(卜馬) 5필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의 충원현조(忠原縣條)에 용안리는 당시 주민이 95호에 남자가 278명, 여자 369명 도합 647명이 거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안용안[內龍洞]과 외룡동(外龍洞)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 행정..

03 2021년 08월

03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이국헌,엄찬선정비(蘇伊面 碑山里 李國憲,嚴纘善政碑)

미타사 오르는길 우측으로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숙종시절 충주목사를 지낸 이국헌과 엄찬의 공적비입니다. 이 비석으로 말미암아 지명 또한 비선거리라는 명칭이 생겼습니다. 소이면 비산리 비석거리에 있는 충주목사를 지낸 이국헌과 엄찬의 선정비입니다. 두 비석이 나란히 서있습니다. 비석의 크기나 모양등으로 보아 한사람의 솜씨인 듯 합니다. 이국헌이 충주목사로 있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후임으로 충주 목사로 온 사람이 엄찬입니다. 엄찬은 1693년(숙종 19) 충주목사겸충주진관병마첨절제사가 되었다. 같은 해 전임 충주목사 이국헌(李國憲)이 갑자기 죽음을 당하자, 이국헌의 아들이 소장(訴狀)을 올려서 의심스러운 여섯 사람을 가두었다. 그런데 이국헌의 후임으로 온 충주목사 엄찬까지도 꾸짖고 욕보이자, 엄찬이 이국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