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18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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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음성읍 읍일구장변중기기념비(陰城邑 邑一區長邊重基紀念碑)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변중기의 기념비입니다. 변중기 기념비는 1930년대 읍내리 1구장을 역임한 변중기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이다. 변중기는 읍내리 1구장 역임 이외의 행적은 미상이다. 비는 1936년에 세워졌다. 비신(碑身)의 총 높이는 119㎝이며, 앞면의 폭 41㎝, 측면의 두께 15㎝이다. 비석 앞면에는 '읍일구장변중기기념비(邑一區長邊重基紀念碑)'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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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사리면 소매리 우치연묘소(沙梨面 笑梅里 禹治沇墓所)

사리면 소매리에 위치한 단양종중묘지에 있습니다.헌종때 별시병과에 급제하였으며 아버지는 통사랑을 지낸 우영원입니다.비석의 전면에는 선전관단양우공휘치연지묘배숙인진천임씨부간좌(宣傳官丹陽禹公諱治沇之墓配淑人鎭川林氏祔艮坐)라고 적혀있습니다. 비석은 근간에 후손들에 의하여 조성 되었습니다. 선전관은 조선시대 형명(形名)·계라(啓螺)·시위(侍衛)·전명(傳命) 및 부신(符信)의 출납을 맡았던 관직. 1457년(세조 3) 어가(御駕) 앞에서 훈도(訓導)하는 임무를 맡은 무관을 선전관이라고 일컫게 됨으로써 비로소 그 관직이 처음 생겼다.이 때 왕과 가까이에 형명이 있는 곳에 서도록 되어 있었던 선전관은 모두 15인이었는데, 이들이 3교대로 5인씩 입직(入直)하여 근무하였으며, 당번 때에는 사정전(思政殿)의 문 안에서 직숙(..

18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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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동이면 우산리 지아지효자문(東二面 牛山里 池阿只孝子門)

우산리 지매마을 초입 찾기가 힘들다. 네비에 의지하여 우산리를 찾으면 우산1,2리로 나뉘어져 있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지매마을은 우산2리이다. 우산2리 길로 접어 들어서 금강유원지쪽이 아닌 산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계속 오르면 산중턱에 전원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지아지 효자문은 마을 중간 잔디밭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의 효자문은 쇠락하여 충주지씨문증에서 새로 효자문을 중수하였다. 효자의 이름이 자료에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옥천군지를 참조하면 지악지(池岳只)라 적어 놓았습니다. 岳只는 지아지의 字입니다.원래의 이름과 자를 혼용하여 사용하니 각 자료마다 이름이 달리 나오는것이지요. 지매마을에 있는 효자비에 새겨진 이름은 지아지(池阿只)입니다. 효자문의 이름을 사용하겠습니다. 효자문은 동이면 우산리 지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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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음성읍 전교정공조헌존성비(陰城邑 典校鄭公祖憲尊聖碑)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유학자 정조헌(鄭祖憲)을 기리는 비. 음성향교 전교(典校)였던 정조헌(鄭祖憲)의 본관은 초계이며, 자는 성륜(聖倫)이고, 호는 구봉(九峯)이다. 시조 광유후(光儒候)의 31세손이고 효자 위은 정인상(鄭寅尙)의 아들로, 어머니는 효부 현풍곽씨이다. 정조헌은 평생 윤리와 도덕을 몸소 실천하고 유도(儒道) 진흥에 심신을 바쳤다. 이렇게 평생 유학 진흥에 공헌한 것을 인정받아 1984년 11월에 음성향교 앞에 정조헌의 공적을 기리는 존성비를 세웠다. 신재 이수원이 제문을 지었고, 『신재집』에 이수원이 정조헌을 위해 지은 시가 몇 수 있다. 총 높이가 230㎝인 석재 비석이다. 비의 앞면에는 '전교정공조헌존성비(典校鄭公祖憲尊聖碑)'라고 쓰여 있다. 정조헌은 충청북..

18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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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음성읍 군수채동환모성기념비(陰城邑 郡守蔡東煥慕聖紀念碑)

청주시의 행정가.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에서 채성용(蔡成用)과 김순임(金順任)의 장남으로 태어났다.청주시 총무과장을 거쳐 보은, 옥천, 음성, 청원군수를 지냈다. 보은군수를 지낼 때는 말티재 도로를 넓히고 정비하였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 청주시장을 재임하는 동안 1971년 무심천(無心川)에 벚꽃나무를 심고, 우암산 우회도로를 만들었다. 충청북도체육관 남쪽 도로를 확장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청주 방문 후에, 청주시의 중심에 있던 동네와 요정을 헐고 상당공원을 만들었다. 한편, 천주교측에서 시내에 조성하려던 공원묘지를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에 만들게 하였다. 그는 특히 가난한 시민들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공직생활 후 대한지적공사 충북지사장으로서 부임했을 때도 부하 직원들의 존경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