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19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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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군북면 막지리 풍경(郡北面 莫只里 風景)

육지속에 섬이라는 막지리를 찾아 보기로 했다. 막지리 장고개에 위치하고 있는 밀양인 손대창의 효자각도 볼겸 길을 나섰다. 답양리로 들어서는 고갯길이 가파르다. 인적없는 도로를 달리다 보면 장고개에서 손대창 효자문을 만날수 있다. 효자문을 뒤로 하고 길을 재촉하면 깨끗하게 잘 정리된 막지리 마을을 볼 수있다. 막지리(莫只里)는 원래 안내면 막지리에 속해 있던 마을이었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군북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1739년의 기록에 보면 안내면 막지리라 하여 40호가 살았고, 1891년의 기록에는 46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다. 1973년 7월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내면에서 군북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막지리라 부르게 된 것은 이 마을이 강가에 위치하여 포전(浦田)이 많아 보리농사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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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산성동 안유풍묘지(山城洞 安遺豊 墓地)

민영휘(1852.5.15.~1935.12.30.)1877년(고종 14년) 별시에서 병과로 합격합니다,, 그 뒤 승진을 거듭하며 화려한 관력을 쌓게 됩니다. 이 민영휘는 명성황후와의 촌수는 그냥 같은 여흥민씨 정도입니다, 민승호 민겸호는 명성황후와 12촌이라는 촌수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이 민영휘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이 자는 청나라와 밀착한 수구파의 거두로서 32살인 1884년 갑신정변 때 청나라 군대를 이용하여 친일 개화 세력을 몰아냈으며, 위안스카이(원세개)와 결탁한 뒤 사대당 내각에 들어가 전권을 휘둘렀습니다, 이때 명성황후의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1886년 참의 내무부사, 1887년 도승지를 역임하였고, 도승지로서 주차 일본 변리공사가 되어 일본에 다녀온 뒤 평안감사에 올랐고 1889년 강화부..

19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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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옥천군 군북면 국원리석장승(沃川郡 郡北面 菊園里석장승)

군북면 국원리 새강변가든 길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는 석장승입니다. 근래에 마을주민들에 의하여 세워졌습니다. 저수지 입구 길에 바닥에 자갈을 깔아 조성하였습니다. 天下大將軍,地下女將軍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국원리(菊園里)는 원래 군북면 소태동리(小太洞里)에 속해있던 마을로, 후에 소정리(疎亭里)와 국원리로 나뉘어 현재에 이른다.1739년의 기록에는 군북면 소태동리라 하여 57호가 살았으며, 1891년의 기록에 보면 소태동리에 77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는데 두 기록 다 소태동리는 국원리와 소정리를 관할하였다. 1908년 군, 면의 행정구역 일부 조정 때에 군북면을 군북일소면(郡北一所面)과 군북이소면(郡北二所面)으로 나누었고 소태동리는 이소면에 속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의 전면 개정 때 일소면과 이소면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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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읍성읍 오주영송덕비(陰城邑 吳周泳頌德碑)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사업가.오주영은 조선 인조(仁祖) 때 영의정을 지낸 추탄(楸灘) 오윤겸(吳允謙)의 11세손이며 오극선(吳克善)의 아들이다. 2세 때 충청북도 중원군 신니면 신청리로 이사하고 1920년 12세 때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花洞)으로 이사하였으며, 1921년에는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 고내리로 이사하였다.1922년 14세 되는 해에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으로 이사하여 정착하였다. 음성개량학교 4년과 서울중동학교 속성과 1년을 마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의 검정고시를 거쳐 17세 때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천성이 총명하고 너그럽고 후하여 젊어서 명예를 얻기보다는 고장에 정착하여 스스로 도정업 등 실업에 종사하며 근면 성실과 검소를 바탕으로 남에게 널리 베푸는 생활을 하였다...

19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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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음성읍 삼구장남궁은송덕비(陰城邑 三區長南宮恩頌德碑)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구장 남궁은의 송덕비입니다.묘표형의 비석으로 가첨석은 없다. 전체 높이는 119㎝, 앞면 폭 46㎝, 측면 폭 19㎝의 규모이다.비신 중앙에 '삼구장남궁은송덕비(三區長南宮恩頌德碑)'라 쓰여 있고, 왼쪽에 송덕 사실을 4언시로 옮겨놓았다. 사언시의 내용은 “십년 간을 부지런히 근무하였으니 좋도다 그 말씀이여! 사사로운 이익을 버리고 공의를 취하였으니 모두가 그 덕을 송축한다네(十載勤務 善哉其言 捨利取義 咸頌厥德)”라고 기록한 송시로, 남궁은에 대한 자세한 행적은 미상이다

19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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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음성읍 음성면장조동환기념비(陰城邑 陰城面長趙東渙紀念碑)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조동환의 비석입니다.조동환의 자는 문옥(文玉), 호는 정암(靜岩)이며,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음성읍 평곡리에서 살았으며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다. 신정왕후(神貞王后) 조대비(趙大妃)와 혈연 관계가 있어, 1905년 탁지부주사(度支部主事)에 기용되었고 삭녕세무서장으로 근무하였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조동환은 1905년 7월 度支部 稅務主事에 임명되었다.1908년 10월 朔寧稅務署長으로 영전되었다.1911년 6월 부터 8년 4개월간, 1922년 4월 부터 5개월간, 1923년 10월 부터 9년 5개월간 만 18년 남짓 陰城面長으로 재직하였다.1924년, 1927년 및 1930년에는 선거에 의해 忠淸北道評議員으로 선출되었다.조선총독부시정25주년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