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25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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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성면 화성리 석성마을 유래비(靑城面 和城里 石城마을由來碑)

화성리는 석성리와 화동리 2개 리이며 주요 성씨로 석성리는 성산전씨 집성촌이며, 화동리는 이 천서씨가 누대에 걸쳐 산다. 석성리는 화성리의 남서부에 위치한 중산간 전원마을이다. 지리적으로 동쪽은 화동리, 남·서쪽은 거포리, 북쪽은 대안리 귀곡과 화동리 서북단과 접한다.석성리石城里에는 이 마을 남쪽 경계지에 자리한 신라성인 저점산성이 있다. 이 산성은 돌을 쌓은 석성石城으로 축성되었다는 점에 연유하여 석성리라 부르게 되었다.행정리는 석성리이고 자연마을은 돌잣이의 양지마[陽村]와 음지마[陰村], 유문거리가 있 다. 주요 성씨는 성산전씨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처음 파주염씨가 정착했다. 석성리(石城, 돌잣이, 돌자시): 화성리의 중심마을이다. 자연마을로 양지쪽에 양지마와 음 지쪽에 음지마가 있다. 동학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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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성면 석성리 전홍기부인최씨선심비(靑城面 石城里 全弘基夫人崔氏善心碑)

청성면 석성리 유문골(화성초등학교 얖동네)에 있는 성산인 전홍기의 부인 최씨의 비석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전홍기부인최씨선심비(全弘基夫人崔氏善心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겅립시기는 을축년윤사월(乙丑年 閏四月)입니다. 보호각을 지어 성산전씨 선조인 전응관의 비석등이 자리하고 있는 곳에 비각 밖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돌보는 이 없이 방치되다시피 있습니다. 비석의 내용을 살펴보면 어려운 와중에도 동리의 빈민들을 위하여 선덕을 베푼 최씨부인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비석입니다. 乙丑年은 비석등의 상태로 보아 일제강점기인 1925년 입니다.

25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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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성면 마장리 한글비석(靑城面 馬場里 한글비석)

옥천군 청성면 마장리에 있는 한글비석입니다. "땅을 쓸면 금이 나온다" 아마 아침 일찍 일어나 열심을 부리면 잘 살수있다는 말을 하는것 같습니다. 마장리는 광산김씨가 세거 했던 듯 합니다. 주위로 광산김씨 비석이 몇기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장리 마을안쪽 대성사 올라가는 길목에 광산김씨 비석 몇기와 더불어 괴석(怪石)이 놓여있는 작은 동산이 있습니다. 그 곳에 세워진 한글비석 입니다. 마장리에는 옛날 관리들의 여행자 숙소인 은천원이 있었고, 그곳에 말을 매어 놓는 곳 이 있어 말바탱이라 불려서 마장馬場이라 했다. 옛날부터 풍수해와 가뭄이 없고 들이 넓고 풍요로와 청산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마을로 꼽혔다. ‘청산의 제일은 마장이다’라고 구전 된다. 주요 성씨는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배출한 옥천..

25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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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성면 도장리 하기봉선덕비(靑城面 道場里 河基奉善德碑)

도장리 초입 도로사업소 옆 과수원둑에 있는 광주개성사인하기봉선덕기념비(鑛主開城士人河基奉善德記念碑)소화13년(1938년)에 건립하였습니다.신그령에 있었던 금광과 관련된 비석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금광이 개발되면서 금광 광주로 있던 하기봉이 동네에 여러가지 불편사항 해소와 더불어 동네주민들의 일자리 창출등에 동리민들이 감사의 뜻으로 세운 비석으로 추측됩니다. 도곡리는 원래 불교의 도량인데 도량道場이 도곡道谷으로 변하였고, 마을은 내도곡과 외도곡이 있다 도장리는 청성면 북부 지역으로 면적은 2.93㎢, 인구는 141명이다. 동서로 각각 관모봉 (569m)과 문수산 사이에 위치하며 논밭 경작지가 비교적 넓어 벼와 과수, 밭작물을 생산한 다. 근대에 신그령에서 금이 채굴되어 이웃 신기리와 함께 풍요를 누렸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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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성면 석성리 이장전성우공적비(靑城面 石城里 里長全成雨功績碑)

청성면 석성리 비석거리에 있는 석성리 이장을 지낸 전성우의 공적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전이장전공성우공적비(前里長全公成雨功績碑)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전성우의 공적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이장 전공은 영명온후(英明溫厚)한 성격으로 1972년 부터 이장에 취임하여 열심으로 봉사를 하면서 새마을 사업과 동네의 도로를 확포장하였으며 하천제방공사를 비롯 동네주민들이 같이 모여 일할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마을공동토지조성을 하였으며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그 공로가 지대하고 동네주민들의 편의를 위하는데 앞장서서 열심을 냈기에 이에 동네주민들이 전성우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하여 빗돌의 그의 공덕을 새겨 후세의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비석을 세운다. 1986년 8월 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