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26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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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성면 고당리 구장유주열기념비(靑城面 高堂里 區長劉周㤠記念碑)

고당리는 지리적으로 동쪽은 양저리, 서쪽은 금강을 경계로 동이면 조령리와 나뉘며, 남쪽은 동이면 우산리, 북쪽은 합금리와 양저리 북부 산지와 이웃한다 청성면 고당리 원당마을 초입에 있는 구장을 지낸 강릉인 유주열의 기념비입니다. 비석의 건립시기가 1958년 4월이라고 되어 있는데 비석등의 상태로 보아 기존에 있던 비석의 파손등에 의하여 새로운 비석으로 교체한 듯 싶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전구장강릉유씨주열기념비(前區長江陵劉氏周烈記念碑)라고 적혀있으며 고당리 동민일동 이름으로 건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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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성면 고당리 김연순효열비(靑城面 高堂里 金淵順孝㤠碑)

청성면 고당리 원당 마을입구에 있는 김연순여사의 효열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경주김씨연순여사효열비(慶州金氏淵順女史孝烈碑)라고 적혀있으며 좌우,후면에는 김연순여사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비석은 강릉유씨옥천종중에서 2009년 3월에 건립하였습니다. 경주김씨 연순여사는 강릉유씨 옥천군 종친회 고당리 월구지 문중의 종부로서 효부요 열부요 장한 어머니 이시다. 옥천군 옥천읍 서대리 경주김씨 병종공의 따님으로 다복하게 자라나 어린 나이에 옥천군 청성면 고당리 강릉유씨 순종공의 아내로 시집오시어 가난한 살림에 노시부모 봉양과 어린 시동생 3남매의 뒷바라지는 너무나 힘에 겨웠고 양식이 없어 굶는 때가 많았다. 이런 역경속에서 4남 2녀를 두었으니 아들에 영진,영복,영건,영준이요 딸에 성윤과 근임이라.자식들이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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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성면 석성리 전응관비석군(靑城面 石城里 全應寬碑石群)

청성면 석성리 유문거리에 있는 상산인 전응관의 시혜비와 송덕비 선덕비등 입니다. 석성리는 상산전씨들의 집성촌입니다.조선말과 일제강점기시절 석성리에 거주하던 전응관의 각종 비석입니다. 전응관과 관련된 4기의 비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각안에 세워진 비석들의 글자가 인위적으로 훼손된 부분도 있습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갑진(甲辰)3월(1904년)과 경신(庚申)정월(1920년)입니다. 비석을 살펴보면 경신년 같은경우에는 경신년홍수등으로 인하여 소작인들에게 도세를 감면하는 등 선덕을 베풀었으며 갑진년등과 다른 비석을 보면 주위의 어려운 동민들을 위하여 세금을 대납해 주는 등 많은 선덕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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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성면 석성리 전월용송덕비(靑城面 石城里 全月龍頌德碑)

청성면 석성리에 있는 상산인 전월용의 송덕비입니다. 비석에는 석사전월용송덕비(碩士全月龍頌德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전월용의 송덕내용을 보면 교육여건의 향상등을 위하여 학교를 신축하는데 물심양면으로 힘썼으며 치안에 힘쓰기 위하여 석성리에 경찰서를 신축하였다. 이에 동민들이 송덕비를 건립하였다. 청성면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이전에는 청산현의 서면과 남면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후 1914년 행정구역 일제정비시 옥천군에 소속되면서 청서면이 되었고 청서면의 소재지가 바로 석성리를 비롯한 화성리 일대. 석성리와 화동리를 합해 화성리라 불렀으나 화동에는 면사무소가 석성리에는 지서가 위치해 있었다. 현재의 화성초교가 당시의 지서 자리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