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28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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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칠성면 외사리 당간지주(七星面 外沙里 幢竿支柱)

무슨 말이 필요하랴? 언제든 달려가면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거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는 양 기둥에 별다른 조각이 없다. 기둥 사이에는 당간을 꽂았던 둥근 받침돌이 2단으로 마련되어 있는데, 그 윗면 가운데에 높히 솟아오른 부분을 두어 여기에 깃대를 끼웠던 것으로 보인다. 기둥 안쪽면에는 아래위로 홈을 두어 당간을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조각솜씨가 세련되거나 정교하지 못하나 간결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전기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28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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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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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안내면 답양리 가산사(安內面 畓陽里 佳山寺)

가산사는 안내면 답양리 채운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서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에 속해 있는 말사이다. 이 절의 역사에 대한 조선 중기 이전의 기록은 현 재 전해지지 않으나, 사찰의 주변에서 고려시대의 기와편들이 확인되고 있어 그 역사를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해 준다. 다만 사찰측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신라 성덕왕 19년인 720년에 창건되어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임진왜란 직전에 영규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가산사라는 이름은 1760년(영조 36)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비로소 확인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승군장僧軍將으로 활약했던 기허당騎虛堂 영규대사(靈圭大師, ?~1592) 가 이 가산사를 기지로 삼아 의병장 조헌趙憲과 더불어 왜구와 대적하였던 사실이 있어 임진왜란 이전..

26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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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옥천읍 교동리 보호수(沃川邑 校洞里 保護樹)

옥천읍 교동리에 있는 느티나무로 옥천군 지정 5호로 지정된 느티나무입니다. 지정당시 370년 정도로 수령을 추정하고 있으며 지정일시는 1982년 11월19일입니다. 봄에 잎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들고 잎이 적게 피면 가뭄이 든다고 전해지며 매년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찾은날도 동네주민들의 관심이 있었는지 새끼줄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나무의 수령도 있고 주위환경의 변화도 았어 나무의 성장이 문제가 있는 듯 수세(樹勢)가 약해진 듯 합니다. 나무의 잎새를 보며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보는것은 많이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고장에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26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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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성면 궁촌리 이왕우공적비(靑城面 弓村里 李王雨功積碑)

궁촌리 마을입구에 궁촌리 입석이 있는곳에 있는 이왕우의 공적비 입니다. 이왕우는 1988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코치를 시작으로 2003년까지 국가대표 양궁 감독을 역임한다. 현재 중국 국가대표 감독이다. 우리나라 양궁계를 이끌어 온 대표적 인물로 청성면 궁촌(弓村)리 활 골 마을 출신이다. 마을 입구에는 2010년 대한양궁협회에서 세운 이 감독의 공적비가 있다. 비석에는 세계양궁사이왕우공공적비(世界洋弓師李王雨公功積碑)라고 적혀있습니다. 궁촌리는 원래 청산현 남면 무회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궁촌리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1739년 기록과 1891년 기록에는 다 같이 청산현 남면 무회리에 109호가 살고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청산현이 없어지면서 옥천군에 소속되..

25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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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생극면 방축리 문충공권근신도비(笙極面 防築里 文忠公權近神道碑)

권근(權近)은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1398년(태조 7) 1차 왕자의 난 이후 사병(私兵)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 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지고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올랐다. 사후 좌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묘소는 원래 경기도 광주에 있었으나 1440년(세종 22)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8각 봉분 앞에는 묘비와 상석이 각각 놓여 있다. 앞에서 보아 왼쪽이 권근, 오른쪽이 부인 경주이씨의 묘비이다. 묘비는 대석 위에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비신 위는 연화문과 보주(寶珠)로 장식하였다. 전체 높이는 151㎝, 너비는 55.5㎝이다. 앞면에는 ‘조선국좌명공신의정..

25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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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의 창가에서/내 마음의 울림 그리움의 끝.

아침녁 잠결에 칼도마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내가 무언가를 준비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 그만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습니다. 그 잠끝에 나는 하늘에 계신 엄마를 만났습니다. ...................... 어린시절 초가이엉 얹혀진 옛집 마루에 엄마는 계셨습니다. 언제나 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지요 학교가 파하고 열심히 집으로 달려와 부억 한쪽 물이 들어있는 장독에서 물 한그릇 마시고는 함석으로 만든 바께스를 들고 동네우물로 물을 길러가곤 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그 이유는 몰라도 학교가 끝나고 오면 누가 시키지를 않아도 항상 부억에 장독대에 물을 하나 가득 저는 길어놓곤 했습니다 그러면 막내아들 고맙다하시며 안아주시던 엄마의 품을 느끼고는 했지요 .............................. 엄..

25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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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동이면 금암리 오재국송덕비(東二面 金岩里 吳在國頌德碑)

동이면 금암리 압촌마을 입구에 있는 초은거사 오재국의 송덕비입니다. 압촌마을 버스정류소옆애 금암리 마을자랑비와 함께 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초은거사오재국송덕비(楚隱居士吳在國頌德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비석은 단기 4282년(1949년)에 금암리민 일동으로 세웠다. 모든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일보다 부락민들의 일을 먼저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고 면을 위해 열심을 냈던 오재국의 공로를 못잊어 송덕비를 세웠다. 비석의 건립년대로 보아 오재국은 일제강점기시절 동이면에 근무하면서 면민들과 면의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 금암리는 고창오씨들의 집성촌 입니다. 금암고창오씨세거지지(金岩高敞吳氏世居之地)라고 써있습니다. 금암리 유래는 마을 뒤에 용암사란 절이 있고 큰 바위들이 용같이 뻗었다 하여 용암말 이라 불렸고 옆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