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12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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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옥천읍 귀화리 최명식자혜송덕비(沃川邑 貴花里 崔明植慈惠頌德碑)

옥천읍 귀화리에 있는 경주인 최면식의 자혜송덕비입니다. 비석은 화정동주민의 이름으로 2008년 6월에 건립하였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경주최공명식자혜송덕비( 慶州崔公明植慈惠頌德碑)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최명식의 송덕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송덕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은 경주최씨 최치원의 30대손이다. 공은 1964년 충남 조치원에서 이곳(화정동)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으며 동민으로서 많은 일을 하시고 돌아가셨다. 공은 천성이 고결하고 선비로서의 기질 또한 특출하였다. 부모님을 섬기는데 효성을 다 하였고 언행이 엄중하며 예의에 어긋남이 없이 생활하였다. 효와 함께 공손함이 근본이 되어 동민들과의 화목이 두터우셨으며 글농사로서 문한가의 위치에 서있어 마을주민들 뿐만 아니라 타인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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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따라 삼천리/마을표지석 군북면 막지마을 유래비(郡北面 莫只마을 由來碑)

막지리(莫只里)는 원래 안내면 막지리에 속해 있던 마을이었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군북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1739년의 기록에 보면 안내면 막지리라 하여 40호가 살았고, 1891년의 기록에는 46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다. 1973년 7월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내면에서 군북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막지리라 부르게 된 것은 이 마을이 강가에 위치하여 포전(浦田)이 많아 보리농사를 많이 하였기 때문에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이곳을 지나다 많은 보리밭을 보고 맥계(麥溪)라고 했다는 것. 이는 대대로 전해진 것으로, 막지리의 본래 지명은 맥계이며 일본인들이 일제강점기 때 편리한대로 썼던 막지(莫只)라는 지명보다 본래 지명을 되찾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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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생극면 방축리 권람묘지(笙極面 防築里 權擥墓地)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 할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이며, 아버지는 우찬성 권제(權踶)이다. 권람(權擥)[1416~1465]은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학문이 넓었으며, 뜻이 크고 기이한 계책이 많았다. 불교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활을 잘 쏘고 문장에 뛰어났다. 35세까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있다가, 1450년(문종 즉위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감찰이 되었고, 이듬해 집현전교리로 『역대병요(歷代兵要)』의 음주(音註)를 편찬하며 수양대군과 가까워졌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한명회(韓明澮) 등과 함께 김종서(金宗瑞)·황보인(皇甫仁) 등 대신들을 제거하고 세조 집권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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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성면 도장리 김경수시혜소작불망비(靑城面 道場里 金慶秀施惠小作不忘碑)

전참봉김경수시혜소작불망비(前參奉金慶洙施惠小作不忘碑)라고 쓰여 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신미년(辛未年) 12월입니다. 마을안쪽 대성사가는 갈림길 비석동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같은장소에 김경수의 비석 1기가 더 자리하고 있습니다. 도장리 마장마을에 있습니다. 도장리(道場里)는 원래 청산현 서면 마장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대안리와 도장리로 나뉘어 지면서 오늘에 이른다. 1739년 기록이나 1891년 기록에 다같이 청산현 서면 마장리로 126호가 거주하였던 것으로 되어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의 일제 정비 때 옥천군에 속하게 되었고 서면이 청서면으로 고쳐지면서 이때 마장리가 대안리와 도장리가 되어 청서면 관할이 되었다. 1929년에는 행정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청남, 청서 양면이 하나로 되어 청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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