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31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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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생극면 방축리 도통사(笙極面 防築里 道統祠)

생극면 방축리 권근삼대묘를 지나서 위치하고 있습니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산7번지에 있는 3성(공자, 주자와 안향) 및 9현을 봉안한 사우. 공자, 주자, 안향을 비롯하여 국재(菊齋) 권부(權溥), 역동(易東) 우탁(禹倬), 동암(東庵) 이진(李瑱), 이재(彛齋) 백이정(白頤正),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 덕재(德齋) 신천(辛蕆), 노당(露堂) 추적(秋適), 근재(謹齋) 안축(安軸), 경재(敬齋) 안보(安輔) 등의 위패를 봉안한 사우이다. 지금은 공자를 주 위패로 주자와 안향 및 9현을 봉안하고 있다. 최초의 도통사는 1734년(영조 10)에 충주 지방 유림들이 충주시 신니면 화안리에 세웠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8년 사우를 중수하며 독립 정신을 함양하는 집합 장소가 사용하다가 일제..

31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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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안내면 답양리 가산사산신각(安內面 畓陽里 佳山寺山神閣)

가산사는 임진왜란 때 기허 영규대사와 중봉 조헌 선생이 이곳에서 승군과 의병을 일으켜 훈련하였다 하여 호국도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규대사와 조헌 선생은 힘을 합하여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전투에서 왜군을 맞아 싸우다 순절하였다. 이에 가산사에서는 영정각을 짓고 영규대사와 조헌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였는데 지금은 위패만 모셔져 있다. 영정각 지붕에 있는 망와의 명문으로 보아 조선 숙종 20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건축의 형태는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매우 작은 규모지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산신각은 산신탱화를 봉안하기 위한 집으로 영정각과 같은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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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안내면 답양리 가산사영정각(安內面 畓陽里 佳山寺影幀閣)

가산사는 720년(신라 성덕왕 19)에 창 건되어 임진왜란 때 기허당 영규대 사와 중봉 조헌의 영정을 봉안한 호국사찰이다. 1644년(인조 22)에 중건되었으며 1675년(숙종 원년) 조헌을 비롯한 칠백 의사와 금산 전투에서 함께 순절한 영규대사의 전공을 기리면서 호국사 찰로 지정되었다. 가산사 영정각 및 산신각 영정각은 1695년(숙종 21)에 건립되어 조헌과 영규대사의 영정을 봉안했던 곳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총독부에서 두 의병장의 영정을 강제로 빼앗아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정각 지붕 용마루 기와에 ‘강희 33년 갑술 4월 망일’이라는 연대가 쓰인 것으로 보아 용마루에 쓰인 기와가 1694년(숙종 20)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산사는 임진왜란 때 기허 영규대사와 중봉 조헌 선생이 이곳에..

31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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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생극면 방축리 수원도호부사 권복묘지(笙極面 防築里 水原都護府使 權馥墓地)

(字) 백수(伯綏) 생년 무술(戊戌) 1478년 (성종 9) 합격연령 26세 본인본관 안동(安東) 거주지 미상(未詳) [관련정보] [이력사항] 선발인원 08명 [一等1‧二等2‧三等5] 전력 진사(進士) 관직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문과시험답안 책문(策問) [가족사항] [부(父)] 성명 : 권료(權憭) [조부(祖父)] 성명 : 권염(權念) [증조부(曾祖父)] 성명 : 권준(權蹲) [외조부(外祖父)] 성명 : 여석손(余碩孫) 본관 : 미상(未詳) [처부(妻父)] 성명 : 변강지(卞綱之)[文] 본관 : 초계(草溪)【補】 [가족과거] 자(子) : 권신(權信)[文] 손(孫) : 권순(權純)[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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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성면 도장리 대성사석조여래입상(靑城面 道場里 大成寺石造如來立像)

옥천 대성사 석조 여래 입상은 돌기둥형 석불이다. 대성사가 있는 청성면 도장리(道場里)는'불당골(佛堂谷)'로도 불리는 것으로 보아 불교와 관련된 지역 임을 알 수 있다.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옥천 육씨 족보에도 "조선 성종 22년(1491년)에 대성사에 석불이 있었다.” 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입상은 높이가 360cm이며, 가운데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다. 머리에는 둥근 모자를 쓰고 있고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식으로 법의를입고 있으며, 맨 아래에는 발의 모습도 확인된다. 왼손 가운데에 홈이 있는 것 등으로 보아 지물(持物)을 받쳐 들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둥근 관모 형식을 쓴 형태는 서울 약사사 석불 입상(1490) 등과 유사하며, 예산 삽교 석조 보살 입상과 같이 두 개의 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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