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07 2021년 03월

07

전국방방곡곡/문경(聞慶) 문경읍 관음리 석조반가사유상(聞慶邑 觀音里 石造半跏思惟像 )

이 불상은 높이 109cm,폭 89cm로, 계립령 아래의 인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문경현조에 계립령 아래에 관음원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음을 보아 관음원과 어떤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며, 주변에서 와편이 많이 찾아지고 있는 점을 보아 이 지역에 어떤 건축물이 존재했음을 시사해 준다. 그리고 이 사유상이 위치한 동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 갈평리 5층석탑이 현존하고 있다. 이곳은 폐사지로서 관음사가 위치해 있었다고 하지만 문헌적으로도 확인되지 않는다. 이 마애상은 현재 경작중인 밭의 언저리에 위치해 있으며, 작은 바위의 한 면에 양각되어 있는데, 마멸이 심한 상태이다. 머리에는 삼산관 삼면화관을 썼고, 원만한 상호에 반안후견으로 고졸한 미소가 확연하다. 오른팔은 오..

06 2021년 03월

06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소이면 후미리 석탑(蘇伊面 厚美里 石塔)

지명도 참 이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탑상골" 조금은 외떨어진 산골짜기 , 무덤가 한켠에서 외롭게 세월을 깁고 있습니다. 밑에 자리했던 복숭아 과수원은 고목을 모두 베어내고 새로 묘목을 심어 놓았습니다. 과수원 온 천지에 냉이가 가득합니다. 같이 동행했던 아내는 탑 구경보다는 봄냄새 가득 품은 냉이에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저는 탑을 구경하면서 오늘 저녁은 냉이국을 먹을수 있겠다 하는 별스런 생각을 해봅니다. 과수원에 묘목을 식재하면서 석탑 주위의 땅도 다듬은 모양입니다. 땅속에서 잠자고 있던 후미리의 기억들을 담은 와편들이 눈에 띱니다.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후미리사지를 입증하는 몇안되는 지난세월을 대변하는 조각들입니다. 언제나 바라보아도 참 좋은 후미리사지의 석탑입니다. 온전한 몸 아니지만 어디에..

04 2021년 03월

04

04 2021년 03월

04

전국방방곡곡/문경(聞慶) 문경읍 갈평리 이강년선생기념비(聞慶邑 葛坪里 李康䄵 先生紀念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仁, 樂寅), 호는 운강(雲岡). 아버지는 기태(起台)이다. 대대로 벼슬을 하지 않던 집안에서 태어나 1880년(고종 17)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행용양위부사과(折衝將軍行龍驤衛副司果)로서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895년 8월 민비가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1896년 1월 11일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순검 이호윤(李浩允), 김인담(金仁覃) 등 3명을 체포하여 농암장터에 운집한 군중 앞에서 효수(梟首)했다. . 이어 제천의 유인석(柳麟錫)을 찾아가 사제(師弟)의 의를 맺고, 유인석 의병부대의 유격장으로서 문경·평천·조령 등지에서 활약했다. 이해 4월..

03 2021년 03월

03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소이면 후미리 공동빨래터(蘇伊面 厚美里 동네빨래터)

지금은 주거공간이 집합시설인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타보니 빨래터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시간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질 단어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어제는 아내와 충북에 산재된 여러 유물들의 사진을 찍다가 눈에 띄이는 빨래터가 있어 사진을 한장 찍어 보았습니다. 흐르는 개울에 시멘트로 물길을 돌려서 빨래판 대용으로 사용할 넒은 빨래돌 주욱 늘여놓은 마을의 공동 빨래터 입니다. 이 곳에서 동네아낙들의 이야기는 꽃을 피웠을 테지요 아마 온 동네의 뉴스의 집합소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지금은 찾는이 없어 황량한 모습이지만 아직도 스러지지 않고 이리 마을한켠을 장식하고 있으니 좋습니다 이 동네를 스쳐간 많은 사람들의 좋은 추억의 장소였을것 같습니다 마을 공동빨래터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

03 2021년 03월

03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소이면 대장리 돌확(蘇伊面 大長里 돌확)

소이면 대장리 지금은 폐교된 대장초등학교 화단에 방치되어 있는 돌확입니다. 화단에 다른 괴석등과 함께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아마 민기등에 방치되어 있던 돌확을 초등학교 화단을 조성하며 아이들의 교육용이나 또는 조경 용도로 놓아 놓은것 같습니다. 돌확은 곡식이나 양념을 돌로 문질러 쓿거나 가는데 사용하는 연장이다. 여기에 보리쌀을 넣고 주먹만한 돌로 돌려가며 바닥을 문질러 대꼈다. 또 마늘이나 고추와 같은 양념을 같은 방법으로 으깨거나, 생선을 뼈 채 가는데도 썼다. 방앗간이 생기기전에 일반 민기에는 하나씩 모두 있었다. 여러가지 모양의 돌확등이 많다.

02 2021년 03월

02

푸른바다의 창가에서/photo 에세이 후미리 냄새

후미리사지 석탑을 보러 갑니다 사진기를 이용해 찍는다는 표현이 아깝습니다. 이제는 가슴속에 가득합니다. 그냥 그렇습니다. 후미리사지 였던 곳을 나는 이 곳을 다시 한번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이해하는 세상으로 바꿔보고 싶었나 봅니다. 사진을 찍다보니 눈에 보이는 와편. 그 시절일까요? 물어도 대답은 없지만 이곳 저곳 보이는 와편의 흔적은 후미리사지가 나에게 줄수있는 마지막 그 시절의 냄새일겁니다. 행복했습니다. 행복 한조각에 봄의냄새 가득 담아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후미리사지 냄새 집안에 가득합니다.

02 2021년 03월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