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06 2021년 03월

06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소이면 후미리 석탑(蘇伊面 厚美里 石塔)

지명도 참 이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탑상골" 조금은 외떨어진 산골짜기 , 무덤가 한켠에서 외롭게 세월을 깁고 있습니다. 밑에 자리했던 복숭아 과수원은 고목을 모두 베어내고 새로 묘목을 심어 놓았습니다. 과수원 온 천지에 냉이가 가득합니다. 같이 동행했던 아내는 탑 구경보다는 봄냄새 가득 품은 냉이에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저는 탑을 구경하면서 오늘 저녁은 냉이국을 먹을수 있겠다 하는 별스런 생각을 해봅니다. 과수원에 묘목을 식재하면서 석탑 주위의 땅도 다듬은 모양입니다. 땅속에서 잠자고 있던 후미리의 기억들을 담은 와편들이 눈에 띱니다.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후미리사지를 입증하는 몇안되는 지난세월을 대변하는 조각들입니다. 언제나 바라보아도 참 좋은 후미리사지의 석탑입니다. 온전한 몸 아니지만 어디에..

03 2021년 03월

03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소이면 후미리 공동빨래터(蘇伊面 厚美里 동네빨래터)

지금은 주거공간이 집합시설인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타보니 빨래터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시간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질 단어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어제는 아내와 충북에 산재된 여러 유물들의 사진을 찍다가 눈에 띄이는 빨래터가 있어 사진을 한장 찍어 보았습니다. 흐르는 개울에 시멘트로 물길을 돌려서 빨래판 대용으로 사용할 넒은 빨래돌 주욱 늘여놓은 마을의 공동 빨래터 입니다. 이 곳에서 동네아낙들의 이야기는 꽃을 피웠을 테지요 아마 온 동네의 뉴스의 집합소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지금은 찾는이 없어 황량한 모습이지만 아직도 스러지지 않고 이리 마을한켠을 장식하고 있으니 좋습니다 이 동네를 스쳐간 많은 사람들의 좋은 추억의 장소였을것 같습니다 마을 공동빨래터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

03 2021년 03월

03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소이면 대장리 돌확(蘇伊面 大長里 돌확)

소이면 대장리 지금은 폐교된 대장초등학교 화단에 방치되어 있는 돌확입니다. 화단에 다른 괴석등과 함께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아마 민기등에 방치되어 있던 돌확을 초등학교 화단을 조성하며 아이들의 교육용이나 또는 조경 용도로 놓아 놓은것 같습니다. 돌확은 곡식이나 양념을 돌로 문질러 쓿거나 가는데 사용하는 연장이다. 여기에 보리쌀을 넣고 주먹만한 돌로 돌려가며 바닥을 문질러 대꼈다. 또 마늘이나 고추와 같은 양념을 같은 방법으로 으깨거나, 생선을 뼈 채 가는데도 썼다. 방앗간이 생기기전에 일반 민기에는 하나씩 모두 있었다. 여러가지 모양의 돌확등이 많다.

24 2021년 02월

24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원남면 복호 서병철묘지

원남면 문암4리(복호)에 위치한 대구인 도암 서병철의 묘소입니다. 복호마을은 백마령고개 바로 밑에 자리한 마을입니다 행정지명으로는 서덩말과 함께 원남면 문암4리에 속하며 대구서씨가 대성으로 있는 마을입니다.복호(伏虎)란 말 그대로 호랑이가 웅크리고 엎드려있는 형상이라는 지명입니다.그런데 이상한것은 호랑이를 뜨솨는 지명일텐데 마을입구에는 근간에 세운 석사자가 있는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을로 통하는 좁은길은 농디구나 소형차의 교행이 불편합니다. 동네의 평균연령이 70세가 넘는등 인구의 고령화로 자꾸만 스러져 가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09 2021년 02월

09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 속리산 순조태실(俗離山 純祖胎室)

태실(胎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으로, 이곳에는 순조의 태가 안치되어 있었다. 항아리에 태를 넣어두었던 것을, 순조가 왕위에 오른 후에 왕의 태실로서 여러 석물을 갖추고 태실비를 세웠다. 태실의 형태는 8각을 기본으로 한 부도(승려의 사리탑) 모양을 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8각의 돌난간이 둘러 놓았다. 앞에는 거북모양의 받침돌과 용을 새긴 머릿돌을 갖춘 태실비가 있는데, 앞면에 ‘주상전하태실(主上殿下胎室)’이라고 새겨 놓았다. 조선 정조 11년(1787)에 만든 것으로, 이 때부터 태실이 있는 산을 태봉산이라 하고 보은현을 군으로 승격시켰다 한다. 태항아리는 1927년 일제가 창경궁으로 옮겨가고 현재는 비와 석조물만 남아있다. 8각형의 돌난간은 1982년 해체, 보..

03 2021년 02월

03

03 2021년 02월

03

20 2021년 01월

20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 사리면 수암리 나씨비석(沙梨面 수암리 나씨비석)

나씨(羅氏)는 중국 백익(佰益)의 후예로 주대(周代)에 대라씨(大羅氏)로 나국(羅國)에 봉해져 나씨가 되었고, 그 뒤 한(漢)나라 초에 예장으로 옮겨져 예장나씨(豫章羅氏)가 되었다. 문헌을 종합하면 시조 나부(羅富)가 봉명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가 미처 돌아가지 못한 사이에 송나라가 멸망하니 발라현(發羅縣)[지금의 나주]에 정착하고, 고려조에 출사하여 정의대부(正議大夫) 감문위상장군(監門衛上將軍)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하여 후손들이 나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