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12 2021년 09월

12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산외면 장갑리선정비군(山外面 長甲里善政碑群)

장갑리는 본래 보은군 산외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남악, 벌말, 궉말, 새말을 병합하여 장갑리라 하였다.비석은 장갑리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모아 한군데에 세워 놓았다. 일제강점기때의 비석이 대부분이다. 보은군 산외면 장갑리 장갑삼거리에 있는 공적비중에 좌측에서 다섯번째 있는 비석이다.비석에는 정삼품통정대부김규한선덕불망비(正三品通政大夫金奎漢善德不忘碑)라고 음각되여 있으며 비의 건립시기는 갑오년(1954) 시월십일로 음각되여 있다. 1910년 산외면 남악리에 살던 전 교관(敎官) 김규한(金奎漢)은 교육에 뜻을 두어 기금을 거출하고 동지들의 뜻을 모아 광흥학교를 설립하고자 하였다.당시 신문에 이와 관련돤 광고가 게재되었는데 학교설립을 위한 취지문을 보면 여전히 유학의 영향력이 많이 남아있음..

09 2021년 09월

09

12 2021년 08월

12

28 2021년 07월

28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회인면 중앙리 오장환문학관(懷仁面 中央里 吳章煥文學館)

오장환시인은 백석, 이용악과 더불어 1930년대 후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918년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에서 태어난 오장환시인은 1951년 34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하였다. 오장환시인은 휘문고등학교를 다닐 때 정지용시인에게서 시를 배웠다. 휘문고등학교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교지 《휘문》에 「아침」,「화염」과 같은 시를 발표하고,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열여섯 살이었다. 어려서 박두진시인과는 안성초등학교를 같이 다녔으며, 일본 지산중학에 유학하고 온 뒤부터는 서정주, 김광균, 이육사시인 등과 가깝게 지냈다. 1937년에 첫 번째 시집 『성벽』, 1939년에 두 번째 시집 『헌사』를 내고 난 뒤에는 “문단에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

27 2021년 07월

27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내북면 동산리 현감이후윤신청덕선정비 (內北面 東山里 縣監李侯潤身淸德善政碑)

내북면 동산리 개을가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영조때 청산현감을 지낸 이윤신의 청덕선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현감이후윤신청덕선정비 (縣監李侯潤身淸德善政碑)라고 음기되여 있습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이윤신은 영조4년(1728년)에 청산현감(靑山縣監)으로 제수되였습니다. 이 청덕선정비는 그 후인 1729-30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동산리는 본래 청산현(靑山懸) 주성면(酒城面) 지역으로 1906년 보은군 주성면(酒城面) 관할로 변경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상리(倉上里)와 신기리(新基里) 일부를 병합하여 동산리(東山里)라 하고 내북면에 편입되었다. 이윤신은 1689(숙종 15)∼?.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덕중(德仲). 초기(楚奇)의 종손으로, 할아버지는..

27 2021년 07월

27

26 2021년 07월

26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내북면 동산리 노면청자혜제중불망비(內北面 東山里 盧勉淸慈惠濟衆不忘碑)

내북면 동산리에 있는 노면청의 불망비입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일제 강점기인 소화6년(1931년)으로 추정됩니다. 비석후면의 비석의 건립시기는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훼손되였습니다.일제강점기 시절의 일본연호는 많이 훼손된 경우가 있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전의관노면청자헤제중불망비(前醫官盧勉淸慈惠濟衆不忘碑)라고 음각되여 있습니다. 비석의 위치는 현재의 위치가 아니라 길 건너편에 있었는데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노면청은 일제강점기 시절 의료혜택이 미비했던 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었으며 빈민들에게는 무료로 의술을 베풀어 질병으로 부터 많은사람들을 구해주었다. 이에 그 혜택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여 이 비석을 세웠다. 노면청은 (1860(철종 11)~1938) ..

20 2021년 07월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