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15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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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맹동면 쌍정리 안병일공적비(孟洞面 雙呈里 安柄一功蹟碑)

음성군 맹동면 맹동농협앞에 세워진 안병일의 공적비입니다. 안병일 선생은 어려운 농촌환경에서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뜻한바 있어 잠시 몸담았던 공무원직을 사임하고 농촌운동에 투신한 이래 음성군 4-H지도자 연합회장, 충북농촌자원지도자 연합회장, 창립회장직을 맡아 농촌봉사활동에 심혈을 기울이셨다. 1961년에는 향리인 봉암리동조합장에 선임되어 음성군 농협이사를 역임중 1969년에는 관내 이동조합을 통합하여 맹동 단위농협을 설립 조합장으로 선임된 이래 7선 조합장으로 빛나는 업적을 쌓으셨고 특히 초창기에는 전 재산을 담보로 대지를 매입하여 사무실을 건축하는 등 무보수로 봉직하면서 인삼포를 직영하여 그 부수입으로 부지매입하여 창고를 신축하는 등 열성적 농촌운돈가로 활동하시다. 이러한 사실이 널리 알려져 농수산..

15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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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맹동면 본성리 미륵불(孟洞面 本城里 彌勒佛)

날씨가 많이도 따갑다. 아카시향이 지천으로 가득하다. 아카시꽃이 필 때면 모내기를 한다는 옛어른들의 말씀을 증명이라도 해주려는 듯 어린 모들이 가지런히 줄맞추어 오월의 햇살아래 해바라기를 하고있다. 몇 번이고 찾은 본성리 미륵불이지만 올 때마다 바라보는 시선이 다름을 느끼니 이래서 또 찾는 마음이 생기나 보다.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본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미륵 석불이다. 화강암으로 조성한 불상으로, 하부가 땅속에 매몰되어 상반신 상처럼 보인다. 머리에는 원형의 관을 갖추었으며 귀는 가늘고 길게 표현하였고 눈과 코, 입은 심하게 파손되어 형태가 뚜렷하지 않다. 이 불상은 높이가 210㎝, 두고 70㎝, 보개 높이 11㎝, 어깨 폭 100㎝이며, 얼굴은 원만하고 머리에 관을 갖추고 있어 위엄이 있고 자비..

14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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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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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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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맹동면 마산리 강대영 송적비(孟洞面 麻山里 姜大榮 頌績碑)

음성군 맹동면 마산리에 있는 강대영의 기념송적비 입니다. 비석이 세워진 시기는 1941년(昭和16년) 6월입니다. 비석은 길가에 자리하고 있는데 풀등으로 가려져 있어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강대영은 일제강점기 시절 면장을 역임했다고 전해지며 마을구장도 16년 재직하였다. 비석은 온전한 상태입니다. 앞면에는 강의관대영기념송적비(姜議官大榮紀念頌績碑)라고 적혀있으며 좌우로 송시가 적혀있습니다. 의관(議官)이라 함은 조선시대에, 중추원에 속한 벼슬로. 고종 32년(1895)에 둔 것으로, 뒤에 찬의로 고쳤다 마산리는 마운동과 매산리의 이름을 합쳐 각 한자씩 따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운동·신평리·매산리와 하본리·..

27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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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금왕읍 유촌리 미륵불(金旺邑 柳村里 彌勒佛)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 있었던 고려 후기의 미륵 석불. 유촌리 미륵불은 대석 없이 하단부가 지하에 묻혀 있으며, 머리 위에는 보관을 쓰고 있다. 두정에는 나발을 표현하였으나 매우 작게 돋을새김을 하여 소발처럼 보이며, 정수리 부분을 길고 뾰족하게 만들어 보관의 아랫면 홈에 맞닿아 있다. 상호는 길게 표현되었는데, 특히 이마의 윗부분이 상당히 커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상호는 살이 많이 찐 편이며 양 볼과 턱이 두툼하다. 턱은 둥글게 표현하여 마치 조선시대 문인석이나 장승을 보는 듯하며, 전체적인 인상의 표현이 문관석을 닮았다. 눈과 코가 손상을 입어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다. 목은 매우 짧아 거의 없는 편이며 어깨는 머리 부분에 비해 왜소해 보인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은..

27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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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음성읍 초천리 애국지사 김영익추모비(陰城邑 草川里 愛國志士 金榮翼追慕碑)

김영익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초천리 148번지에서 김수홍(金壽洪)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충청북도 음성읍 초천리에 있는 백양서당(栢陽書堂)에 다니던 정문영, 정대영, 최만득 등과 음성 장날에 맞춰 시위를 벌였고, 3월 28일에도 음성시장에서 시위를 하였다. 4월 6일 밤 산 위에서 약 5백여 명의 군중과 횃불을 들고 시위하다가 4명 모두 붙잡혔다. 이후 구속되어 징역 4개월 형을 받았다. 김영익은 서울에서 살다가 음성으로 내려왔으며, 60세에 사망하였다. 마을회관옆에 김영익추모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애국지사김영익선생의열추모비(愛國志士金榮翼先生義烈追慕碑)라고 적혀있습니다.추모비 옆에는 마을유래비도 어깨를 나란히..

26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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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음성읍 삼생리 장진성장학비(陰城邑 三生里 張振性奬學碑)

지금은 폐교된 덕생초등학교 정문앞에 서있는 장학비입니다. 일찌기 도일하여 자수성가하여 고향으로 돌아와서 생활하던 중 덕생국민학교의 담장을 기공할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조움을 준 장진성의 노고와 학교사랑을 잊지않기 위해 장학비를 세웠다. 비석의 전면에는 장공진성장학비(張公振性奬學碑)라고 각자되어 있으며 비의 후면에는 장진성의 공적을 기리는 내용이 기술되어있다. 옆에 있는 최건옥장학비와 함께 1982년도에 세워졌다. 비석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분은 삼생2리 태생으로 일찌기 도일 자수성가하여 영주차 귀국 본교에 담장을 기증하였기 그 노고 마음을 기리고자 이 장학비를 세우나이다. 1981년 11월 장학비건립추진위원회, 음성대일석배조각"이라고 장학비의 내용을 서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