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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02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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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생극면 방축리 권근 및 경주이씨 묘표 (笙極面 防築里 權近 및 慶州李氏 墓表)

양촌 권근(1352∼1409)과 그의 부인 경주이씨의 묘지에 있던 묘표로, 묘표(墓表)는 죽은 사람의 사적과 덕행을 기리는 글을 새겨 무덤 앞에 세워 놓았던 것을 말한다.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2001년 3월30일에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양촌 권근의 묘표석은 권근 선생이 1409년 2월에 죽은 후 그해 4월 경기도 양주군 오포면 치모노금동(현재의 성남시 금토동)에 예장했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세종 26년(1444) 3월 묘지를 이장할 때 현지로 운반하지 못하고 456년이 지난 1965년에 권근 선생 사당으로 이전하여 보호 관리해 오고 있다. 권근의 묘표는 8각형의 형태로 8면 중 4면에만 비문을 조각한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체길이 91㎝이며, 지붕돌은 없어진 채 표석만 보존되어 오다가 최..

31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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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생극면 방축리 도통사(笙極面 防築里 道統祠)

생극면 방축리 권근삼대묘를 지나서 위치하고 있습니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산7번지에 있는 3성(공자, 주자와 안향) 및 9현을 봉안한 사우. 공자, 주자, 안향을 비롯하여 국재(菊齋) 권부(權溥), 역동(易東) 우탁(禹倬), 동암(東庵) 이진(李瑱), 이재(彛齋) 백이정(白頤正),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 덕재(德齋) 신천(辛蕆), 노당(露堂) 추적(秋適), 근재(謹齋) 안축(安軸), 경재(敬齋) 안보(安輔) 등의 위패를 봉안한 사우이다. 지금은 공자를 주 위패로 주자와 안향 및 9현을 봉안하고 있다. 최초의 도통사는 1734년(영조 10)에 충주 지방 유림들이 충주시 신니면 화안리에 세웠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8년 사우를 중수하며 독립 정신을 함양하는 집합 장소가 사용하다가 일제..

31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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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생극면 방축리 수원도호부사 권복묘지(笙極面 防築里 水原都護府使 權馥墓地)

(字) 백수(伯綏) 생년 무술(戊戌) 1478년 (성종 9) 합격연령 26세 본인본관 안동(安東) 거주지 미상(未詳) [관련정보] [이력사항] 선발인원 08명 [一等1‧二等2‧三等5] 전력 진사(進士) 관직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문과시험답안 책문(策問) [가족사항] [부(父)] 성명 : 권료(權憭) [조부(祖父)] 성명 : 권염(權念) [증조부(曾祖父)] 성명 : 권준(權蹲) [외조부(外祖父)] 성명 : 여석손(余碩孫) 본관 : 미상(未詳) [처부(妻父)] 성명 : 변강지(卞綱之)[文] 본관 : 초계(草溪)【補】 [가족과거] 자(子) : 권신(權信)[文] 손(孫) : 권순(權純)[文]

25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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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생극면 방축리 문충공권근신도비(笙極面 防築里 文忠公權近神道碑)

권근(權近)은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1398년(태조 7) 1차 왕자의 난 이후 사병(私兵)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 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지고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올랐다. 사후 좌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묘소는 원래 경기도 광주에 있었으나 1440년(세종 22)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8각 봉분 앞에는 묘비와 상석이 각각 놓여 있다. 앞에서 보아 왼쪽이 권근, 오른쪽이 부인 경주이씨의 묘비이다. 묘비는 대석 위에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비신 위는 연화문과 보주(寶珠)로 장식하였다. 전체 높이는 151㎝, 너비는 55.5㎝이다. 앞면에는 ‘조선국좌명공신의정..

24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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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생극면 방축리 문경공권제신도비(笙極面 防築里 文景公權踶神道碑)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제(權踶)의 신도비. 권제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중의(仲義), 중안(仲安), 호는 지재(止齋)이다. 음보로 관직에 나아갔다. 1440년(세종 22)에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였고, 정인지 등과 『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쳤다. 영의정에 추존되었고,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이런 업적을 기리고자 18대손 권오호(權五虎)가 찬하고 김영기(金榮基)가 써서 1993년에 건립하였다. 권제 신도비는 기단 위에 대석을 얹고, 그 위에 비신을 세운 뒤 이수(螭首)로 마무리하였다. 높이는 각각 84㎝, 220㎝, 85㎝이다. 비신은 너비 116㎝, 두께 34㎝이다. 신도비의 전액(篆額)에 “증시문경공지재권선생신도지비(贈諡文景公止齋權先生神道之碑)”라..

23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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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생극면 방축리 익평공권람신도비(笙極面 防築里 翼平公權擥神道碑)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람(權擥)의 신도비. 권람의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이다. 양촌 권근(權近)의 손자이며 문경공(文景公) 권제(權踶)의 아들이다. 1450년(세종 32)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고, 감찰(監察)을 거쳐 교리(校理)를 지냈다. 계유정란(癸酉靖難)에 앞장서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으로 책록되었고, 세조 즉위 후 이조참판(吏曹參判)에 발탁되었다. 이어 좌익공신(佐翼功臣) 1등으로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이 되었고 길창군(吉昌君)에 봉해졌다. 1458년(세조 4) 수찬관(修撰官)으로 『국조보감(國朝寶鑑)』을 편찬하고 우찬성(右贊成), 이듬해 좌찬성이 되었다. 이어 우의정을 거쳐 1462년 좌의정에 올라 이듬해 부원군에 ..

18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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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생극면 방축리 권걸 장명등(笙極面 防築里 權傑 長明燈)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안동권씨묘역 권걸의 무덤앞에 있는 장명등입니다. 장명등은 사찰뿐만 아니라 능묘 앞에 세워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기능을 갖고 있다. 고려 말에 처음 보이는데, 공민왕 현릉(玄陵)의 장명등 이후 왕릉에는 반드시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일품 이상의 재상의 묘역에만 세울 수 있었으므로, 매장된 사람의 신분을 상징하는 표시물이 되기도 했다. 초기에는 불을 밝힐 수 있는 장명등의 화창(火窓) 부분에 실제로 기름 등잔을 놓아 묘역을 밝히는 기능을 했으나, 점차 형식적인 장식물이 되었다. 받침대와 몸체, 지붕의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초기에는 길고 날씬한 기둥 모양이었으나 차차 작고 뭉툭해졌다.

18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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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생극면 방축리 권걸묘지(笙極面 防築里 權傑墓地)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걸의 묘비. 권걸(權傑)의 본관은 안동으로, 양촌 권근(權近)의 증손,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제(權踶)의 손자이며, 길창부원군 권람(權擥)의 아들이다. 1472년(성종 3)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화강암 대석 위에 백대리석으로 비신과 상부를 조각하였다. 전체 높이는 126㎝로 비신은 높이 81㎝, 너비 38㎝의 크기이다. 상부에는 16엽의 연화문을 돌려 조각하였고, 꼭대기에는 보주(寶株)를 올린 흔적이 있다. 훼손이 심하여 글자를 알아보기 힘드나, 상단을 보면 횡서로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 되어 있다. 그 아래 종서로 ‘정부인의령남씨지묘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길창군권걸사일지묘(貞夫人宜寧南氏之墓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吉昌君權傑士逸之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