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15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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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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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미원면 화창리 인천채씨정려문(米院面 禾倉里 仁川蔡氏旌閭門)

인천채씨 효부각은 광주인 정의창(鄭儀昌)의 부인 인천채씨(仁川蔡氏)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효부각으로 1724년(경종4)에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896년(건양 1)에 중수하고 1983년에 보수한 것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사면을 낮은 벽으로 쌓아 홍살로 막고 안에는 효부문 편액을 걸었다. 효부각안에 걸려있는 정려문에는 정려를 받은 시기가 숭정재기유(崇禎再己酉 )라 표시되여 있다.崇禎再己酉라 함은 1729년(영조5)임으로 표시되여 있는데 효부각을 안내하는 안내판에는 1724년(경종4)로 표시되여 있다.둘중에 하나는 바로 잡아야 할것 같다. 본문에 인용한것은 안내판에 의거한것임을 밝힌다.

01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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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낭성면 관정리 백석정(琅城面 官井里 白石亭)

조선 숙종3(1677년)에 東部主簿를 지낸 白石亭 신교(申灚 ; 1641∼1703년)가 세은 고령신씨의 정자이다. 현재의 정자는 1927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관정리 마을 앞 도로를 따라 마을 끝자락을 돌아가면 마을 뒷산 중턱 절벽에 바위를 의지하여 자리하고 있다. 지형상 뒤편에 산을 두고 북향하여 바위에 입지하였으며, 백석정 아래에 넓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건물로의 진입은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약 10m 정도 들어가면 일각대문이 놓이고 그 안에 백석정이 자리한다. 신교(申灚)는 1677년 낭성천(한강의 상류)의 芷潭 邊 절벽에 매달린 높은 바위 위에 백석정을 창건하여 自號로 白石亭이라 명명하고, 그곳에서 당대의 嶺南과 畿湖지방의 유명한 文士들과 문장과 詩歌를 짓고 교류하였다. 에는 신교가 지..

27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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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낭성면 이목리 이정사(琅城面 梨木里 梨亭祠)

낭성면 이목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열심을 내신 애국지사들을 모신 현충시설입니다. 소당 김제환선생을 비롯하여 5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정사 밑에 있는 동네의 쉼터 정자옆에는 이 고장 출신 애국지사이신 소당 김제환선생과 동생 정당 김성환선생의 유허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김제환 선생의 제자들이 1954년 이정사(梨亭祠/일명 낭성사(琅城祠),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이목리)라는 사당을 세웠는데 이후 1979년 다시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는 남당 한원진(南塘 韓元震, 1682-1751)과 성암 박유형(醒巖 朴逌馨, 1858-1929)의 위패를 같이 봉안되었다. 1969년 정당 김성환(定堂 金成煥, 1876-1958)과 각재 신태구(覺齋 ..

26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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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낭성면 이목리 이정사비석(琅城面 梨木里 梨亭祠碑石)

낭성면 이목리 이정사 밑에 마을 정자옆에 자리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시절 애국자인 소당(素堂) 김제환(金濟煥, 1876∼1916) 그의 동생 김성환(金成煥, 1875∼1958)의 유허비 입니다. 이목리 마을 쉼터 옆에 자리하고 있다. 김제환(金濟煥, 1867. 10. 20.∼1916. 10. 5.)은 충청북도 청주군 산내이상면(山內二上面) 이목정리(梨木亭里) 출신으로 일제 침략에 항거하고 단식 순절한 인물이다.자는 문도(文道), 호는 소당(素堂)이며, 본관은 김해(金海)로 일제강점기 청주의 ‘백이숙제(伯夷叔齊)’로 칭송받았다. 1910년 일본에 의해 국권(國權)이 상실되자 고향에서 호적 등록을 거부하고 이른바 ‘경절(慶節)’에 일장기를 달지 않으며 납세 및 부역 등을 거절하는 등 항일투쟁을 하였다.1913..

25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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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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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낭성면 현암리 신득치묘비(琅城面 玄岩里 申得治墓碑)

청주쪽에서 현암리 쪽으로 가다보면 현암리 못미쳐 좌측 야산에 자리하고 있는 묘소가 있습니다. 통정대부로 이조참의에 증직된 고령인 신득치의 묘소입니다. 무덤은 호석을 둘렀으며 문인석과 망주석이 후보되어 있습니다. 신,구비석이 있으며 신비에 새겨진 내용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부군의 휘는 득치(1592-1656)요 자는 평보다. 신씨는 고령에서 나왔는데 멀리 선대의 차레는 고려때 휘 성용이 비로서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이 일어섰다. 관직이 검기군기감이다. 사세를 지나 예의에 이르러 판서가 되었다. 휘 덕린이 절개와 충의가 뛰어나 그 가문을 이어서 열었으며 또 사세에 이르러 본 조정 조선에 영의정 문충공 휘 숙주가 삼대조에 걸쳐 재상을 했으며 네 종의 공훈에 책봉되어 더욱 빛났다. 문충공이 내자사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