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27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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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井下洞 磨崖毘盧舍那佛坐像)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하동에 있는 바위면에 새긴 마애불로다. 머리에는 마치 모자를 쓴 듯하며, 머리 뒤에는 동그란 머리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신체는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자연스럽게 흐르는 얇은 선의 옷주름 표현이 돋보인다. 왼손 검지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잡을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특징적인 손모양은 동화사 비로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이나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과 비교된다. 직사각형의 얼굴, 잘룩한 허리, 볼륨있는 무릎 등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특징이 엿보이는 고려 초기의 작품이다. 주위 정리정돈도 잘해놓았다.주차시설등이 조금 미흡하다.코와 눈이 크게 훼손되었다. 속설에 의하면 부처님의 코를 긁어다가 돌가루를 물에 타서 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하는 기자사상..

22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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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오창읍 괴정리석조여래입상(五倉邑 槐亭里石造如來立像)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괴정리(槐亭里) 사지에 남아 있는 불상으로 9세기 말~10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괴정리 사지(槐亭里寺址)에 있는 높이 222cm의 불상으로 재질이 좋지 않은 화강암으로 조성되었다. 마멸이 심한 편이지만 각부는 잘 보존되어 있다. 소발(素髮)의 머리 위에는 큼직하고 낮은 육계(肉髻)가 마련되어 있으며, 얼굴은 길고 사각형에 가깝다. 이마는 좁지만 백호공(白毫孔)이 있고 눈은 반쯤 떴으며, 코는 큰 편이나 심하게 마멸되었다. 입술은 두껍게 표현되었고 볼은 살이 쪄 있다. 양쪽의 귀는 좁지만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표현되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선명하다. 어깨는 당당하고 가슴에는 살이 찐 원만한 모습을 하고 있다. 법의(法衣)는 양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通肩)..

20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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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율량동 서기사((栗陽洞 瑞氣寺)

청주시 율량동에 위치한 서기사입니다. 효성장례식장 병원이 있는 곳에서 예비군훈련장을 통해 진입할수 있습니다. 서기사는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현재의 서운사 자리에 서기암(瑞氣菴)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청주목 방리조에는 서기암(瑞氣菴)이 관문의 북쪽 13리에 있으며 편호는 12호에 남자 16명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으며,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사찰조에는 고을 북쪽 10리 율봉역(栗峰驛) 뒤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청주목지도」와 전라남도 구례군의 운조루에 소장된 『여지도(輿地圖)』의 「서원지도(西原地圖)」에 서기암(瑞氣菴)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20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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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오창읍 창리사지석불(梧倉邑 倉里寺址石佛)

몇년전에 다녀왔는데 이번에 다시 방문을 하니 주위가 참 많이 변했다. 온통 아파트단지로 변해버렸다. 그래도 지난 세월을 되집어 기억을 더듬었다, 아파트단지 뒤에 자리하고 있다. 아파트와 창리사지 사이에는 철재울타리가 비잉 둘러쳐져있다. 울타리 사이로 몸을 넣고 창리사지의 보살입상을 만난다. 후대(1975년)에 옆에 기거하던 무속인이 석불의 얼굴부분을 손을 보았다는데 생경한 모습이다. 석불옆으로는 자연석을 쌓아서 돌무더기를 만들어 놓았다, 돌무더기 위에는 작은 선돌도 올려놓고 어찌보면 일종의 기자석 같은 치성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느낌이다. 비지정문화재의 아픔이다.

18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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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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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오창읍 탑리석불(梧倉邑 塔里石佛)

오랫만에 다시 탑리를 찾았다. 지명에서도 알수 있듯이 동네에 탑이 있어 탑골 또는 탑리로 불리운다고 한다.지금이야 탑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그 당시의 탑리에 있던 절의 흔적을 전해주는것은 오롯히 앉아 밭한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는 탑리 비로불만 남아있다. 민초들의 서러움 또는 기쁨을 같이하며 자신의 모습 온전히 내주고 얼굴도 알수없이 훼손되었지만 아직도 그 모습은 당당하다. 장대리에 있던 약사불도 같이 모셔 놓으니 두석불이 크기도 엇비슷하고 다정한 친구같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 창리 오창지구대 화단에 있던 장대리석불이 이곳으로 이전되였다. 장대리석불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장대리 석불은 훼손이 심하다. 손에 들고 있는 약합으로 보아 약사불이다.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청원 탑리..

19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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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井下洞 磨崖毘盧舍那佛坐像)

청주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은 문헌기록이 없어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없다. 속칭 돌산으로 불리는 바위산에서 돌출된 판석형의 자연암반에 선각(線刻)으로 조성한 마애불로서 조각양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불상의 윗부분 바위에 보를 끼우기 위한 홈이 파인 점으로 보아 작은 법당 형태의 목조가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처음 조성된 이후 지금까지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신앙의 대상으로서 잘 보존되고 있다. 나지막한 야산의 남서쪽 끝자락에 돌출된 판석 모양의 바위에 선각에 가깝게 부조한 이 마애불은 화려한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머리에는 둥근 형태의 두광(頭光)이 표현되었고 관모(冠帽)를 썼다. 그리고 이마에는 백호(白毫)를 끼웠던 구멍이 있으..

25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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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북이면 선암리 주왕사(北二面 仙岩里 駐王祠)

청원구 북이면 선암리 166-2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풍천임씨감역공파사당(豊川任氏監役公派祠堂)인 주왕사(駐王祠)입니다. 근간에 지어진 사당으로 적벽돌로 담을 둘렀으며 사당과 함께 관리동을 갖추고 있습니다.동네의 이름이 주왕리입니다.주왕(駐王)이란 임금의 말이 머무렀던 곳이라는 뜻일게다 풍천임씨의 시조 임 온(任溫)은 고려 때 경상도 추동 안찰사를 거쳐 어사대부, 감문위 대장군을 지냈다. 그 뒤 6세손 임 주(任澍)에 이르기까지 황해도 풍천에 살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풍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본관 풍천은 황해남도 송화군의 옛 지명이다. 고려 초에 풍주(豊州)로 이름을 바꾸었다.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 때 은율(殷栗)을 합병하여 풍율군(豊栗郡)이라 하였다가 곧 분리하였다. 1469년(예종 1) 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