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18 2021년 04월

18

전설따라 삼천리/역사의 뒤안길(야사) 문의 산덕리 태실의 주인공, 인성군일까 아닐까

조선 왕실은 태(胎)는 국운과 관련이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태를 명당자리를 고른 후 해당 예법에 따라 정성스럽게 매장했다. 그 시설물이 태실(胎室)이다. 나아가 왕실은 태실의 주위에 금표(禁標)를 세워 채석·벌목·개간·방목 등의 행위를 금지시켰다. 금표를 세우는 범위는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어, 왕은 300보(540m), 대군은 200보(360m), 기타 왕자와 공주는 100보(180m)로 정했다. 우리고장에는 진천군 진천읍의 김유신 태실, 충주 엄정면 괴동리의 경종대왕 태실, 청주 낭성면 무성리의 영조대왕 태실, 보은 속리산면 사내리의 순조대왕 태실, 청주 문의면 산덕리 태실 등 5개 태실이 존재한다. 왕명과 인명이 부여된 것에서 보듯 이들 태실은 주인이 모두 확인된다. 이에 비해..

17 2020년 10월

17

중원의 향기/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미륵대원지(水安堡面 彌勒里 彌勒大院址)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이다. 미륵대원지는 중원 미륵리 사지 발굴 조사 중 옛 미륵리 안말마을이 있던 자리에서 확인·조사된 사원 터로서, 대규모 건물지가 동·서·남·북으로 회랑처럼 길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미륵대원지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미륵대원(彌勒大院)’으로 추정된다. 미륵대원의 존폐 시기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연(一然)에 의하여 『삼국유사』가 저술되었던 고려 충렬왕대에 이르기까지 존속하고 있었던 듯하다. 『삼국유사』권1, 왕력(王曆) 1의 신라 아달라니질금(阿達羅尼叱今) 항목에, “계립령은 지금 미륵대원의 동령이다(鷄立嶺今彌勒大院東嶺是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원(院)의 경영이 이루어졌던 사실을 알 수 있다.[출..

13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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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벅수-1(遠南面 馬松里 벅수-1)

원남면 마송리 오미천가에 있는 벅수입니다. 벅수는 마을 입구나 동제구역(洞祭區域)에 세운 마을 벅수과 사찰 입구에 세운 사찰 벅수, 그리고 지역 간의 경계로 삼거나 성문이나 병영(兵營)·해창(海倉)·관로(官路) 등에 세운 공공 벅수로 구분할 수 있다. 경계표나 이정표로 삼기 위해 세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역질을 막고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 수호의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마을의 흉액을 밖으로 몰아내기 위하여 동제로서 벅수제를 행하였으며, 때로는 개인의 소원성취를 비는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였다. 이렇듯 벅수는 엄연한 신앙의 대상이었기에 신성시하며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이 벅수는 원래 음성으로 넘어가는 길목, 곧 마송교 바로 건너쪽 예전의 방앗간 뒤에 있던 것을 현재의 ..

05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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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운동동 청주한씨역사공원(雲東洞 淸州韓氏歷史公園)

청주시 운동동에 있는 청주한씨역사공원입니다. 운동동에 택지개발등으로 인하여 충북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던 청주한씨시조제단비를 이용하여 역사체험 공원을 조성하였습니다. 낮게 막돌로 토담도 둘렀고 조경등도 잘 갖추어 놓았습니다, 주위의 많은 주민들에게 청주한씨시조제단비를 알리며 문화유적에 대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게 하는 좋은 공원입니다. 주위에 있는 양수척효자비와 운곡서원그리고 정려문등을 이용하여 연계하면 아이들이나 주민들에게 좋은 교육의 장소가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10 2020년 09월

10

충북의 바람소리/영동군 황간면 황간향교(黃澗面 黃澗鄕校)

1394년(태조 3)에 하첨(河詹)이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황학루(黃鶴樓)를 세우고, 현(縣)의 뒷산에 창건하였다. 그 후 1666년(현종 7)에 토성(土城) 안으로 이건하였고, 1752년, 1755년, 1901년에 각각 중수하였으며, 1872년(고종 9)에는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 5칸의 명륜당, 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초석이 연화문(蓮花文)으로 조각된 것으로 보아, 사원건축양식과 정자·주택 건축양식이 절충된 것으로 보인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25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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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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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남일면 지북동 김벽묘지(南一面 池北洞 金鼊墓地)

지북동 경주김씨 감사공파묘역에 자리하고 있는 경주인 김벽의 묘지입니다 묘지앞에 자리한 비석에는 사도사첨정경주김공휘벽지묘(司導寺僉正慶州金公諱鼊之墓)라고 음기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사도사라는 관청은 경국대전에 의하면 '궁내 창고의 미곡과 궁내용의 장따위의 물건의 공급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관청'입니다.쉽게 말씀드리면, 궁중에서 사용되는 곡식과 장류(간장, 된장, 고추장 등)를 공급하는 관청입니다. 첨정이라는 벼슬은 종4품의 관직으로 정, 부정과 더불어 관청의 실무를 담당하는 관직입니다. 김벽의 아들인 김응탁 김응련 김응건은 선조23년 증광시에 진시시에 동반합격하였다.

20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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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방방곡곡/영주(榮州) 영주 숙수사지 출토유물(榮州 宿水寺址 出土遺物)

소수서원내에 있는 화단에 전시된 숙수사지 출토유물입니다. 숙수사지(宿水寺址)의 숙수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조선 초기에 폐사되고 1542년(중종 37) 소수서원이 건립되었다. 지금의 영주 소수서원 일대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과 관련된 유물과 유적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어 이 일대에 사찰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사찰이 숙수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숙수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이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출토된 불상들의 편년을 근거로 볼 때 삼국시대 사찰로 추정된다. 그 뒤 숙수사의 사적은 전하지 않으나 고려 후기의 학자인 안향(安珦)[1243~1306]이 숙수사에서 수학하여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안향의 아들과 손자까지 숙수사에서 수학했다는 기록이 있다. 즉, 고려 후기까지는 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