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JJ77행복한 부자 2013. 12. 5.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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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는 조조에게 투항했는가? 본문 이미지 1

청(淸) 광서(光緖) 16년(서기 1890) 상해도서집성국(上海圖書集成局)간행 『회도 삼국연의(繪圖三國演義)』

『삼국지연의』 제59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서량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 한수와 마초가 군사를 일으켜 조조에게 반기를 들고 동관에서 조조군을 크게 쳐부순다. 한수와 마초가 이끄는 서량군을 당해내지 못한 조조는 정공법을 버리고 마침내 반간계를 쓰기로 한다. 한수와 마초의 사이에 불신을 심기 위해 조조는 진 앞에서 한수와 만나 군사 정황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그저 옛일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눈다.

이후 조조는 한수에게 친필 서한을 보내는데, 편지 내용 중 중요한 부분은 일부러 지우고 고치니, 그 편지를 본 마초로서는 더욱 한수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즉 한수와 조조 사이에 모종의 은밀한 약속이 있고, 이 사실을 마초가 알까봐 숨기고 있는 것처럼 조작한 것이다. 일이 이런 식으로 되자 한수는 변명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스스로 화가 나 대진할 때 조조를 죽여버리려 한다. 조조는 조홍을 출전시켜 한수와 조조가 이미 은밀히 내통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하게 한다.

결국 결백을 밝힐 기회조차 없이 궁지에 몰리게 된 한수는 부장들의 권유로 마침내 조조에게 항복하기로 결심한다. 아울러 잔치를 열고 마초를 속여 죽이려 하지만, 뜻밖에 사전에 이 사실을 안 마초가 오히려 연회석상에서 한수의 왼쪽 손목을 잘라버린다. 한수는 부하들의 구출로 목숨만은 겨우 부지하지만 결국 한 쪽 손이 없는 불구자가 되고 만다. 조조에게 항복한 그는 서량후(西涼侯)에 봉해져 장안에서 여생을 보낸다.

『삼국지ㆍ무제기』에 의하면 조조가 일찍이 반간계를 쓴 일은 확실하다. 그리고 싸움에 앞서 한수와 만나 일부러 옛 친구로서의 이야기만을 주고받으며 마초의 의심을 사도록 하고, 또 한수에게 편지를 보내되 문장을 뜯어 고쳐 한수가 조작한 것처럼 위장함으로써 마초의 의심을 유발시켜 한수와 마초 사이에 틈이 생기도록 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일은 사실과 다르다. 조조가 기회를 타 서량군을 대파하게 되자 한수와 마초 등은 함께 양주로 달아났다.

『삼국지ㆍ하후연전(夏侯淵傳)』에 의하면, 한수와 마초의 군대는 후에 하후연에게 격파 당했으며, 하후연은 한수를 끝까지 추격하여 낙양에 이르러 또다시 그를 대파했다고 하였다. 또 『삼국지ㆍ무제기』에는 건안 20년 5월에 조조가 서량을 정벌할 때, 서평(西平)과 금성(金城)의 제장들이 힘을 합쳐 한수의 목을 베어 보내왔다고 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한수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조조에게 항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한수가 잔치를 열어 마초를 해치려고 했지만 오히려 마초에게 왼손을 잘려버린 일이라든가, 조조에게 항복한 후 제후에 봉해졌다고 서술한 내용들은 허구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조조에게 항복하지 않은 한수를, 나관중은 무엇 때문에 조조에게 투항했다고 했을까? 이는 조조의 반간계를 부각시키기 위해 매우 효과적이고 기묘한 시도라고 생각된다. 만약 순수 역사만을 나열했더라면 이 반간계는 지나치게 평범하고 재미없는 줄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관중의 심모원려(深謀遠慮)나 기계묘책(奇計妙策)에 대한 묘사는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종강은 이를 주유의 반간계와 대비하여 평하고 있다. ‘주유가 장간을 우롱한 것은 그 묘함이 야밤에 있으며, 조조가 한수를 이간질한 것은 그 묘함이 대낮에 있다. 장간을 우롱한 주유의 편지는 명백한 데 묘함이 있지만, 한수를 이간질한 편지는 모호한 데 그 묘함이 있는 것이다. 주유가 침대 앞에서 한 말은 그 묘함이 지극히 요긴한 데 있고, 조조가 말 위에서 한 말은 그 묘함이 지극히 하잘 것 없는 데 있다. 속이는 방법이 다르고 나올수록 묘하여 사람을 죽이는 행위조차도 아름다울 지경이다.’ 조조의 반간계를 더욱 신비하고 묘하도록 하기 위하여 일으킨 작용은 너무나 엄청나다. 그래서 나관중은 죽음에 이르러서도 조조에게 항복한 적이 없는 한수를 조조의 면전에서 무릎을 끓도록 만들고 말았다.

그밖에 조조가 한수와 진전에서 한담을 나눌 때 조조가 한수의 나이를 묻자, “40세.”라고 대답한다. 이것은 조조와 한수의 부친이 같은 해에 효렴이 되었다고 한 『삼국지ㆍ무제기』에 근거를 두고 조조와 한수를 동년배로 추측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삼국지ㆍ무제기』의 주에 인용된 『전략』에 의하면, 하진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부터 한수가 죽은 건안 20년까지는 32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그가 죽은 시기의 나이는 70여 세가 된다. 하진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 이미 한수는 40여 세 정도였으니, 건안 16년 조조와 대진할 당시는 응당 60세가 넘은 나이였지, 40세가 될 리는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 다시 4년이 지나, 한수가 피살되었을 당시는 이미 70세가 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가 한수에게 “나이가 얼마인가?”라며 하대하는 식으로 묻는다. 그러나 이 상황은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만약 정말 나이를 물은 적이 있다 할지라도 응당 다음과 같이 물었어야 했을 것이다. “장군의 연세는 얼마지요?” 아니면 “장군의 춘추가 얼마나 되셨소?”라고 했어야 한다. 나이가 고희(古稀)에 가까운 노인에게 어찌 무례한 말을 건넬 수 있었겠는가.

[네이버 지식백과] 한수는 조조에게 투항했는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지 상식 백가지, 2005.12.30,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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