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 & History/덜알려진 2차대전사

祈遇 기우 2007. 5. 18. 19:11

기상천외의 동거정부 제안    A BIZARRE UNIFICATION PROPOSAL

 

프랑스와 프랑스 군을 항복의 나락에서 구하기 위한 마지막 절망적인 시도가 있었다. 그것은 드골과 처칠사이에 계획된 영국과 프랑스의 통일국가(?)였다. 1940년 6월 16일, 런던에서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프랑스 총리 폴 레이노드(Paul Reynaud)의 귀로 전달되었다.

 

“대영제국과 프랑스 공화국은 확고한 결합과 로봇과 노예의 삶으로 인류를 절멸시키려는 당면 과제에 대한 공동전선을 구축하며 정의와 자유를 위한 이 해결책에 결코 양보는 없다. 두 정부는 더 이상 두 개의 국가가 아니며 하나의 프랑코-브리티쉬 국가임을 선언한다. 모든 프랑스의 시민들은 즉시 대영제국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것이며 대영제국의 모든 시민들은 프랑스의 시민이 될 것이다. 대영제국과 프랑스의 모든 무장세력은 단일내각의 지휘를 받을 것이다.”

 

우짤스까? - 한바탕 소란이 일었던 레이노드 내각

 

이 제안으로 프랑스 내각에선 큰 소란이 일어났다. 처칠은 이 난리법석을 회고했다.

 

 “이토록 관대한 제안이 이토록 냉담하게 받아들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내각의 지지를 받지 못한 레이노드는 사퇴했으며 페탱을 수반으로 한 새로운 내각이 1940년 6월 16일 오후 11시 30분에 들어섰다. 페탱은 즉각 독일과의 휴전협상에 임하게 되었다. 이 베르덩의 영웅은 후에 사형은 언도받았으며 나중에 평생 가택연금으로 감형되었다. 그는 1951년 사망했다.

 

 

루프트바페의 사고치다    LUFTWAFFE BOMBS ITS OWN COUNTRY

 

1940년 5월 10일 루프트 바페의 HE - 111 3대가 독일의 프라이부르그를 실수로 폭격했으며 5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악천후로 인해 조종사들은 프라이부르그를 프랑스의 디종(Dijon)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후에 폭탄의 파편들이 발견되었고 독일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독일의 선전부는 이것을 프랑스 공군의 비열한 테러라고 주장했으며 프랑스 도시에 대한 보복공격을 정당화하는데 악용했다.

 

밥은 먹고 댕기냐?

 

 

폐기된 펠릭스 작전    OPERATION FELIX ABANDONED

 

펠릭스 작전은 지브랄타, 카나리 제도, 케이프 베르데 제도를 탈취하려는 독일군의 작전명이었다. 1940년 11월 12일 지령번호 18호로 히틀러에 의해 제기되었으나 실제 실행되지는 못했다. 그 이유중의 하나는 추축군에 가입하기를 거부한 스페인 때문이었다.

 

우린 토미도 아니고, 제리도 아니여

 

    

불발탄 조심!    DANGER! UXB

 

이 불길한 소리(불발탄 : Unexploded Bomb)는 독일군의 런던 공습기간동안 런던 시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많은 독일군의 폭탄들이 지면과의 충돌로 폭발하지 않거나 신관의 폭발이 지연되어 수 시간 동안, 심지어 수 일이 지나도록 폭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 당시 가장 위험한 임무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불발탄들을 제거하는 임무였다. 대영제국 각지에서 차출된 육군, 해군, 공군인원들로 구성된 불발탄 제거반이 이들을 찾아내고 안전하게 해체하는 임무에 동원되었다. 전쟁 초반 이들의 기대수명은 매일 이 임무를 한다고 가정했을때 단 10주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런던 시가지의 아래에는 약 100발이상의 불발탄이 묻혀있다고 믿고 있다.

 

갈 곳 없는 불쌍한 초딩들

 

 

던커크    DUNKIRK (May 26-June 4, 1940)

 

던거크 구출작전(다이나모 작전)의 10일은 현재 하나의 전설처럼 전해진다. 861척의 함대와 조각배같은 작은 배들이 영국의 각지에서 던커크 해변에 고립된 연합군을 구출하려는 절망적인 시도를 벌인 작전이었다. 열흘 동안 공포와 기아, 그리고 사기가 꺽여버린 영국군 총 224,585명을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같은 기간 112,546의 프랑스와 벨기에군이 구출되었다. (불행하게도 40,000명의 프랑스군은 해변에 남겨졌다.) 이 작전 도중, 231척의 구조선과 6척의 구축함이 격침당하였다. RAF는 106기의 전투기를 손실 당했는데 독일군의 손실은 258기를 잃었다. 던커크 철수작전은 영국군 역사상 가장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했으며 6월 4일 작전 종료시 63,897대의 차량(289대의 전차 포함)과 11,000정의 기관총 1,200문의 대포가 해변가에 방치되었다. 이 장비들은 영국 대륙 원정군의 사실상 거의 모든 물품들이었다. 던커크 구출 작전 동안 독일군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스투카 급강하 폭격기를 이용한 것이다. 만약 루프트 바페가 스투카의 급강하 폭격이 아니라 수평폭격을 실시했다면 영국의 피해는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다.

 

일발필중의 제 3제국 공군이닷!

 

그건 아니잖아~ 아니잖아!

 

 

THE STUKA DIVE BOMBER

 

JU-87B 스투카는 한스 폴만(Hans Pohlmann)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1935년 첫 비행을 했는데, 얄궂게도 롤스 로이스엔진을 장착한 채였다. 이 후 모델은 융커스 유모사의 1,200마력엔진을 장착하게 된다. 공격시에 기동되는 특유의 찢어지는 고음은 연합국 병사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하게 만들었다. 어떠한 목표라도 공격시에는 85도의 각도로 내려 꽂히며 정밀한 공격이 가능했다. 스투카의 최고속도는 380Km에 달한다.

 

 브레끼가 없어! 브레끼가 없어~~~뷁~~

 

 

처칠의 귀차니즘    CHURCHILL ORATION AT ITS BEST ... OR NOT?

 

던커크 구출작전 후, 처칠은 국회 의사당에서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 이다! (WE shall never surrender)” 라는 인상적인 연설을 남겼다. 후에, 이 연설은 BBC를 통해 외국에도 방송되게 되었다. 하지만 청취자들은 아무런 눈치도 못채고 말았다. 자신들이 듣고 있는 그 인상 깊은 연설문을 읽어 내려가는 사람이 37살의 배우 노먼 셸리(Norman Shelley)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BBC의 레퍼토리 스탶으로 처칠의 성대묘사로 수많은 청취자들을 속여(?)버렸다. 이에 대해 윈스턴경의 한마디 “배우따위나 하는 일을 하기엔, 차라리 바쁜게 낳다네.”

 

귀찮다니께-_-*

 

사진 찾기도 귀찮다. 맨앞의 여배우로 가린 인물이 노만 셸리 -_-;;

 

 

폭격 방지 풍선    BARRAGE BALLOONS

 

대전 기간 내내 하늘에 떠 있는 이 폭격방해 풍선들을 확연히 볼 수 있었다. ‘하이드로겐 가스로 가득 찬 플라스틱 백’ 당시의 한 기자가 풍선에 대해 묘사한 것이다. 가로x세로가 각 60피트, 30피트인 이 풍선을 최대로 부풀릴려면 약 20만 입방피트의 하이드로겐 가스가 필요했다. 이 풍선들은 영국 각지의 모든 도시에서 볼 수 있었다. 지상의 운용요원들에게 가장 우려할 만한 사태는 바로 이 풍선들이 낙뢰를 맞는 일이었다. 1940년 7월 26일, 한밤중에 휘몰아친 낙뢰는 브리스톨, 어본머스, 필톤지역의 풍선들을 강타해 총 28개의 풍선이 화염에 휩싸인채 추락해 버렸다. 1939년 9월 말에 습격한 강력한 태풍은 계류중이던 약 60개의 풍선을 저 멀리 스웨덴까지 날려버렸다. RAF의 또 다른 고민은 조종학교의 신참들이 이 풍선들을 잡고있는 케이블에 충돌해 버리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는 것이었다. 물론 신참 조종사들에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불덩어리

 

 

구명정 생존 세계기록    LIFEBOAT SURVIVOR RECORD

 

푼림(POON LIM)은 해군 상선 SS 벤 로맨드(SS Ben Lomand)의 승조원이었다. 사이드 항을 떠나 케이프 타운을 경유한 뒤 남 아메리카의 네델란드령 귀아나(Guiana:Surinam)로 향하던 이 상선은 1942년 11월 23일 브라질 해안 외곽에서 U-172에 의해 격침되었다. 허우적 거리던 푼림은 빈 구명정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본 푼림은 하나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생존자는 단 한명이었던 것! 그는 파도에 실려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그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은 조잡한 낚시줄과 바늘 뿐. 그는 그렇게 정처없이 떠나니다 마침내 주변을 지나던 포르투갈 어선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되어 브라질의 벨림 파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가 구조된 곳은 침몰사고 현장에서 무려 1,101Km나 떨어진 곳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영국으로 돌아가게 된 그를 기다린 것은 대영제국 메달과 회사에서 준비한 금 시계였다. 푼림은 47명의 승조원 중 유일한 생존자이며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133일에 거친 구명정 생존 기록이다.

 

 이름 보고 설마 했는데, 역시 중국인이었다

과연 바퀴벌레 중궈인??? 잘 보고갑니다:)
오늘도 댓글을^^ 감사합니다.
사실 프랑코는 스페인내전때 도와준 은혜로 동부전선에다가 의용병들을 투입했다고 합니다.
은혜라고 생각했으면 정규군을 보내겠죠.^^;; 보내기도 그렇고 안보내기도 그렇고 할때 딱 보내기 좋은게 자발적인 민간인들 즉, 의용군들은 보내는 거죠.

그 유명한 타이거 샤크도 시작은 의용비행대라는....
푼림의 얘기는 제가 제일 처음 본 <리더스다이제스트>에 나와있었죠. 원래 아버지가 정기 구독 시작하셨는데, 그 덕에 초띵이던 저도 그 잡지를 읽기 시작했지요. 아무튼 거기 나온 푼림의 수기에 의하면, 당시 그 구명정은 "앞갑판에 놓여 있던 구명용 뗏목"이었고, 세 명의 백인 선원들이 먼저탔다가 유보트에 구조된 뒤 동동 떠다니던 푼림이 다시 얻어탔다더군요. 원래는 비상식량과 라임주스 등이 구비되어 있었지만 어느 미국 구축함이 "짱깨 따위 구하기 싫다"고 생각했는지(푼림도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가는 내용이...) 봐놓고도 그냥 간 뒤, 뗏목의 못을 뽑는 등의 방법으로 낚시를 만들었다더군요. 지나가던 새도 한 마리 잡아서 달걀도 얻으려고 했지만... 그건 실패... 어느 때인가는 고향인 하이난 섬에 귀향왔다가 베이징 쪽만 쳐다본채 죽어간 선비꼴이 나는 것 아닌가 싶어 우울증에 빠졌더라는...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