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 & History/덜알려진 2차대전사

祈遇 기우 2007. 5. 21. 22:24

스위스의 합법적인 유대인들    LEGAL RESIDENTS

 

1942년의 스위스에는 단 9,150명의 유태인만이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있었다. (1931년보다 980명이 늘은 수치) 그들 중 상당수가 독일에 가게와 공장 그리고 기타 재산을 남겨두고 온 부자들 이었다. 사악한 스위스 사업가들은 더러운 방법으로 이 물건들을 낙아챘으며 그들은 유태인의 불행을 통해 자신들의 부를 축적했다.

 

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보단 더 나앗지만....

 

 

떠다니는 아이스크림 공장    ICE CREAM BARGE

 

2차대전에서 가장 특이한 선박은 1945년에 약 백만달러에 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 배의 정체는 바로 아이스크림 바지선이었다. 이 배는 세계 최초의 떠다니는 아이스크림 가게로서 유일한 목적은 태평양 지역의 미 수병들에게 아이스크림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이 배의 승조원들은 매 시간마다 약 1,500갤런의 아이스크림을 제조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선체엔 엔진이 없었지만 터그선이나 다른 선박에 의해 견인되었다. 두 번째 바지선 또한 찰스 자이글러(Charles Zeigler) 소장의 명령하에 나하와 오키나와에 닻을 내리고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이배는 떠다니는 아이스크림 공장은 아니고 떠나니는 창고선

 

 

스핏 파이어와 허리케인    SPITFIRE vs HURRICANE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1940년 절망적인 시기에 영국을 구한것은 스핏파이어가 아니라 허리케인이었다. 스핏 파이어의 재출격시간(재무장, 재급유 등등)은 26분이 소요됐지만 허리케인은 단 9분이면 다시 날아오를 수 있었다. B.o.B 기간중 전투기가 지상에 있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였다. 후에 145비행대의 한 정비병은 신랄한 한 마디를 던졌다.

 “만약 우리에게 스핏파이어만 있었다면 1940년의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핏파이어는 전부 금속으로 만들어진 기체였으며 허리케인보다 빠르고, 상승률과 상승한도에서 우수한 반면 허리케인의 직물로 만들어진 동체는 손상을 정비하기 용이했으며 적의 공격에 더 잘 견딜수 있었다. 초반 4개월동안 격추된 독일기의 대부분은 허리케인에 의한 것이었다. 이 후 펼쳐진 B.O.B에서 스핏은 고고도에서 BF-109를 쫓는 역할을 허리케인은 저고도에서 폭격기 편대를 공격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총 551명의 독일군 조종사들이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었다. 대전기간동안 14,231기의 허리케인과 20,334기의 스핏이 제작되었으며 유명한 롤스로이스의 멀린엔진은 70,000대의 연합국 기체에 장착되었다.

영국 남부의 창공에서 펼쳐진 이 소모적인 전투에서 기지로 돌아온 조종사들이 활주로에 멈춰서자 마자 잠에 골아떨어지는 것은 일상적 이었으며, 지상요원들이 귀환 후 칵핏에 몸을 기대고 잠에 빠진 파일럿을 돌보는 일은 흔한 광경이었다.

 

역시 형님만한 아우는 없었다(는 아닌가?)

 

 

방위성금 헌납기    SPONSORED FIGHTERS

 

B.O.B에 투입된 수 많은 스핏파이어들은 개인이나 민간회사의 후원으로 조달되었다. 영국 각지의 도시와 마을에서 방위성금이 모였으며 이 자금은 한 기에 5,000파운드에 달하는 스핏을 구입하는데 사용되었다. 이렇게 조달된 스핏에 달린 기체명은 각 후원자를 뜻하는데 예를 들어 '독파이터'의 경우는 유명한 케넬클럽(애견협회)을 도로시는 도로시라는 여성을, '생강빵(Ginger bread)'은 붉은 머리의 여성과 남성을(영국에서 생강은 붉은머리를 의미한다 함.) Unshackled(‘해방된’이라는 뜻)는 포로들의 헌납을 의미한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손(?)은 네델란드의 빌헬미나여왕으로 그녀는 215,000파운드를 기부해 완전한 43대의 스핏을 사들일 수 있었다.

 

이 아이는 나중에 마법의 나라 도로시가 됩니다 (이름 새기기 전 사진)

 

 

무총통 아들의 비행기 추락    PLANE CRASH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뭇솔리니의 아들이 1941년 8월 7일 비행기 충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3살의 브루노로서 무씨의 둘째 아들이었으며 4발엔진 폭격기의 테스트 도중 피사의 산 구이스토 공항 근처에서 추락했다. 세명이 그와 같이 하직했고 5명이 부상당했다. 무솔리니는 단숨에 산타 치하라 병원으로 달려와 아들의 시체 옆에서 수 시간 동안 서있은 후에야 다른 부상자들을 위로했다. 브루노는 17세의 나이로 조종사가 된 이탈리아의 최연소 파일럿이었으며 에티오피아 전쟁에선 폭격임무를 스스로 자처하기도 했다.

 

이 양반이 붉은 돼지에 그 양반인가요?

 

 

외국어를 익히자    LEARN A LANGUAGE

 

독일이 점령한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서점주인은 책들을 전시하고 그의 가게 앞에 이런 포스터를 내걸었다. “영어완성 50시간, 토미들이 오기전에 영어를 마스터하자!” 당연히 점령당국은 즉시 이 포스터를 철거할 것을 명령했다. 다음날 새로운 책들이 진열되었고 이런 포스터가 내걸렸다. “독어완성 50시간, 우리의 친구 독일군이 쫓겨나기 전에 마스터하자!”

 

혹시 이런꼴을 당하지 않았을련지 걱정이...

 

 

진짜 럭키 샷!    LUCKY HIT

 

진주만 공격 당시, 하와이의 정기 여객기 DC-3는 착륙도중 일본군 예광탄에 맞아 불길에 휩싸였다. 몇 분 뒤에, 다시 한발을 맞게 되었고 이 탄환은 소화기의 밸브를 강타했다. 그래서 불은 꺼졌다!

 

요 놈은 삐까번쩍한 신품 DC-3

 

 

나의 조국은 U.S.A    ITALIAN AMERICANS

 

전쟁 기간동안 미국에서는 51,165명의 이탈리아 국적자들이 수차례에 걸쳐 감금되었다. 이들중에는 1940년 6월 이탈리아와의 전쟁이 선포되자 운 나쁘게 걸려버린 수백명의 선원들도 있었다. 이탈리아 남성들을 감금한 최대 규모의 수용소는 노스 다코타의 포트 링컨이었지만 1942년에는 몬타나의 포트 미솔라도 이동하게 되었다.

1942년 미국에는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60만에 이르는 이탈리아인들이 있었고 미정부는 이들을 ‘적국인’으로 간주하였으며 114,000명에게 여행금지령이 내려졌다. 약 10,000명에 가까운 이탈리아인들이 캘리포니아 해안가의 거주지에서 내륙으로 강제 이동되었다. 그런 데 갑자기 1942년 10월부터, 이들에 대한 적국인 취급은 철회되었다. 그 이유는 이들에 대한 충성심 테스트에서 보여준 새로운 조국(U.S.A)에 대한 열광적이고 적극적인 지지때문이었다.

 

유쾌한 이들에게 험한날은 얼마가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천국    THE WORKERS PARADISE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공격이 개시된 이후에, 독일군들은 집으로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들이 발견한 상황에 대해 묘사했다.

“빈곤, 비참, 불결함 우리가 지난 몇주 동안에 본 것들은 일일이 다 묘사하기 힘들정도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마다 불결함, 부패, 폐허, 비참, 시체 그리고 고난에 가득차 있습니다. 이 곳 사람들은 전등, 라디오, 신문같은 문명의 이기를 전혀 알지 못하며 그들이 사는 오두막은 썩은 짚으로 바람만 가린 정도입니다. 심지어 농부들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지만, 모두들 소나 돼지를 키우고 있습니다. 도처에 깔린게 이와 오물덩어리이며 집에선 각자 이를 잡아줍니다. 진보나 문명의 일부분을 건설하기 우리의 노력은 헛수고만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선 오직 유대인과 당원들의 배만 부를 뿐입니다. 상황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최악입니다. 우리의 조국 독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들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거기나 여기나 저기나 다 거짓말

저도 주님의 은총이 과한 나머지 감량이 안돼는군요...ㅎㅎ잘봤습니다
저랑 반대시내요 ㅋㅋ 주님의 사랑을 듬뿍받을때 몸관리 잘하시길요~~ 어�든 나의 주님은 당분간 바이바이~
자기 아들 군대 안 보내려고 병역 관련 제도까지 바꿨더라는 29만원 장군에 비하면....
두 아들 모두 군대 안 보내려고 쫄쫄 굶겨놓고서는 "법과 원칙대로"를 외치는 창씨에 비하면...
피자집-살로만치킨집 무사장이 훨씬 낫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