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 My Way/생각없이 살다보면...

祈遇 기우 2006. 1. 14. 23:02

많은 히틀러와 나찌팬(?)들이 곧잘 하는 말이 있다. 만약 히틀러가 무모한 소련 침공을 안하고 폴란드와 체코정도의 동구좀 먹고 영국을 집중공격해서 점령이나 강화를 도모했다면 아마 제 3제국은 지금까지도 존속하지 않을까하는 상상말이다.

 

총통각하의 카리스마 넘치는 포스터. 히틀러는 각종 이미지 조작과 고대 게르만 신화를 차용해서

자신과 나찌의 권위를 높이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단연코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히틀러의 각종언행과 그의 신념을 담은 불후의 명저(?) '나의 투쟁(Mein Kampf)'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히틀러의 소련 침공은 필연적일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수있다. 그리고 극단적인 우경인 파시즘과 극단적인 좌익인 공산주의는 물과 불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또한 독일과 소련의 역사적인 배경을 보더라고 이들이 손을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뭐 한때 불가침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사이좋게 나눠먹었지만 독일과 소련 어느 한쪽도 이러한 평화가 오래가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의 투쟁을 보면 히틀러는 신성한 독일 민족의 레벤스라움을 강조하고 있다. 레벤스라움이란 독일어로 정원이란 뜻인데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해서 곡식과 석유같은 자원을 획득 독일 민족의 번영을 위한 터전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짐승만도 못한 슬라브인들은 선택받은 독일 민족의 노예로 종사함은 물론이다.

 

히틀러의 절대라이벌 스탈린 전후에는 영국의 처칠과 절대 라이벌이 된다.

 

히틀러가 저 책을 집필할시에는 감옥에 있던 기간(역시나 명작은 함부로 나오는게 아니다.)이었고 히틀러는 그후로 천신만고끝에 나찌당이란 광신도 집단을 통해 결국 정권을 획득하게 되면서 자신의 계획을 하나하나 실행하게된다. (소련당국도 이런 독일의 동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고 오히려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 선제공격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대전초 히틀러는 천재적인 군사적 재능을 보이기도하는데 소련침공에선 돌이킬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그 치명적인 실수의 단초는 너무도 유명한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이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사실적으로 잘 그린 수작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독일영화다. 아 그리고

에너미 앳 더 게이트도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주제로 한 정말 볼만한 영화다.

 

단지 도시이름하나때문에 이 절대 라이벌관계인 두사람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전을 벌이는데 히틀러의 무모한 명령과 멍청한 참모(괴링)와 무능한 지휘관(파울루스)의 절묘한 앙상블로 독일은 참패를 당하게 되었고 이 후 소련전선은 독일의 공세에서 소련의 반격으로 전환되고 만다.

 

만약 스탈린그라드가 볼고그라드라는 원래 이름 그대로였다면 히틀러는 참모들의 조언에 따라 스탈린그라드를 우회하거나 다른 전략적 목표를 공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히틀러에게 있어짐승만도 못한 슬라브인종의 추장에 불과한 스탈린의 이름을 딴 이 도시를 그냥 둔다는건 자존심이 허용하지 않았으리라. 스탈린 역시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가 독일의 미치광이 손아귀에 넘어간다는 건 허용하지 않았을거고.....

저도 원래는 히틀러가 스탈린그라드에 집착한 이유를 자존심 때문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Periskop(채승병님 홈페이지)에서는 다르게 이야기 합니다.
독일의 경우에 워낙 넓은 소련땅을 공격하다 보니 병력의 부족이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지형을 이용한 방어선을 구축하려고 합니다.(스탈린그라드 옆을 흐르는 강을 이용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넓은 평야지대 보다는 강을 이용한 방어선이 더 적은 병력으로 튼튼하게 막을수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리고 스탈린그라드의 경우에는 교통의 요지로서 적백내전 당시의 주요 전쟁터 였다고 합니다. 이곳을 점령하면 독일의 보급에는 유리한데다가 모스크바를 위협하기에 딱 좋은 위치였다고 합니다.
변명같지만 위 포스트는 제가 뭘 모를때 작성한 것 이라서요.-_-;; 스탈린그라드는 그 자체로 소련의 주요 물류, 공업기지였으며 충분히 점령해야만 할 이유가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단, 그 도시의 이름이 주는 상징성이 워낙에 많이 부각되었기에 예전 저 처럼(?) 단순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을 뿐이죠.^^;; 지금 스탈린그라드에 대한 포스팅을 작성하고 있는 중 인데 언제 끝났질 모르겠습니다. 댓글 감사드려요
파울루스는 사실 무능하지는 않았죠. 전략적인 사고 하나는 알아 줬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가 세운 작전이 바르바로사 작전에 적극 반영 될 정도였죠. 다만 그는 참모로 작전을 세우는 능력은 좋았는데, 현장에서 지휘를 할 수있는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럴 때 긴박하게 돌아가는 시가전을 맡았으니 개병이 된거죠. 왜 스탈린 그라드가 히틀러의 욕심때문에 망했다는 이야기를 듣냐하면 그 방법 때문입니다. 사실 초기에 도시로 진격한 것은 옳은 행위였습니다. 거의 점령할 뻔 했으니까요. 하지만 소련군의 저항이 거세지고 독일군의 피해가 너무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파울루스는 병령을 뒤로 빼서 남부 집단군을 돕고 루마니아군과 같은 2급 군대로 레닌 그라드처럼 도시를 포위하자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스탈린의 도시를 갖고 싶어한 히틀러는 거부를 했고, 우유부단했던 파울루스는 결국 명령에 따르고 맙니다. 머리는 좋았는데 마음이 약한 지휘관의 패전인 거죠.
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훌륭한 참모가 졸렬한 지휘관이 될수도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예죠. 사실 원래 지휘관감이 아니었으나 이를 방치한 인사권자(히틀러)의 책임도 크다고 볼수있죠. 파울루스가 지휘관으로서 가장 부족한 자질은 결단력이 아닌가 함니다. 제대로된 결단만 내렸어도 스탈린그라드의 비극(독일의 입장)은 최소화될수도 있었겠죠.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