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 & History/덜알려진 2차대전사

祈遇 기우 2009. 2. 27. 04:19

 

 

간만에 올리는 2대전물 입니다. -_-;; 정말 정말 간만이네요. 이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2차 대전이라는 인류 최악의 비극이자 바보 경연장 속에서 살다간 제 3제국의 여인들 이야깁니다. 세상사 다 그렇듯이 그 중에는 적극적으로 히틀러와 나찌에 가담한 여성부터, 이런 불의에 저항했던 용감한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그렇게 살다간 여성들을 담담하게 알아볼까 합니다.

 

* 여기 자주 오셨던 분들은 전에 썼던 '덜 알려진 2차 대전사'의 외전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_-a

 

 

 

 

에바 브라운    EVA BRAUN

 

 

 

본명은 에바 안나 폴라 브라운Eva Anna Paula Braun 1912년 2월 7일 뮌헨에서 출생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하게 된 것은 그녀가 바로 히틀러의 정부이자 부인이었기 때문이지만 -  12년 그리고 하루 - , 그녀가 살다간 인생의 후반부는 미스테리에 둘러쌓여 있다. 에바가 히틀러를 처음 만난건 1929년의 일로 뮌헨 쉘링 거리 50번지에 위치한 하인리히 호프만Heinrich Hoffman - 히틀러의 전속 사진사이자 427번째 나찌당원 - 의 사진관에서 조수로 일하고 있을때였다.

 

 

 

 

독재자의 정부치곤 그렇게 미인은 아닌듯....-_-;;

 

 

 

1945년 4월 30일 총통관저의 지하 벙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에바 브라운은 사실 그 전에 이미 두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1932년 11월, 자살을 기도한 그녀는 목 부위에 총알이 박힌채로 발견되어 극적으로 생존한 적이 있었으며, 1935년 5월 28일에는 완전 자살을 위해 무려 25알의 수면제를 복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램은 단지 희망사항으로 끝났버렸는데 여동생 일제Ilse (1909-1979)가 의식상실에 빠진 그녀를 발견하고 의사를 긴급호출했기 때문이었다.

 

 

 

에바가 이렇게 자살을 기도한 이유는 바로 히틀러의 무관심과 무시때문이었지만 - 그녀는 종종 이런 불만들을 털어놨다 - , 총통은 고급빌라와 자동차를 선물하는것으로 그녀를 달랬을 뿐이었다. 한편 에바가 유태인 박해를 알고 있었다는 건 명백하지만 강제 수용소의 실상에 대해 인지했는지는 밝혀진게 없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에바는 끝까지 나찌당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것과 히틀러와 동반으로는 단 한번도 공공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서비스 컷!(?)

 

 

 

히틀러는 자신의 측근이나 친구들과 달리 그녀에겐 일정한 거리감을 두었다. - 이런 사실들은 후에 별의별 루머들이 퍼지는데 일조하게 된다. 히틀러가 게이였다느니, 여자라느니, 성 불구라느니....- 이건 독일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히틀러의 이너서클들과 달리 일반 대중들은 그녀에 대해 알 수 있는건 별로 없었다.

 

 

 

 

그레틀 브라운   GRETL BRAUN

 

 

 

에바 브라운의 여동생. 프리츠, 프란치스카 브라운 부부의 삼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마르카레테Margarete이며 에바보다 3살 연하다. 언니가 히틀러의 정부만 아니었더라면 평범한 여성으로 살았을 그녀였지만, 세상은 그녀를 가만 두지 않았다. 1944년 6월 3일 그레틀은 무장 친위대 중장인 한스 게오르그 오토 헤르만 페겔라인Hans Georg Otto Hermann Fegelein과 결혼식을 올리지만, 이 결혼은 진정한 의미의 결혼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야심을 채우기 위한 정략결혼

 

 

 

희대의 바람둥이이자 기회주이자인 페겔라인에게 있어 그녀는 출세을 위한 도구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결혼의 피로연은 베르그호프Berghof에서 열렸는데 참석자격은 나찌 당원에게만 주어질 정도로 대중에겐 공개되지 않은 결혼식이었다. 아무런 사랑도 없는 결혼생활 속에서 그레틀은 점차 정신적, 육체적으로 쇠약해져 간 반면 페겔라인은 혼외정사를 즐기며 바람둥이 생활을 이어가고 었다. 매형 히틀러는 매제의 이런 부정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제 3제국이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져 나갈 무렵, 페겔라인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탈출을 도모하게 된다. 1945년 4월 자신의 아파트에서 나오던 페겔라인은 게슈타포에게 체포되는데, 그의 커다란 여행가방에는 여권, 그리고 현금뭉치가 나왔으며 보석중엔 처형 에바 브라운의 것도 있었다. 또 하나 페겔라인이 까먹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헝가리 출신 정부였다.

 

 

 

 

죽고 못사는 너무 닮은 자매 (왼쪽이 그레틀)

 

 

 

언니 에바 브라운의 적극적인 구명노력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노여움을 막을순 없었고, 페겔라인은 체포 다음날 총살에 처해졌다. - 하지만, 그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아 호사가들의 좋은 술안주가 되었다. - 종전후인 45년 5월 5일 그레틀은 페겔라인의 딸을 출산했으며 먼저 간 언니의 이름을 따 에바 바바라 페겔라인Eva Barbara Fegelein이라 이름 지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업보때문인지, 아니면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다 결국 이루지 못한 두 자매의 한 때문인지 1971년 유부남과 이룰수 없는 사랑끝에 자살하고 만다. 이 때, 그녀의 나이 불과 25세였다.

 

 

 

1954년 2월 6일 그레틀은 사업가 쿠르트 베를링호프Kurt Berlinghoff와 재혼하고 뮌헨-라임, 아그네스-베르노이어 거리Agnes-Bernauer 60번지에 거주하게 되었다. 페겔라인이란 이름은 그렇게 지워져갔다. 1987년 10월 10일 그레틀 브라운 슈타인가덴Steingaden에서 7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위니프레드 바그너    WINIFRED WAGNER

 

 

 

위니프레드 윌리암스 Winifred Williams는 1894년 영국 헤이스팅스Hastings에서 작가인 영국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녀가 2살도 되기전에 양친과 사별하게 되었고, 이집 저집을 떠돌다 8살이 되는 해 독일의 먼 친척으로 입양된다. 위니프레드(비니프레트?)의 양부는 칼 클라인트워스 Karl Klindworth로 음악가이자 저명한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친구이기도 했는데, 이 사실이 그녀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우리 결혼했어요.

 

 

 

영민했던 그녀는 곧 바그너의 눈에 띄었던 것이고, 1915년 바그너가의 계승자 지그프리트 바그너Siegfried Wagner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는 무려 25살의 연상이었다. 사실 호모 섹슈얼인 지그프리트 자신은 결혼 자체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자손을 양산해(?) 가업 - 바이로이트 축제 - 을 이어야 한다는 근엄한 아버지의 압력을 이기지 못했다. 사랑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들 사이에 4명의 자녀가 생겨 후계자 양산에는 성공한 셈이었다. 남편인 리하르트 지그프리트가 1930년에 사망하자 위니프레드는 바이로트 축제Bayreuth를 비롯한 바그너가의 모든 것을 물려받았다.

 

 

 

그녀가 히틀러를 만난 건 20년대 초로, 바그너광인 히틀러를 만난 그녀는 나찌에 입당하고 점차 이 미치광이 무리들에게 빠져들게 되었다. 그 와중에 남편이 사망하자 위니프레드 곧 히틀러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강력한 지지자가 되었으며 히틀러의 개인 번역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미망인과 중년총각의 수상한 만남(?)은 곧 호사가들의 망상을 불러일으켰다. '위니와 히틀러는 동거중이다.', '그들은 곧 결혼한다.'등의 소문이 퍼졌지만 결론적으론 헛소리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오늘은 쌀밥을....

 

 

 

 히틀러는 내심 이런 소문들을 즐기고 있었다. '명망있는 바그너가와 자신의 결합'이라는 주제에 국민들이 열광할수록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 둘을 동일시 할것이었고, 그건 바로 자신과 나찌에 대한 충성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아무 배경도 없는 히틀러에게 바그너가의 수장인 위니프레드의 강력한 지지는 커다란 자산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히틀러는 위니프레드에게 청혼을 한 적이 있었다. - 에바가 죽음을 생각할 만한 이유 -  하지만 1933년 총통에 취임하자 없었던 일이 되버렸는데 자신은 이미 국가와 결혼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루이 14세와는 많이 비교되는....- 위니프레드의 거처인 반프리트 별장Wahnfried에 자주 왕래한 히틀러는 그녀의 자매들에겐 볼프Wolf - 히틀러는 종종 보안상의 이유로 Wolf를 사용했으며, 이는 그의 어린 시절 별명이었다. - 란 애칭으로 불렸으며, 바이로이트Bayreuth 축제 기간동안엔 그녀와 공연들을 관람하곤 했다. 1940년 늦 여름 히틀러는 마지막으로 위니프레드와 오페라를 관람했는데 그 작품은 바로 ‘신들의 황혼’die Götterdämmerung이었다고 한다. - 히틀러는 바이로이트 축제에 행정,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바이로이트 축제관람을 위해 반프리트에 온 히틀러와 위니프레드

 

 

 

전후, 위니프레드는 나찌에 협력했다는 혐의는 부인했지만, 히틀러에 대한 믿음만큼은 져버리지 않았다. 이런 그녀의 행동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USA라 조롱하기도 했다. 이 단어는 '우리 고귀한 히틀러'Unser Seliger Adolf 란 뜻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그녀는 유태인 박해를 경멸했고, 반 나찌주의자를 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더 많은 진실은 그녀의 손자가 엄중히 보관하고 있는 히틀러와의 서신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위니프레드 바그너는 1980년 4월 5일 우베를링엔Uberlingen에서 사망했으며, 그 순간까지도 히틀러를 신뢰하고 있었다고 한다.

 

 

 

 

파울라 히틀러    PAULA HITLER

 

 

 

1896년 오스트리아 하츠펠트Hartfeld에서 출생했으며 알리오스와 클라라 히틀러의 5번째이자 마지막 자녀였다. 2차 대전 당시엔 군 병원 의료진을 지원하는 비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진짜 신분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다. 파울라가 오빠의 이데올로기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나찌에 입당한 적은 없었다. 전후 그녀를 심문한 조사원은 그녀가 오빠와 놀랄만큼 신체적 유사성을 보였다고 한다.

 

 

 

어린시절을 같이 보낸 오빠에게 파울라는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 그녀는 조그만 예배당이 보이면 달려가 오빠를 위해 조용히 기도를 올리곤 했으며, 이런 동생을 위해 히틀러는 매년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의 티켓을 보내주곤 했다. 또한 자살하기 직전까지도 그녀에 대한 재정지원을 지속했다.

 

 

 

1943년 3월 파울라는 비엔나의 제국호텔Imperial Hotel에서 히틀러와 재회했는데, 이후로 다시는 오빠를 보지 못한다. 파울라는 오빠가 독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 세계의 주목을 받는 모습을 두려워 했으며, 히틀러가 원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했다. 한편, 히틀러는 그의 저서에서 단 한번도 파울라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배려였다.

 

 

 

 

파울라 히틀러

  

 

 

전쟁이 끝난 후, 미군에 체포된 파울라는 결코 내키지 않는 심문을 당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 또한 유태인 학살-홀로코스트-에 관련있다고 주장했지만, 오빠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분담하려하는 이 가녀린 시도는 무시되고 말았다. "아무리 뭐라도 그는 제 오빠였어요."파울라가 눈물을 흘리며 심문관에게 남긴 말이었다.

 

 

 

한편, 그녀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는데, 그건 바로 파울라의 구혼자였다. 제 3제국의 광신도(약 4,000명의 학살의 책임이 있는) 이자 오스트리아 출신의 의사 에르빈 예켈리우스Erwin Jekelius란 자가 바로 파울라의 구혼자였는데, 히틀러는 결혼 허락을 구하기 위해 온 이 미치광이를 바로 체포해서 동부전선으로 보내버렸다. 살아서는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곳이었다. - 파울라가 실제 결혼생활을 했다는 주장도 있으며, 이 때문에 그녀 역시 개스실에 책임이 있다고도 한다. -

 

 

 

이후 파울라는 독신으로 베르히테스가덴Berchtesgaden 근방에 2칸짜리 집에서 기거했으며,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카톨릭 교회였다. 단 한번도 권력의 중심부, 베르그호프에 가보지 못했던 그녀는 1960년 6월 1일 사망했으며 베르히테스 가덴, 베르그프리트호프Bergfriedhof에 안장되었다.

 

 

좋은 자료 잘봤습니다. 에바가 갈색머리였군요. 전 블론드일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갈색이던 블론드던 별로 매력적이진......-_-;;
여타 최고 권력자와는 다르게 여자 관계가 복잡하지 않군요.
성불구자라는 말도 있고, 개인의 의지로 여자를 멀리했다는 말도 있고,
권력으로는 어떤 여자라도 차지할 수 있었을텐데 히틀러 참 이상하고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히틀러가 차라리 여자를 좋아했으면 2차 대전이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수도....-_-;; 그리고 제 블로그 포스팅 양이 엄청 늘었을 수도 ....
잘봤습니다
우리나라 히틀러가있다면 언젠가 인구한명더 있을뿐이라는데
아직도그렇케 생각하십니까.
그것이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