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 & History/World WarⅡ

祈遇 기우 2009. 4. 9. 18:06

 

 

방어로의 전환    Shifting to Defence

 

 

 

만네르하임과 대통령 리티Ryti는 백해로의 공세는 깨끗이 포기하기로 결심하는데 이는 미국이라는 거대 괴수를 자극하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이 덕분에 소련의 중요 보급항인 아르한겔스크Archangelsk에는 영국과 미국의 전쟁 물자들이 지속적으로 보급될수 있었다. 1942년 1월에 이르러서는 소련군의 잔존 세력들을 소탕할 수 있었으며, 이즈음 방어선은 이미 강고하게 구축된 상태였다. 지협과 중요 거점 곳곳에 요새화 진지와 참호등이 건설되었으며 건설이 불가능한 북부지역엔 스키병들이 밤낮으로 순찰을 돌며 적정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당수의 동원해제가 이뤄졌는데 이는 전쟁이 예상 이상으로 장기화되면서 사회 곳곳에서 인력자원의 부족이 심각해졌기 때문이었다. 5개 사단이 해체되었고 전선유지에 필요한 인원들만이 방어선에 남게 되었다.

 

 

 

 

소련군의 반격    Soviet Counterattacks

 

 

 

1942년 초 어느 덧 여유(?)을 되찾은 소련은 드디어 본격적인 반격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수 개의 사단과 해군 육전여단 병력들이 동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마셀캐Maaselkä 지협의 크리프Kriv지역으로 침공해 들어왔지만, 카렐리아 지협을 방어하던 핀란드 제 3여단의 신속한 기동으로 심각한 타격만을 입은 채 패퇴하고 말았다.

 

 

 

또한, 1월초엔 핀란드 만에 위치한 수우르사리Suursaari섬을 탈취하기도 했는데, 이 또한 빙판을 가로질러 기습을 감행한 아로 파자리트Aaro Pajarit 중장의 P 전투단에게 완패 3월에 물러나고 말았다. 이 작전에선 핀란드 공군의 강력한 지원이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또 같은 시기 소련은 백해 서부에 거점을 마련키 위해 포벤차Poventsa 와 카르후매키Karhumäki 점령을 목표로 한 공세를 수차례 시도했다. 2개의 보병연대와 1개의 스키 여단이 이 공세에 참가했는데, 이런 그들을 환영해 준 건 베테랑 중의 베테랑 제 1 야캐리Jääkäri 여단이었다. 그들은 소련군을 타포니에미Tapponiem로 유인해 전멸시켜 버렸는데, 이게 바로 침략자에 대한 핀란드식 환영인사였다. 이 전투 후 소련군의 시체와 피로 시산혈해를 이룬 이곳엔 별칭이 생겼는데 그건 바로 '도살자들의 곶Slaughter Cape'이었다.

 

 

 

 

 

 

 

1942년 4월에는 소련군은 전쟁 들어 사상최대 규모의 공세를 가했다. 시배리Syväri 강을 따라 다수의 KV-1 전차부대를 포함한 3개의 군단이 물밀듯 핀란드의 방어선을 향해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으며, 이 강력한 충격력에 마침내 돌파구가 열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제 3, 6 기갑중대Panssari Komppania를 포함한 4개 핀란드 사단이 역습을 가해 소련군의 선두는 고립되었으며 곧 섬멸되고 만다. 이런 치열한 공방전 끝에 1942년 6월 시배리Syväri강의 방어선은 가까스로 다시 안정될 수 있었다.

 

 

 

이 사이 북부의 케스텐가Kestenga 전선에선 수개의 소련군 사단이 핀란드 - 독일 군단에 공세를 가해 약간의 성과를 얻었으나 진격은 곧 돈좌되고 말았다.

 

 

 

7월은 그야말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나날들이었는데, 이 기간동안 지협에서 벌어진 전투들은 세파스토폴의 비장함과 참혹함을 능가할 정도였다. 양측은 상호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여전히 핀란드의 방어선은 굳건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이 즈음 정면으론 도저히 안되겠다 생각한 소련군은 파르티잔 여단을 핀란드 군의 배후로 침투시켜 매복하는 전술을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전술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핀란드 군들이 이들을 소탕하는데는 수일밖에 소용되지 않았으며 그 피해 또한 경미했다. 이 극지의 산림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이들을 숲에서 상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듯 보였다.

 

 

 

 

전선의 고착화    Stalemate

 

 

 

1942년 7월 이후와 43년 사이 더 이상의 대규모의 전투는 발생하지 않은 채 전선은 고요하게 유지 되고 있었다. 대신 오네가 호수와 카렐리아 지협사이에서 양측은 총대신 삽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삼림이 울창해 참호나 진지 건설이 불가능한 곳에선 병사들에 의한 정찰과 감시가 이를 대신했으며 수많은 소규모 교전들이 벌어졌다. 정찰작전에선 첩보를 위해 포로를 잡거나 방어거점에 대한 정탐등이 주 과제가 되었으며, 이 와중에 벌어진 교전들로 많은 진지와 참호들을 주인이 수시로 바뀌곤 했다.

 

 

 

 

 

 

핀란드 군의 공격에 분노한 소련군은 민간인 마을들을 공격하곤 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양측의 증오심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평화의 모색    Securing Peace    그리고 탈리 이한탈라    Tali-Ihantala

 

 

 

전쟁이 점차 소모, 지연전으로 바뀌고 독일군의 패색이 짙어지자 핀란드는 평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소국에 불과한 핀란드로선 이런 소모전의 끝은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이 원한건 단 하나, 바로 무조건 항복 뿐 이었고, 이는 핀란드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핀란드의 이탈을 눈치챈 히틀러는 군사지원을 중단했을 뿐 만 아니라  중요 군사물자 들을 철수시켜 버렸다. 핀란드로선 최대의 위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1944년 6월, 소련은 이제 끝장을 보자는 듯 2개의 근위 전차군을 앞세워 카렐리아 전선에 대한 전면 공격에 나섰다. 이번에는 예전의 소련군이 아니었다. 근위 전차대란 정예를 동원했으며, 또한 그들의 장기인 적의 전술을 익혀 적에게 써먹는 법을 알아버린 소련군이었다. 대량의 전차를 앞세운 이 공세에 변변한 대전차 화기를 보유하지 못했던 -독일군이 철수시켜 버린- 없던 핀란드 군의 방어선은 곧 뚫리기 시작했다.

 

 

 

뚫린 방어선 사이로 핀란드군은 고립되어었으며, 이제 그들이 모티Motti가 날 판이었다. 이제 핀란드의 운명은 핀란드인들의 손을 떠날듯이 보였다.

 

 

 

 

또 다른 영웅 라구스 전투단의 활약을 볼 수 있는 탈리-이한탈라


 

 

이 급박한 사태에 만네르하임은 히틀러에게 급히 개인친서를 보내 그를 달래고 대전차 화기의 지원을 요청했다. 만네르하임이 히틀러의 결단을 바라며 초조함에 시달릴 사이에 소련군은 비푸리 북부 산림까지 진입하고 있었으며, 바로 이 곳이 2차대전 북유럽 최대의 결전인 탈리-이한탈라Tali-Ihantala 전투가 벌어질 곳이었다. 일주일간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핀란드 군은 소련군의 공세를 가까스로 저지시킬수 있었다. 가까스로 때 맞춰 도착한 도착한 독일의 대전차포와 판쩌 파우스트가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비푸린라티Viipurinlahti, 부오살미Vuosalmi, 시란매키Siiranmäki 와 애이래패Äyräpää역시 치열한 전투 끝에 소련군의 진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기분좋게 핀란드를 말아먹고 베를린으로 향하려던 스탈린의 계획은 다시 엉망진창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전후 구상에 큰 차질이 벌어질 수 도 있는 일이었다. 루스벨트와 처칠은 오히려 고소하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 이었다. 핀란드로서도 이런 소모적인 전쟁은 아무리 이긴다 해도 결국엔 재앙으로 끝날 뿐이었다. 마침내, 핀란드와 소련은  더 이상의 전쟁 대신 평화를 선택하기도 결심하게 되었다.

 

 

 

이로서 핀란드는 독립을 지키고 소련과의 전쟁을 끝냈지만, 아직 또 다른 전쟁이 남아있었다.

 

 

 

 

* 글이 용두사미가 된 것같은데 어차피 간단리 보는 거니까요.-_-;; 사죄의 의미로 미스 핀란드 에시 푀이치 Essi Pöysti -미스 수오미-양을 공개(?)합니다. 2009 미스 유니버스 출전자랍니다.

 

 

 

 

 

 

 

 

174cm의 아주 시원스런 미녀군요. 뭐 어쨌건 전쟁 이후로 핀란드는 랩랜드 전쟁 - 핀란드와 독일 -을 한 번 더 치룹니다. 그 후 전후 냉전시기에는 중립을 지키며 소련의 대 서방 창구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와중에 유명해진 게 바로 노키아란 회사죠. 탈 냉전 시기에 이르러 핀란드 군의 무기 체계는 서방측을 따르는 기준을 보이는데, 사실 그전 까지 핀란드군의 주요 무기체계는 러시아와 많이 유사했습니다.

 

 

하필 왜 과거 적국의 무기체계를 받아들이냐고 의아해할 분들도 계실텐데, 그게 바로 핀란드가 1, 2차 겨울전쟁을 치루면서 실감한 눈물나는 전훈이었거든요. 탄약의 부족!!!! 즉, 적의 무기를 노획해 고대로 돌려준다는 나름 합리적이고 독한 정책을 도입한 덕분이었습니다. 그럼, 핀란드 이야기는 다음에 또 하도록 하고요. ^^;; 요새 감기는 너무 지독하네요. ㅠㅠ 몸 건강하시길~~

 

 

 

** 간혹 핀란드군을 독일군과 착각하시는 분들이 보이는데 아마 군장과 스바스티가 때문에 그런 것 같네요. 핀란드의 스바스티카와 독일의 스바스티가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죠. 또한 군장같은 경우 핀란드는 일찍이 1차 대전이전 부터 독일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비슷하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죠. ㅎㅎ

 

에시 푀이치!!! EE
처음엔 무슨 말인지 했네여ㅋㅋ. 지금 검색해 보고 알았다능 -_-;; (지가 쓰고도 뭘 썼는지 모르는 기우ㅠㅠ)

잘 들어가셨나 보군요. 무운(?)을 빕니다. ^^;;
여자가 너무 예쁜다능!!!!!!!!!!!!!!!!!!!!!!!!!!!!!!!!!!!!!!!!!!!!!!!!!!!!!!!!!!!!!!!!!!!!!!!!!!!!!!!!!!!!!!!!!!!!!!!!!!!!!!!!!!!!!!!!!!!!!!!!!!!!!!!!!!!!!!!!!!!!!!!!!!!!!!
역시 북방 엘프는 특별하다능.....(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