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 & History/전쟁의 뒷담화

祈遇 기우 2008. 9. 18. 01:08

* 에구구 한달이 넘어서야 2편을 올리는군요. 요새 포스팅을 뜸하게 했긴 했군요. -_-;; 1편은 아래로 가시면 됩니다.

 

 

 

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8cPM&articleno=13391794&categoryId=

 

 

 

영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청취한 이 날 처칠의 연설은 그 다음날 언론의 중요한 테마로 떠올라 대대적인 논쟁거리가 되었다. 그 중의 하나는 연설의 문맥에 있던 문제였는데, 해석 나름이지만 연설의 마지막 부분은 마치 엄청난 불행의 도래를 예고하는듯 했다. 5월 20일 독일군은 마침내 영불 해협의 해안에 도달했다. 이에 언론들은 BEF(British expeditionary force)의 후방이 위협당할지도 모른다는 분석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5월 23일 처칠은 국회 의사당에서 행한 보고에서 해협의 항구들에서 격렬한 전투가 발생중이라고 언급했으며, 당연히 언론들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한편 이와 동시에 일련의 방어 정책들이 공포되고 실행되었다. 평화주의자들과 제 5열로 의심된 자들을 체포되었으며 대규모의 징병관련 법률들이 통과되었다.  

 

 

 

국가 기도회    Day of National Prayer

 

 

던커크로 구조대를 파견한다는 정식결정은 5월 25일 방위 위원회에서 결정되었지만, 사실 로열 네이비는 주지했다시피 최소 10일전부터 영불 해협으로 향하고 있었다.

 

 

 

 

던커크 해안에서 저항하는 영국군

 

 

5월 26일 마침내 던커크에서 구조작업이 개시되었고 이 순간,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선 국왕과 수상, 켄터버리 대주교등이 참석한 대규모 국가 기도회가 개최되었다. 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영국 육군을 구할수 있는 전능을 호소했다. 그리고 이 감동적인 기도회의 감흥은 영국 전역 수천개의 교회로 전파되어 수많은 영국인들을 하나로 묶고 있었다.

 

 

5월 27일 월요일부터 30일 목요일 사이 영국인들이 위안을 얻을 만한 기사거리를 찾기란 힘들일이었다. 그들이 들은 뉴스라곤 BEF와 프랑스, 벨기에 연합군은 던커크에서 철저히 포위당했으며 독일군의 압박은 나날이 증대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 뉴스는 RAF가 독일공군에 엄청난 손실을 강요하고 있다라는 것 뿐이었지만, 이건 어마어마하게 과장된 사실이이었다. 신은 딱히 그들의 편은 아니것 같았다

 

 

 

BEF를 지원하던 RAF의 파일럿들

 

 

5월 29일에는 포위된 연합군 머리위에 공습이 시작되었다. 이에 벨기에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투항해버렸고 덕분에 포위망은 더욱 더 좁혀들었다. 끝도 없는 불안감이 BEF를 엄습하고 있던 이 때, 1차 대전에도 참전했던 베테랑들은 정확하게 사태를 인식하고 있었다. - 연합군의 동부 측면은 약화될대로 약화되어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가 버티는건 시간문제라는 걸 -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수 없는 그들만의 생각이었다.

 

 

그들의 이런 생각은 5월 30일 조지 6세가 BEF의 지휘관 고트Gort 경에게 보낸 서한이 공개되면서 맞아 떨어지는듯 했다. 이 편지는 해석하기에 따라 마치 영원한 이별 farewell을 고하는 것으로도 느낄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지난 2주간 경이 이끄는 영국 원정군의 모든 장병들은 충만한 자부심과 경탄을 금할수 없는 용기로 저항을 지속해왔다. 어찌할수 없는 외부의 극단적인 위협에 직면했어도 대영제국의 병사들이 보여준 무용은 영국 육군사에서 결코 지워질수 없을 것이다. 조국이 위기에 처한 이 시기 경과 경의 위대한 병사들은 고국에 있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함께 할것이다. -

 

  

 

이분이 나중에는 팬티를 바깥으로 입으시고 지구를 구한다.-_-;;( 귀썩을 농담임.)

 

  

목요일 저녁에 이르자 상당수의 영국인들은 이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할거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으며, BBC또한 BEF의 항복은 불가피할거라고 보도하고 있었다.

   

 

 

던커크의 기적    'Miracle' at Dunkirk

 

 

하지만 모두가 절망적인 기도를 드리던 그때, 그리고 국왕의 서신이 공개되던 그때 이미 126,000명의 병사들은 구조된 상태였다. 또한 BEF의 상황역시 알려진것과 달리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았다. 기실 처칠과 그의 내각은 '기적'을 연출하고 싶어했고 그 시도는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었다. 5월 31일 금요일 언론들은 전날과는 정반대 분위기의 뉴스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수일동안의 구조작전으로 BEF의 대부분이 탈출에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더 타임스는 'Sea Grip'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고트와 BEF를 각각 아나바시스Anabasis 바다편의 크세노폰Xenophon과 그의 일만용사로 비유하며 이 쾌거를 자축했다. 다른 신문들역시 더 타임스에 문학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이 쾌거를 칭송하는데 절대 인색하지 않았다. 그들의 헤드라인은 'Saved', 'Disaster Turned to Triumph', 'Rescued From The Jaws Of Death'와 같은 문구들로 장식되었다.

 

 

 

집으로~! 집으로~!

 

 

6월 2일 일요일, 세인트 폴 St. Paul 교회의 주임 사제는 '던커크의 기적'miracle of Dunkirk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이는 영국인들의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이라고 언급했다. 그 다음주 각 언론사들은 쏟아지는 독자들의 편지로 한바탕 곤욕을 치뤄야 했다. 이 편지들의 작성자들은 켄터베리 대주교의 설교, 즉 국가 기도회가 국면 전환의 전환점이 될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던커크의 기적은 전 영국인들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인간세계에 대한 신의 간섭을 믿고 싶어하는 이들은 그들이 원하는 명확한 증거들을 신문지상에서 찾을수 있었다. 고요한 바다와 짙은 안개 는 영국에겐 최상의 조건이었지만 독일 공군기에겐 혹독한 조건이었나니.....

 

 

이 위대한 국가적인 드라마가 펼쳐지는 동안 BBC은 상륙하는 병사들과의 인터뷰를 허가받았으며, 뉴스 영화용 카메라들은 웃고, 손흘들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해변에서 걸어나오는 병사들을 찍느라 부산했다.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패잔병이라곤 볼수없는 가오(?) 잡힌 모습

 

 

이 메시지가 보여주는건  명확했다. 영국은 비록 대륙에서 축출되었지만 그들만의 불굴의 정신은 결코 꺽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6월 5일 인기작가인 JB 프라이스틀리JB Priestly는 그의 첫 BBC 뉴스 해설을 진행하면서 던커크의 기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덧붙였다.

그는 뜬금없이 영국의 인기가수 그레이시 필즈 Gracie Fileds의 이름을 딴 작은 외륜선 - 전쟁전에는 포츠머스와 와이트 제도를 운항하던 -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프라이스틀리는 이 작고 볼품없는 외륜선이 이번 구출작전에 동원되었다며 그에 대한 헌사를 바쳤다.

 

 

 

 

흉아 신작나왔다

 

 

"이 작은 외륜선, 그녀가 보여준 용기와 침몰한 그녀의 자매들은 영원할 것이며 던커크라는 대 서사시로의  영원한 항해를 결코 멈추지 않으리.  우리의 위대한 후손들은 우리가 패배에서 영광을 쟁취함으로써 이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승리를 쟁취했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그리고 이 작고 볼품없는 외륜선이 지옥으로 출항하여 마침내 영광을 가득앉고 귀환했음을 알게되리라."

 

 

 

지극히 영국적인 이야기    A very British story

 

 

그 다음 날 수많은 신문들은 던커크에서 목격된 수많은 민간선박들, 작은 증기선, 하천 여객선등의 활약상을 소개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징발된것이며 또한 그 대다수에 해군 예비역들이 투입되어 구축함에서 해변까지 병력들을 실어나르는데 소소한 일(?)에 종사했다는 사실은 소개되지 않았다.

 

 

당시 영국언론들은 던커크의 진실엔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더 타임스의 사설은 이 작전에 동원된 민간인들에게 최상의 미사여구를 사용한 헌사를 바치기도 했다. 어쨌든 자신들의 군대를 구하기 위해 거칠고 위험한 해협을 건넌 작은 배들의 이야기는 불요불굴한 영국인들의 상징으로 소중하게 기억되기 시작했다.

 

 

 

이 지도 앞에 던커크 따위는 급 버로우!!!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진실과는 동떨어진 K국의 스펙타클 대하판타지 같은 이 이야기는 영국 전역을 쾌감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비록 패했지만 정의롭고 용감한 자가 최후의 결정적인 순간에 위기에서 탈출한다는 이 고리타분하지만 지극히 영국적인 이야기는 그때나 그후로나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이야기 거리중 하나가 되었다.

 

 

영국 전역에 퍼졌던 이 비이성적인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어 가던 6월 4일 처칠은 의회연설을 통해 영국이 겪고 있는 진정한 위협에 대해 명확하고 냉철하게 밝혔다. 그는 국민들에게 이번 구출작전으로 모든게 끝난것은 아니며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벌어진 엄청난 군사 재난을 상기할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ㅠㅠ

 

 

하지만 영국인들은 진정으로 그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보다 신화를 선호했으며 그 어떤 누구라도 자신의 믿음을 손상시키는 것을 원치 않았다. 물론 처칠이라고 예외가 될순 없었다. 영국인들은 거짓에 냉정한 이들이었지만 그들 스스로 거짓을 즐기고 있을때는 예외였다. 특히 이번처럼 그 거짓이 국가 생존의 키를 쥐고 있다고 생각할때는 더욱 말이다.

 

 

뭐, 사실 기적이 아니라 히틀러의 판단미스에 따른 당연한 결과죠.
그런데 그 판단미스로 가는 과정자체는 나름 타당했었죠. 뭐 어쨌거나 처칠경은 저렇게 해서라도 시민들의 사기를 올리려 했는데 2MB-G 는 똑같은 방법(?)을 쓰고도 영 아니올시다이니....-_-;;
참고하기 위해 가져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