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학/서양철학

    和光同塵 2017. 1. 18. 21:23

     

    ‘유토피아’는 16세기(1616년)

     영국의 휴머니스트 토머스 모어(Thomas More)가 만든 말이다.

     

    유토피아(utopia)’는 ‘u’와 ‘topia(장소)’의 합성어로,

    그리스어에서 ‘u’는 ‘없다(ou)’는 뜻과 ‘좋다(eu)’는 뜻을 함께 갖고 있다.

     

    그러므로 ‘유토피아(utopia)’는

    이 세상에 ‘없는 곳(outopia)’을 뜻하지만,

    동시에 ‘좋은 곳(eutopia)’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토피아 개념의 다의성과 애매성은

    바로 이 같은 이중적 의미에서 비롯된다.

     

    유토피아는 우리말로 이상향, 이상사회, 이상국가 등으로 표현된다.

     

    1516년에 간행된 《유토피아》의 원제는

    《최상의 공화국과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이다.


    라틴어로 쓰인 이 작품은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라는 말을 최초로 만들어낸 작품으로서의 의미가 크지만,

    그 자체로서도 가장 뛰어난 유토피아 문학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역설과 유머, 냉소와 위트로 당시 유럽 사회에 대한

    예리한 비판을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극적인 재미까지도 놓치지 않고 있다.

     

    《유토피아》는

    실존 인물인 피터 자일즈(앤트워프시의 서기관)와 제롬 버스라이덴(찰스 5세의 고문관)과

    주고받은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리파엘’이라는 가상인물

    사실감을 더해 주기 위한 문학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유토피아>는 기본적으로

    토마스 모어

    리파엘 히슬로다에우스와의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리파엘의 근본적이 주장은

    부의 분배가 공정한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라고 주장하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유재산이 존재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에 토마스 모어는 사유재산이 없어지면

    사람들은 나태해지고 일은 제대로 안 할 것이며

    다른 사람들한테 무임승차 할 것이라고 반박한다.

     

    리파엘은 그런 모어를 보면서

    유토피아를 갔다와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며

    유토피아에 대해 설명한다.

     

    유토피아는 일단 돈이 없다.

    가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진짜 돈을 안 쓴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하루 6시간씩만 일하며

    생필품을 시장에서 돈 안 내고 가져갈 수 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고?

    유토피아의 생필품들은 전부 유토피아인들이 만들어낸다.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기술을 배워서 대대로 생필품을 만들어낸다.

    또한 일 안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6시간만 일을 해도 충분한 생필품이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노동을 열심히 하면 죽고 난 후,

    사후에 보상을 받는다고 믿는다.

     

    그들의 결혼 문화는 정말 특이한데

    남자와 여자가 알몸으로 만나서 관찰한다.

    이는 몸에 어떠한 하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으로

    결혼한 후 통수를 맞는 걸 미리 방지하기위한 풍습이다.

     

    유토피아는 자국민을 매우 우선시 여기는데,

    이는 전쟁 상황시 잘 드러난다.

    그들은 나라에 쌓여있는 금과 은을 이용해서 용병을 고용한다

    (돈을 안 쓰니까 다른 나라와 거래를 하면서 얻은 금과 은이 넘친다).

     

    그리고 적국의 리더의 머리에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걸어서

    피튀기는 싸움없이 전쟁을 끝내기도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명예로운 승리는

    피 안 흘리고 지혜를 이용한 승리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종교도 자유롭게 갖는다.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특정한 세례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시민이 평등하지만 노예는 존재한다.

    그들은 범죄자들로 대부분 이루어져있는데

    유토피아인들이 하기엔 위험하거나 더러운 일들을 맡아서 한다.

    그들이 지은 범죄에 대해 그들이 회개를 충분히 하였다고 판단되면

    노예에서 해방되기도 한다.

     

    이 정도가 유토피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유토피아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토마스 모어는 당시 영국 사회를 보면서

    성직자들의 타락,

    정도가 지나친 처벌(툭하면 단두대 처형),

    극심한 빈부격차를 보면서 <유토피아>를 출간했다.

     

    토마스 모어는

    영국의 형벌 시스템이 너무 극단적이라 생각한다.

    그는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 도둑으로 만드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도둑이 되었다고

    사형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며,

    사회의 근본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한다.


    즉, 범죄자를 처벌하는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범죄자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는데 집중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빈부격차를

    유토피아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유토피아는 왕 조차도 갖고있을 수 있는 생필품의 양이 제한되어 있다.

    넘치는 자본은 없는 자에게 자연스럽게 가게 되어있다.

    즉, 부의 재분배를 통해 부자들의 쓸모없는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가능한 사회가 아니다.

    유토피아 사람들이 저런 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투철한 신앙심이 있기 때문에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인도주의적 쾌락주의를 믿는 유토피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돕고,

    그들을 위해 노동을 하면서 쾌락을 얻고,

    나중에 죽었을 때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유토피아 사람들은 사유재산이 없어도

    그냥 묵묵히 일을 하는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믿음에 금이 간다면,

    그들은 아무리 적은 시간의 노동이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을 안 하고도 생필품을 공짜로 가져갈 수 있으니까.

    아무리 노동을 감시하는 공무원이 있다지만

    눈을 피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유토피아는 정말 말 그대로 유토피아다.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유토피아가 완전히 허무맹랑하다고는 할 수 없다.

    분명 유토피아의 문화로부터 배울 점은 존재한다.

     

    자국민을 보호하고자 하는 자국민우선주의가 가장 좋은 예이다.

    과거 전쟁을 살펴보면 수많은 사상자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수장들은 전쟁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희생이 많이 따르더라도 전쟁을 이기는 것이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희생자가 많은 전쟁은

    적국에게도, 자국에게도 명예롭지 못한 전쟁이라고 믿는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전쟁을 승리하는 것.

    이런 모습은 전쟁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사회적 약자들이 자주 희생되곤 한다.

    대의를 위해 희생한다고 하지만

    이는 대의를 망치는 행위이다.

    사람들의 희생 없이

    대의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된다.

     

    토마스 모어는 결국 단두대에서 처형당했지만

    그의 사상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도 과거 영국과 비슷한 점이 존재한다.

    재벌들은 엄청나게 많은 자본을 축적하는데

    사회 빈곤층의 빈곤률은 더욱더 높아지고 있다.

     

    토마스 모어의 '부의 재분배'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받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건물 하나 있는 사람은

    떵떵거리면서 사는 걸까.

    모순이 분명히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떻게 이런 빈부격차를 줄여나갈지는

    토마스 모어와 함께 지켜봐야하지 않을까.

     

     

    이상사회는 그 형태와 성격이 어떻든 간에

    모두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잉태된다.

     

    마르쿠제(H. Marcuse)에 의하면,

    모든 불만과 불평은 물질적 · 사회적 궁핍에서 일어난다.

     

    물질적 궁핍은 물적 · 인적 자원의 부족에서 비롯되고,

    사회적 궁핍은 지위, 명예, 권력, 재산 등의 불평등에서 초래된다.

     

    만일 이 같은 궁핍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다음 세 가지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의 모든 욕구가 충족되고도 남을 정도로 자연적 조건이 풍족한 상태로,

    이를 ‘코케인(Cockaygne, 歡樂國)’이라 한다.

     

    둘째, 자연적 조건과 인간의 욕망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상태로,

    이러한 상태를 표현하는 개념으로는

    ‘아르카디아(Arcadia, 樂園國)’, ‘파라다이스’, ‘황금시대’, ‘천년왕국(Millennium)’ 등이 있다.

     

    셋째, 자연적 조건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없어

    어떠한 형태로든 인간의 욕구가 제한받아야 되는 상태로,


    이 경우에는 두 가지 상태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이 스스로 모든 욕망을 자제할 수 있는

    완전 도덕국가’를 실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제도와 법을 통해

    욕망을 통제 · 조정하는 사회, 즉 ‘유토피아’를 만드는 것이다.

     

    전자는 개인의 도덕적 완성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후자는 인간의 성선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도덕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토피아는 여러 이상사회 중 한 유형에 불과하다.

     

    코케인,

    아르카디아,

    파라다이스,

    천년왕국은 신화이며,

    신화의 세계는 신과 자연의 주술적 힘이 지배한다.

     

    이에 반해

    유토피아는

    비록 픽션(fiction)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지배하고 통제하는 사회이다.

     

    이 점에서 유토피아는 다른 신화들에 비해

    현실적 성격이 강하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극적인 변화를 가정하지도 않고,

    초자연적 힘의 해결에 기대를 걸지도 않는다.

    자연계의 재화가 항상 풍족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천사도 동물도 아닌 인간은

    선 · 악 양면성을 지닌 다루기 어려운 존재임을 시인한다.

     

    재화의 부족을 전제로 할 때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충족될 수 없으며,

    어떠한 형태로든 그것은 제약받아야 한다.

     

    유토피아가 추구하는 것은

    이 같은 외적 규제, 즉 법적 · 제도적 규제를 통하여

    사회적 갈등과 불만을 해소하려는 데 있다.

     

    따라서 유토피아는 인위적이고 조작적이다.

     

    유토피아는 한 마디로 픽션(fiction), 즉 허구이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없는 곳(no-where)’이며

    상상에 의한 가공의 세계이다.

     

    우리가 바라볼 수 있지만 잡을 수 없는 거울 속의 세계이다.

     

    유토피아가 다루는 것이 사실의 세계가 아닌

    가능성의 세계라는 점에서,

    그것은 문학에 가깝고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 내용은 어떠한 문학작품보다

    역사와 현실에 더욱 밀착되어 있는데,

    이것은 유토피아의 비전이

    현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비판에서 도출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가 허구적 · 가공적(架空的) 성격을 갖고 있다 하여 환상과 같을 수는 없다.

     

    유토피아는 그 나름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지니고 있어

    그 시대의 현실을 비추어 주는 거울과 같다.

     

    유토피아는 분명히 현실 초월적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도

    그 뿌리를 현실에 두고 있고,

    허구적이면서도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같은 특성과 요소가 유토피아를

    허구(no-where)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며,

    이 점에서 유토피아는 순수한 환상과 차이가 있다.

     

    유토피아의 범주와 유형

     

    유토피아를 이상사회의 한 형태로 분리시켜 파악한다 하더라도

    그것의 범주가 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판단 기준에 따라

    유토피아의 범위가 임의로 확대되거나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유토피아는 크게 다음과 같이 세 범주로 나누어진다.

     

    첫째, 모어의 『유토피아』를 모델로 하는

    이른바 ‘전형적 유토피아 문학 장르’를 들 수 있다.

     

    캄파넬라의 『태양의 도시(Cita del sole)』,

    안드레에의 『그리스도의 나라(Christianopolis)』,

    베이컨의 『신아틀란티스(New Atlantis)』 등이 대표적 예이다.

     

    이들은 픽션의 형식을 도입하여 이상사회를 묘사해 주고 있는데,

    그 구성은 항해, 난파, 유토피아 섬의 발견으로 되어 있다.

     

    둘째는 인간의 조건과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유토피아 사상과 유토피아 사회이론을 가리킨다.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이론과 사상이 제시될 수 있겠으나,

    대표적인 유형만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① 플라톤의 『이상국가론』,

    윈스턴리의 『자유의 법』,

    해링턴의 『오세아나』,

    루소의 『사회계약론』,

    고드윈의 『정치적 정의』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이들은 픽션 형태의 유토피아 문학 장르에는 속하지 않지만,

    실질적 내용에 있어서 이상적 정치질서와 그 원리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역사의 진보와 그것의 최종적 완성 단계를 다루고 있는

    튀르고, 콩도르세, 콩트, 헤겔 등의 역사철학이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해 사회주의적 이상사회를 실현하려는 이념과 비전이다.

    생시몽, 오언, 푸리에, 카베 같은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사상이 좋은 본보기이다.

     

    스키너, 프롬, 마르쿠제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욕구와 충동, 심리와 행동을 통제 · 조절함으로써

    사회적 갈등과 불만을 해소하려는 심리적 유토피아(eupsychias)이다.

     

    카를 만하임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카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의 적들』,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에서 보듯이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이론과 해석이다.

     

    셋째, 유토피아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계획 · 설계하고 실험하는

    실천적 유토피아 운동을 꼽을 수 있다.

     

    19세기 미국에서 활기를 띠었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과 종교집단들의 공동체 건설 운동,

     

    예컨대

    오언의 뉴 하모니(New Harmony),

    카베의 이카리아,

    푸리에의 팔랑주(Phalanges) 그리고

    셰이커(Shakers), 라파이트(Rappites), 오나이다(Oneida) 같은 종교적 공동체 운동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비록 실패하였지만

    그 전통은 20세기에 와서도

    미국의 월든(Walden) 공동체,

    이스라엘의 키부츠(Kibbutz) 공동체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동체 운동 이외에도

    현대 사회에서 시도하고 있는

    정원도시의 건설 같은 디자인 유토피아(design utopia),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에코토피아(Ecotopia) 등도

    일종의 실천적 유토피아의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상과 같이 유토피아의 범주는

    유토피아 문학, 유토피아 사상과 이론, 유토피아의 실험으로 대별되는데,

    이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기본 전제는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완전 가능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진보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면 유토피아의 문학 · 사상 · 실험 등을 통하여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사회는 어떠한 성격, 어떠한 형태의 사회인가?

     

    유토피아는 시대적 상황과 현실에 따라

    그 비전을 달리하기 때문에,

    유토피아의 사회상 역시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유토피아의 유형은

    정태적 유토피아와 동태적 유토피아,

    감각적 유토피아와 정신적 유토피아,

    귀족적 유토피아와 평민적 유토피아,

    도피의 유토피아와 실현의 유토피아,

    추상적 유토피아와 구체적 유토피아,

    집단주의적 유토피아와 개인주의적 유토피아 등으로 분류된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생활이 다양한 만큼

    유토피아 사회도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가장 절실한 문제는

    물질적 욕구의 충족과 사회적 평등의 문제라고 생각할 때,


    지금까지의 유토피아는 대체로

    금욕의 유토피아(ascetic utopia)에서

    욕구충족의 유토피아(want-satisfying utopia)로,

    불평등의 유토피아(hierarchical utopia)에서

    평등의 유토피아(egalitarian utopia)로 전개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코케인과 아르카디아 같은 신화의 세계에는

    항상 재화가 쓰고 남을 정도로 풍부하다.

     

    그러나 현실세계는 언제나 재화가 부족하여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현실을 반영하는 유토피아 사회 역시

    재화의 결핍을 전제로 설계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개인의 소유가 제한되고 욕망이 억제되며,

    생산과 분배가 통제되는 금욕적 · 규제적 성격이 강한 사회를 지향하게 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로 새로운 에너지원(源)이 개발되고

    과학기술과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금욕적 유토피아는 욕구충족의 유토피아로,

    빈곤의 평등은 풍요의 평등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때부터 인간은 새로운 기술이

    지상에 풍요의 낙원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였고,

    신화 속에서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었던

    도약을 꿈꾸게 되었다.

     

    풍요를 꿈꾸는 점에서

    유토피아도 코케인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코케인이 주어진 것이라면,

    유토피아는 인간의 힘과 기술로 그것을 만들고 창조하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서양 고대와 중세에서는

    계층적 사회질서를 불변의 자연질서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그 같은 질서의 붕괴는

    곧 사회 자체의 붕괴를 의미하였으므로,

    유토피아 사회라 하더라도 그 원칙은 변할 수가 없었다.

     

    플라톤이 『이상국가론』에서

    통치자 계급의 가족제와 사유재산제는 폐지하였으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신분제와 노예제를 인정하였고,

     

    아리스토파네스가 『여성의회』에서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생산을 위한 노예 계급과 신분제를 인정한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이다.

     

    전통적인 계층적 신분질서의 관념은

    모어의 유토피아 사회에서 비로소 무너지게 되었다.

    그의 유토피아 사회는

    신분제를 인정하지 않으며,

    거의 모든 사람들의 완전한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

    비록 노예제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고정 신분제가 아닌 일종의 형벌제도에 불과하였다.

     

    이와 같은 평등 개념은

    캄파넬라와 안드레에를 통하여 더욱 확대되었고,

    그 이후로 신분제를 인정하는 유토피아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모어에서 웰즈에 이르는 거의 대부분의 유토피아가

    지적 엘리트에 의해 지배되는 권위주의적 성격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유토피아가 다른 이상사회와는 달리

    지식 계급의 산물임을 반영한다.

     

    유토피아의 역사

     

    유토피아를 시대적 관점에서 분류하면

    19세기를 경계로 하여 그 이전을 고전적 유토피아,

    그 이후 20세기 전반기까지를 근대적 유토피아라 한다.

     

    고전적 유토피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관념적 · 사변적 성격이 강하고,

     

    근대적 유토피아는 사회개혁을 위한

    구체적 · 실제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전자가 정태적 · 금욕적이라면,

    후자는 동태적 · 욕구충족적이다.

     

    20세기 전반기에는

    유토피아에 비판적인 디스토피아 문학이 출현하였고,

     

    후반기에는 산업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다양한 유토피아 이론과 문학이 대두하였다.

    편의상 20세기 후반의 유토피아를

    현대 유토피아로 부르기로 한다.

     

    고전적 유토피아의 문학 장르는 모어에서 비롯되었지만,

    유토피아 이론과 사상은 고대의 플라톤까지 소급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형식면에서는 전형적인 유토피아 문학이 아니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후대의 유토피아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

     

    특히 그의 철인 정치는 많은 유토피아들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엘리트가 지배하는 사회 모델의 선구가 되었다.

     

    크리스트교가 절대적으로 우세하였던 중세에서

    유토피아는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

    원죄설과 예수의 재림설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지상낙원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지상낙원 대신에

    천상의 영원한 신국(City of God)이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14세기에 이르러 민중들 사이에는

    코케인 전설이 풍미하였다.

     

    신국이 정신적 축복의 나라인 데 비하여,

    코케인은 물질적 쾌락이 충만한 곳이다.

     

    따라서 신국과 코케인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이 양극에 교량적 역할을 하는

    중도적 세계가 천년왕국이다.

     

    중세 말에 활기를 띠었던 천년왕국 운동

    매우 다양하여 쉽게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운동이 표방한 현세에서의 지상천국,

    봉건적 계층질서에 대항한 평등주의,

    사회적 규범에서 일탈한 도덕적 무정부주의 등은

    세속적 유토피아주의의 출현을 예시하는 징표라 하겠다.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진정한 유토피아 문학이 탄생하였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후대 유토피아의 원형이었다.

     

    『유토피아』는 2부로 되어 있는데,

    제1부에서는 풍자를 통해

    당시의 유럽사회, 특히 영국사회의 부패와 부정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제2부에서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모어가 제시한 공유제에 입각한 이상국가의 상을 묘사하고 있다.

     

    모어가 『유토피아』를 출간한 지 1세기가 지난

    17세기는 유토피아주의의 개화기였다.

     

    이 시기에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공산주의, 자본주의, 과학문명, 공화정치 등을 예견하는

    다양한 사회 모델과 이념들이 활발히 제시되었다.

     

    도니의 『신세계(I Mondi)』,

    안드레에의 『그리스도의 나라』,

    캄파넬라의 『태양의 도시』,

    윈스턴리의 『자유의 법(The Law of Freedom)』은

    모어의 노선에 따라 공유제 사회를 제안하였고,

     

    벨러즈(J. Bellers)의 『근면협동촌(College of Industry)』,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Fable of the Bees)』는

    애덤 스미스에 앞서 개인주의적 또는 자유방임주의적 사회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베이컨의 『신아틀란티스』는

    최초의 과학적 유토피아로 유명하며,

     

    해링턴의 『오세아나』는 공화주의를 강력히 옹호한 정치적 유토피아이다.

     

    이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유토피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유토피아 사상의 전개 과정에 두 원천이 된 것은

    모어와 베이컨이다.


    양자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모어는

    사회의 모든 불의와 부정은 불평등에 기인한다고 믿어,

    평등의 원리에 입각한 공유제 사회를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베이컨은

    인간의 불행은 빈곤과 궁핍으로부터 오며,

    빈곤은 생산기술의 낙후에 기인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는 길은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방법뿐이라고 확신하였다.


    그의 과학주의는

    모어를 포함한 고전적 유토피아의 정태성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현대의 산업기술 사회를 낳게 한 이념적 원천이 되었다.

     

    모어의 목표가 사회정의의 실현이라면,

    베이컨의 목표는 과학에 의한 사회의 진보이다.

     

    전자가 욕구를 제한함으로써

    자족할 수 있는 사회를 구상하였다면,


    후자는 생산을 증대함으로써

    인간의 욕구를 최대한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다.

     

    18세기에서 문학적 유토피아의 중심이

    영국에서 프랑스로 옮겨가게 되었다.

     

    18세기 유토피아의 지배적 경향과 특징으로는

    다음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모어의 전통을 계승하여

    재산 공유제에 입각한 평등과 우애의 사회를 이상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을 들 수 있다.

     

    베라스(Vairasse d’Alais)의 『세바랑브인의 역사(Histore des Sevarambes)』,

    페늘롱(F. Fenelon)의 『텔레마코스(Telemaque)』,

    모렐리(Morelly)의 『자연의 법전(Code de la nature)』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이들은 17세기 이래 강력히 대두하기 시작한

    경제적 개인주의에 대응하여 공동체의 협동과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성(性)의 해방이라는 새로운 주제의 도입이다.

    이는 인간의 자연적 욕구는 충족되는 것이 좋다는

    계몽주의 자연관을 반영해 주고 있다.

     

    디드로(Dederot)는 『증보 부겡빌 여행기(Supplement au voyage de Bougainville)』에서

    타히티(Tahiti) 섬의 자유연애를 묘사하고 있고,

     

    사드는 『침실의 철학(La philosophie dans le boudoir)』에서

    크리스트교의 금욕적 도덕관을 비자연적인 위선이라고 비난하면서

    모든 남녀의 성적 욕구는 억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성적 유토피아(sexual utopia)

    푸리에에 의해 더 세련된 형태로 다루어졌으나,

    그 이후로는 잠복 상태에 들어갔다가

    20세기에 와서

    프롬, 마르쿠제 같은 프로이트-마르크스 학파에 의해 부활 · 계승되고 있다.

     

    셋째, 외계와 시간 개념의 도입이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등에 의해 천문학 지식이 보급되면서

    유토피아의 위치는 지상에서 천상으로 확대되었다.

     

    고드윈(Francis Godwin)의 『월인(月人, The Man in the Moon)』,

    시라노 드베르주라크(Cyrano de Bergerac)의 『외계(The Other World)』

    달과 태양의 세계에 대한 환상을 고취시키고

    유토피아의 지리적 한계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래의 관념을 도입하여

    유토피아의 시간적 한계를 깨뜨린

    메르시에(L. S. Mercier)의 『2440년(L’An 2440)』이다.

     

    메르시에는

    “현재는 미래로 충만되어 있다.”라는

    라이프니츠의 말을 인용하여

    미래는 이성과 과학의 시대가 되리라고 확신하였다.

     

    기존의 유토피아는 현재에 존재하지만 공간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2440년』의 출간 이후로

    유토피아는 어떠한 장소에도 아직은 존재하지 않으나,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여기’에 존재하게 될 이상사회를 뜻하게 되었다.

     

    이 점에서 『2440년』은

    유토피아의 개념을 ‘좋은 곳(utopia)’에서

    ‘좋은 때(euchronia)’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미래지향의 유토피아가 출현하게 된 것은

    진보관의 직접적인 영향 때문이었다.

     

    자연법칙과 이성에 대한 계몽주의의 절대적 신뢰는

    인간사회의 무한한 진보와 인간의 완전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심어 주었다.

     

    튀르고와 콩도르세에게 진보는 필연의 법칙이 되었고,

    유토피아는 진보의 신앙을 뜻하게 되었다.

    진보의 원동력은 과학과 이성이다.

    과학은 미래의 자유와 평등의 토대가 될 물질적 풍요의 원천이며,

    이성은 과학을 사회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를 끊임없이 개선시키는 중추신경이다.

     

    이와 같이 이성과 과학의 진보는 유토피아 개념의 핵심적 요소가 되었고,

    이 점에서 유토피아는 여타의 이상사회와 분명한 경계를 긋게 된다.

     

    근대적 유토피아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을 겪게 된 19세기는

    유토피아사(史)에서도 하나의 전환점이 된 시대이다.

    현실비판과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되었던 고전적 유토피아는

    이제부터 현실개혁과 실천을 목표로 하는 근대적 유토피아로 넘어가게 되었다.

     

    19세기는 또한 문학적 유토피아가 퇴조하고

    그 대신 유토피아 이론과 이를 실험하기 위한

    공동체 운동이 활기를 띠었던 시대이다.

     

    유토피아 문학이 부활하여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은 1870년대 이후였다.

     

    19세기에 유토피아 문학이 침체된 것은 두 가지 이유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유토피아에 시간이라는 동적 요소가 도입됨으로써

    기존의 정태적 유토피아가 설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관의 출현으로

    유토피아는 꿈이 아니라 곧 다가올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가올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 이론이 미래의 사회상을 그리는 것보다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19세기의 유토피아 이론과 사상은 한 마디로

    사회주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생시몽, 오언, 푸리에, 카베, 마르크스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세기 후반에 유토피아 작품을 쓴

    벨라미, 모리스, 헤르체카(T. Hertzka) 등도 모두 사회주의를 표방하였다.


    이것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급속히 발전한

    자본주의와 산업주의의 폐단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들의 입장은 사회형태의 유형만큼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공통된 특징을 지적한다면

    하나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기술과 산업에 대한 거의 절대적 신뢰라 하겠다.

     

    결국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은

    효율적인 사회조직과 제도를 통해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였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풍요를 향유하고자 하였다.


    전자가 모어의 이상이었다면,

    후자는 베이컨의 희망이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분리되어 온 두 전통은

    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비로소 하나의 목표로 통합되었고,

    이에 따라 앞으로의 세계는

    평등과 풍요를 구가하는 지상낙원이 될 것으로 낙관하였다.

     

    마르크스가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을 ‘공상적’이라고 비난한 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 때문이 아니라,

    그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의 비현실성 때문이었다.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은

    새로운 사회는 인간의 이성과 올바른 의지만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확신하였는데,

     

    마르크스가 볼 때 이것은 역사의 필연성을 무시하고

    관념의 힘에 의존하려는 잘못된 태도였다.

     

    그렇다고 마르크스가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입장을 전면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비역사적 · 공상적인 것은

    그들에게 부과된 시대적 한계 때문이라고 강조하면서

    마르크스는 그들이 제시한 비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마르크스 자신은 미래 사회에 대해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단편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그의 공산사회는

    어떠한 유토피아 작품의 비전보다도 더 목가적인 면이 있다.

     

    미래의 공산사회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사회이며,

    누구나 마음먹은 대로 자신의 가능성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는 사회이다.


    이 같은 면에서 마르크스는 현실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있어서는

    반(反)유토피아주의자이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과 예언에 있어서는 유토피아주의자라고 하겠다.


    *현 자본주의는

    필요에 따라 일하고 능력에 따라 소비하는” 사회


     

    19세기 후반에 유토피아 문학은 다시 부활하였다.

    리턴(Edward Bulwer-Lytton)의 『미래인종(The Coming Race, 1871)』

    다위니즘(Darwinism)의 영향을 받아

    현재의 인류를 대신할 지하세계의 진화된 인종을 묘사하였고,

     

    이에 반해 버틀러(Samuel Butler)의 『에리훤(Erewhon, Nowhere의 역순)』은

    다위니즘과 과학기술 문명을 풍자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대종을 이룬 것은

    역시 사회주의 유토피아였다.

    벨라미의 『뒤를 돌아보며』(1888),

    헤르체카의 『자유의 나라(Freiland, 1890)』,

    모리스의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1890),

    웰즈(H. G. Wells)의 『근대 유토피아(A Modern Utopia, 1905)』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사회주의 작품 또한

    과학적 진보관과 진화론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벨라미의 『뒤를 돌아보며』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2000년대의 미국 사회를 그리고 있는 데 비해,

     

    모리스의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은

    업사회 대신에 목가적인 중세의 농촌 및 길드 공동체 사회를 미화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근대 유토피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의 하나는

    실험적 유토피아, 즉 공동체 운동이다.

     

    신세계의 발견 이래 아메리카는 희망과 자유의 낙원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성립하였는데,

    1663~1950년에 대략 600여 개의 공동체가 성립되었던 것으로 밝혀져 있다.

     

    19세기의 공동체 운동을 주도한 것은 종교단체와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전자는 프로테스탄트 급진파로서 대부분 천년왕국주의를 받아들였고,

    후자는 세속적 공동체를 건설하였으나

    그들의 공동체는 종교적 공동체보다 수명이 더 짧았다.

    이를 통해 소단위의 공동체 내에서라 할지라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이상을 실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 수 있다.

     

    현대 유토피아

     

    20세기에 들어와서 유토피아에 반대하는

    디스토피아(dystopia) 문학이 출현하였다.


    디스토피아 작가들이 볼 때,

    풍요를 약속했던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소외와 기계화를 초래했고,

    평등의 희망을 심어준 사회주의는 가공할 전체주의로 탈바꿈하였다.


    자미아틴(E. Zamyatin)의 『우리(We, 1924)』,

    헉슬리(A.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1932)』,

    오웰(G. Orwell)의 『1984년(Nineteen Eighty-four, 1949)』

    바로 현대의 과학만능주의와 전체주의가 몰고 올 공포와 위험을

    충격적으로 묘사한 디스토피아 작품들이다.

     

    이들에 의하면,

    유토피아는 이제 실현 불가능한 허황된 꿈이 아니며,

    그것은 현재 서서히 실현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다가오고 있는 유토피아는

    결코 대망하던 행복의 낙원이 아니라,

    회피해야 할 악이며 적이었다.

     

    왜냐하면 완전성을 추구하는 유토피아는

    엄격한 계획과 통제를 필요로 하고,

    그 같은 계획과 통제는 불가피하게 인간의 자유와 다양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디스토피아 문학의 출현으로

    1950년대에는 유토피아 문학이 다시 침체되고,

    그 대신 다양한 유토피아 이론과 실험이 대두하였다.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이스라엘의 키부츠 운동에 자극을 받아

     『유토피아의 길(Paths in Utopia, 1949)』을 저술하였고,

     

    미국의 심리학자 스키너(B. F. Skinner)는 『월든 투(Walden Two, 1948)』에서

    행동공학 이론에 입각한 이상사회를 묘사하였다.

     

    1950년대에는 또한 이데올로기의 종말이 선언되고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이 모두 경제발전과 산업주의를 지향하였다.

    그 결과 산업사회에서 야기되는 소외와 억압을 해결하려는 유토피아 이론들이 나오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마르쿠제(H. Marcuse)와

    블로흐(Ernst Bloch)의 이론이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결합한

    마르쿠제는 『에로스와 문명(Eros and Civilization, 1955)』에서

    현대 사회는 과학기술에 의해 노동의 집약성을 높이려는 데서

    과잉 억압을 초래하였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마르쿠제가 목표로 하는 것은

    과잉 억압을 해제하여

    노동과 놀이,

    기술과 예술이 일치되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에 기독교 신비주의를 접목시킨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Der Prinzip Hoffnung, 1954~1959)』에서

    인간의 욕망과 충동은 무의식이 아닌 궁핍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아직 없음(noch nicht)’으로 인하여

    인간은 기다림과 희망을 갖게 되는 미래지향적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의 유토피아를

    흔히 ‘후기 산업시대의 유토피아(post-industrial utopia)’라고 부른다.

     

    이들은 고도로 산업화 · 도시화된 사회를 배경으로 출현되었고,

    실현 가능한 구체성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시대의 유토피아들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도시 산업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정원도시의 건설 같은 ‘디자인 유토피아(Design Utopia)’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파괴를 막기 위한 ‘에코토피아(Ecotopia)’이다.

     

    마지막 하나는 남성 우위의 사회로부터 해방되려는

     ‘페미니스트 유토피아(Feminist Utopia)’이다.

     

    도시환경의 개혁에 관한 대표적 작품은

    호워드(Ebenezer Howard)의 『내일의 정원도시(Garden Cities of Tomorrow, 1898)』로,

    여기에는 토양으로의 복귀 사상,

    도시와 농촌의 조화, 공동체의 협동정신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정원도시 운동은 영국에서 시작하여 미국과 프랑스로 전파되었고,

    오늘날에는 일반 정치가와 정치이론가들조차도

    도시의 환경문제와 공간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생태적 유토피아는 산업사회에서 일어난

    인간소외, 환경오염, 핵 확산, 자연파괴 등에 자극을 받아 출현하였는데,

    칼렌바크(Ernest Callenbach)의 『에코토피아』(1975)는

    목가적인 전원생활, 도시와 농촌의 조화, 인간다운 삶 등을 잘 묘사하였다.

     

    후기 산업시대의 유토피아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이다.

    산업기술사회에서 여성들의 노동계 진출이 현저해지면서

    남녀의 대우, 자녀양육, 가사노동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불평등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게 되었다.

     

    20세기 초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로는

    단성생식의 모계 사회를 묘사한

    길맨(C. P. Gilman)의 『여성국(Herland, 1915)』이 있으며,

     

    최근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피어시(Morge Piercy)의 『시간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여자(Woman on the Edge of Time, 1976)』를 들 수 있다.

     

    페미니즘과 생태학이 결합하게 된 것은

    남성지배의 현대 사회가 파괴적 착취적인 데 비하여,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와 에코토피아는

    다 같이 조화와 균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의 유토피아는

    그것이 생태학적 유토피아든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든 간에

    19세기 후반의 유토피아처럼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지 못하였다.

     

    실험 공동체의 모델로서

    『월든 투』가 한때 주목을 끌었으나,

    그것의 목표와 포부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고전적 유토피아에서 볼 수 있는

    자유 · 평등 · 평화의 원리에 입각한 전체 사회상을 제시하려는 열망도,

    기존 사회의 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사회질서를 창조하려는 도전도 엿보이지 않고 있다.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났던

    학생운동, 민권운동, 여성운동도

    그들의 이념과 이상을 집약시킨 유토피아를 창출하지는 못하였다.

     

    유토피아 이론의 발전에 비하면

    모어에 의해 창안된 사회적 상상력으로서의

    유토피아 문학 장르는 오늘날 확실히 약화되었다.

     

    그렇다면 왜 유토피아 문학은 쇠퇴하였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간단하게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21세기를 맞이하여

    이성에서 공감의 시대로,

    힘의 논리에서 다원적 협력의 시대로,

    과학만능주의에서 생태주의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지만,

    지난 4세기 동안 지속된 진보에 대한 희망으로서의 유토피아주의는

    앞으로도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유토피아: 대동사상

     

    지상낙원과 황금시대에 관한 신화는 거의 모든 나라에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의 조건과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유토피아는

    서구 기독교 사회에만 존재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최근의 대표적 인물은

    쿠마(Krishan Kumar)이다.

     그는 서양 근대 유토피아의 핵심은 현세주의에 있다고 강조한다.

     이 점에서 유토피아는 중세의 기독교 이데올로기와 대치된다.

     

    유토피아는 인간이 이 지상에 세우고자 하는 이상사회이지,

    신국이나 천국에 있는 이상사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유토피아의 역사는

    내세의 천국에 대한 비전과 상(image)을 포기할 때 비로소 시작한다.

    이 점에서 중세의 기독교 세계관의 몰락은

    유토피아 출현의 필요조건이다.

     

    쿠마가

    유토피아를 르네상스, 종교개혁, 지리상의 발견과 같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의 맥락에서 이해하려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토피아는 세속화의 산물이며,

    따라서 그것은 역사의 보편적 현상이 아니다.

    비서구 사회에서 유토피아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그 사회가 종교적 영향을 크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마는 비서구 사회 중

    중국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보고 있다.

    그가 볼 때 중국은 다른 비서구 국가들에 비해

    유토피아에 가장 근접된 개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현세주의적인 유교와 관계가 있다.


    그렇다고 중국 유토피아를 특징짓는 요소인

    대동(大同) ·

    태평(太平) ·

    균평(均平) 같은 개념들이

    서양 유토피아의 평등 개념과 그대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치 중국의 과학 ·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다 하더라도

    과학혁명을 경험한 서양의 과학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처럼,

    유토피아의 경우도 이와 유사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의할 것은

    쿠마가

    중국에 정통한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중국의 문헌이나 원전에 깊은 조예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의 주장과 논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진정염(陳正炎)과 임기담(林基錟)이 저술한

    『중국 고대 대동사상 연구』에 의하면,

    중국에도 다채롭고 다양한 유토피아 자료들이 풍부하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예를 들면,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

    이여진(李汝珍, 1760~1830)의 『경화연(鏡花緣)』,

    강유위(康有爲, 1853~1927)의 『대동서(大同書)』 등은

    서양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유토피아 작품들이다.

    이처럼 풍부한 유토피아 문헌들을

    유토피아 문학, 유토피아 사상, 유토피아 실험의 세 분야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의 유토피아 문학은

    엄격한 의미에서 토머스 모어가 창안한 유토피아 문학 장르에 부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픽션의 형식을 도입하여 이상사회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세상과 격리된 깊은 계곡이나 해상 고도에 유토피아를 설정했다는 점 등에서

    서양의 유토피아 문학 장르에 가깝다.

     

    도연명의 『도화원기』,

    왕우칭(王禹稱)의 『녹해인서(錄海人書)』,

    강여지(康與之)의 『작몽록(昨夢錄)』에 나오는 ‘서산은처(西山隱處)’,

    이여진의 『경화연』에 보이는 ‘군자국(君子國)’ 등이 그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허균(許均)의 『홍길동전』에서 언급되고 있는 ‘율도국(硉島國)’ 과

    박지원(朴趾源)의 『허생전』에 나오는 ‘무인공도(無人空島)’ 등도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 중국의 유토피아 사상은 말을 바꾸면 대동사상(大同思想)을 뜻한다.

    대동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은

    한(漢)대에 저술된 『예기(禮記)』예운편(禮運篇)」이다.

     

    「예운편」에 의하면,

    대동은 “대도(大道)가 행해져 천하에 공의(公義)가 구현된” 상태,

    ‘천하위공(天下爲公)’, ‘세계대동(世界大同)’을 목표로 하는 이상사회이다.

     

    대동사상은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 때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회 이상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으므로,

    그 안에는 각 학파의 다양하고 다채로운 이상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각 학파들의 다양한 주장이 표출되었지만,

    그 핵심 내용은

    착취와 억압의 금지,

    재산공유,

    노동의무,

    천하위공 등으로 요약된다

     

    이 같은 원칙의 범위 내에서

    공자와 맹자를 중심으로 한 유가(儒家)는

    인정(仁政)과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주장하고,

     

    노자와 장자를 비롯한 도가(道家)는

    무욕(無慾) · 무사(無私)를 강조하는 무위정치(無爲政治)의 실현을 꿈꾸었다.

     

    농가(農家)와 묵가(墨家)는

    노동평등, 호조호애(好助好愛), 군민병경(君民幷耕)의 실천을 이상적 목표로 하였다.

     

    심지어 가장 현실주의적이라 할 수 있는 법가(法家)도

    완전한 법치체제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법은 있으나 사용되지 않는 이상적인 질서”를 추구하였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유토피아론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인간세계로 가져오려는 불가(佛家)의 사상,

    등귀천(等貴賤)’ · ‘균빈부(均貧富)’의 구호를 내걸고 봉기한

    농민들의 행동강령 등도 대동사상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따라서 각 시대마다 정치 및 사회 개혁자들과 진보적 사상가들은

    그들의 개혁 목표와 투쟁 목표를 찾고자 할 때마다 대동사상을 반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대의 홍수전(洪秀全), 강유위, 담사동(譚嗣同), 손중산(孫中山)도

    모두 대동사상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것을 원용하여 사회개혁과 혁명을 주도하였다.

     

    셋째, 유토피아의 실험으로는 소규모의 종족공동체와 종교공동체의 건설이나

    동한(東漢)의 장로(張魯)가 시행한 ‘의사(義舍)’,

    명대(明代)의 하심은(何心隱)이 창립한 ‘취화당(聚和堂)’,

    선종(禪宗)의 ‘선문규식(禪文規式)’

     

    농민봉기에 의한 정치공동체의 건설을 들 수 있다.

    후한(後漢) 말 황건(黃巾)의 난,

    당 말의 황소(黃巢) · 왕선지(王仙芝)의 난, 그리고

    청대에 일어난 백련교도(白蓮敎徒)의 난,

    태평천국의 난, 의화단(義和團)의 난을 들 수 있다.

    농민봉기에 의해 세워진 정치체제와 국가가 모두 유토피아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유토피아적 요소가 여기에 내재되어 있다.

     

    중국 대동사상의 흐름을 시대별로 개관해 보면,

    진정염 · 임기담의 시대구분에 따라

    중국을

    선진(先秦) 시대,

    진한(秦漢) 시대,

    위진 · 남북조 · 당 · 5대(魏晋 · 南北朝 · 唐 · 五代) 시대,

    송 · 원 · 명(宋 · 元 · 明) 시대,

    청(淸) 시대로 5분하였다.

     

    중국사에서 선진(先秦)시대,

    즉 춘추전국 (春秋戰國)시대는 가장 큰 격변기의 하나였다.

    정치적 발전과 경제적 성장이 이루어졌으며,

    사상적으로는 낡은 전통이 배척되고 새로운 가치관이 적극적으로 모색되고 있었다.

     

    새롭게 부상한 전국시대의 군주들은 강력한 주권을 행사하고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정치와 행정을 수행하였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정치적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인재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경륜 있고 식견 있는 사람들을 경쟁적으로 초빙하여

    자유롭게 토론하고 주장하도록 고취하였다.

     

    그 결과 각계각층의 이익을 반영한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이 출현하여

    이상적 국가와 사회를 설계하기 위한 다양한 의견과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이른바 학문과 사상의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를 맞게 되었다.

     

    2000년 이상 중국 사회를 계승해온 대동사상의 기원도 이 시대에서 비롯된다.

     

    정치적으로 분열되었던 전국시대에는

    학술과 사상도 분화되었다.

     

    그러나 진(秦)이 천하를 통일하고 한(漢)이 이를 계승하자,

    지금까지 분산되었던 학파들의 사상이 종합 · 절충되기 시작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예기』 「예운편」이다.

    이것은 공유제에 기초한 대동사회를 묘사한 것으로,

    사유제에 기초한 ‘소강사회(小康社會)’에 대비된다.

     

    「예운편」의 대동사상은 외관상 유가의 주장으로 제시되었으나,

    실제로는 선진제자(先秦諸子)의 사회 이상을 총괄적으로 종합한 것으로

    그 안에 각 학파의 사회 이상이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유가는 물론이고 도가, 묵가, 농가, 음양가의 이상을 집약한 것이다.

     

    이 당시의 대동사상은 각 학파마다 사상적 전제와 주장을 달리하면서도

    한 가지 면에서 공통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학파가 진제국(秦帝國)의 전제주의를 안티테제로 설정하고

    그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찾고자 했다는 점이다.

     

    도가의 ‘무위정치’와 유가의 ‘왕도정치’가 대표적 예인데,

    그중에서도 도가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다.

    왜냐하면 사상적 통일을 도모하기 위해

    진시황은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일으켰고,

    한무제(漢武帝)는 백가(百家)를 배척하고 유가(儒家)만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제국에 비판적이거나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도가의 입장이 되어 중앙집권에 반대 투쟁을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지배 계급뿐만 아니라 피지배 계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기의 농민봉기의 지도자였던

    장각(張角)과 장로(張魯)는

    도교의 최고 경전인 『태평경(太平經)』의 교리를 이용하여

    농민을 조직하고 선동한 전형적 인물들이었다.

     

    유가가 천하의 패권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가사상으로 유가를 배척하고

    도교의 경전을 혁명의 지침으로 삼은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예외가 있다면 후한(後漢)의 하휴(何休)이다.

    그는 동중서(董仲舒)로부터 공양삼세(公羊三世)의 역사관을 계승하고

    맹자의 ‘정전론’의 영향을 받아 정전제를 기초로 한 사회 기층 조직을 설계하였다.

    이 정전제는 아편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중국인들이 부단히 주목해온 개혁 방안의 하나였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대동사상을 분석하면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무사(無私) · 무욕(無慾) · 무위(無爲)를 중심으로 한

    도가의 ‘지덕지세(至德之世)’이고,

     

    둘째는 균평(均平)한 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한 농민봉기의 이상이 바로 그것이며,

     

    셋째는 정전제를 바탕으로 한 유교의 제도개혁론을 들 수 있다.

     

    위 · 진 · 남북조에서 당(唐) · 오대(五代)에 이르는 시기는

    중국의 봉건적 토지경제 제도가 하강기로 접어든 시대였다.


    이 시기의 대동사상은 대체로 ‘거란세(據亂世)’의 상황하에서 출현하였다.

    8왕의 난, 오호(五胡)의 난,

    후경(候景)의 난을 거치면서 고난의 현실정치를 거부하고

    노장사상을 숭상함으로써 세속에 대한 불만과 증오심을 표출하였다.

     

    그중 급진파는 군주제를 완전히 부정하였는데,

    완적(阮籍), 혜강(嵆康), 열자(列子), 포경언(鮑敬言) 등은

    무군무신(無君無臣), 무욕무구(無慾無求), 무귀무천(無貴無賤)을 이상사회의 목표로 삼았다.

     

    극심한 사회적 혼란은 현실도피의 유토피아를 초래하였다.

     

    도연명의 『도화원기』

    인간세계에 없는 ‘세외도원(世外桃源)’을 묘사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이곳은 빈부귀천이 없고 모든 토지를 공동 경작하는 풍족한 농촌사회로,

    노자가 말하는 ‘소국과민(小國寡民)’ 사회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는 농민봉기도 더욱 격화되었다.

    농민 지도자들은 균평(均平)을 단순히 구호만으로 제시하지 않고,

    실제로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분배하였다.

    세속의 불평등이 심화된 것처럼 불교계의 빈부차이도 현격하였다.

     

    노동의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해

    선종(禪宗)‘선문규식(禪門規式)’을 제정하여 만인의 노동평등을 강조하였다.

     

    송 · 원 · 명(宋 · 元 · 明) 시대는

    경제적으로는 계속 하강상태에 있었으나,

    정치적으로는 중앙집권이 오히려 강화 · 발전하였다.

    국가기구의 이러한 변화는 대동사상의 발전에도 영향을 주어

    추상적 · 관념적 형태가 구체적 · 실천적 형태로 바뀌어갔다.

     

    북송의 왕우칭(王禹偁)이 서술한 ‘해인국(海人國)’,

    남송의 강여지(姜汝止)가 꿈꾼 ‘서경은향(西京隱鄕)’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도화원기』의 자매편이라 할 수 있다.

     

    해인국은 진시황 때 봉래산(蓬萊山)을 찾아 떠났던 사람들이 상륙한 섬으로

    계급과 착취가 없는 완전 평등 사회이며,

    서경은향 역시 깊은 산 속에 있는 공유제 사회이다.


    이들은 난세의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도화원기』와 같으나,

    사회사상의 심도 면에서는 『도화원기』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 사회에 더 접근한 느낌을 준다.

     

    이 시대의 대동사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 것은

    장재(張裁)와 이구(李覯)의 새로운 정전제 모형,

    등목(鄧牧)의 『백아금(伯牙琴)』,

    하심은(何心隱)의 ‘취화당(聚和堂)’이다.


    북송 출신의 장재는 균평(均平)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전제 방안을 탁상공론이 아닌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이구(李覯) 또한 “경자(耕者)가 그 전(田)을 소유한다.”라는 원칙하에

    “노동하지 않는 자는 먹을 수 없다.”라는 구호를 실천에 옮기려 하였다.

     

    송 · 원(宋 · 元) 교체기에 살았던 은둔학자이며 이단 사상가인

    등목(鄧牧)은 『백아금』에서 요 · 순 시대 사회를 그의 이상사회로 소개하였다.

    그는 “현실적으로 요 · 순 같은 성군(聖君)과 현리(賢吏)를 구할 수 없다면

    차라리 유사(有司)를 폐지하고 현령을 없애는” 무정부주의가 차선책이라고 제안하였다.

     

    명대의 이단 사상가인

    하심은 이 종족 단위의 유토피아를 처음으로 실험한 것이 ‘취화당’이다.

    취화당은 “종족을 모아 화목을 도모하고 가르치고 기른다.”는 뜻이다.

    이것은 인의관(人義觀)에 입각하여 빈부와 친소를 가리지 않고

    집중적인 사회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사념(私念)을 버리고

    서로 친애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시도한 것으로,

    오언(Robert Owen)의 ‘뉴 하모니’(New Harmony) 공동체보다 250년을 앞선다.

    취화당의 종족 공동체 실험은 그 당시로는 대담한 시도였으나,

    사회적 제약으로 수년 만에 실패하였고, 하심은 또한 집권자에게 살해되었다.

     

    봉건사회의 몰락기인 청(淸) 말에

    미래에 대한 설계와 희망을 제시한 것은

    이여진과 강유위를 비롯한 뛰어난 철학자, 사학자, 정론가들이었다.

     

    이들은 “하늘이 사람을 평등하게 낳았다.”라는 관념에서 출발하여

     ‘평(平)’을 천지의 도(道)로 인정하고,

    평하면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얻고 평하지 않으면 기울어,

    작게는 나라가, 크게는 천하가 기운다고 주장하였다.

     

    이공(李塨)은 ‘평’ 사상을 계승하여 『평서(平書)』를 저술하였고,

     

    당견(唐甄)은 인민의 머리 위에 있는 제왕을 모두 적으로 배척하였다.

     

    『경화연(鏡花緣)』을 저술한 이여진은 군주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하였으나,

    경화연이 남녀평등, 호양부쟁(好讓不爭), 노안소회(老安少懷)에 입각한 사회임을 강조하였다.

    그렇지만 그도 이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분명한 대답을 주지 않고 있다.

     

    이 시기에 유토피아 실험의 대표적 예는 ‘태평천국’이다.

    1850년에 발발하여 14년간 지속된 태평천국의 난은 중국 최대의 농민봉기였다.

    그것은 종교합일, 병농합일, 문무합일의 통치체제를 수립하여

    토지균분의 평등주의를 실현하려는

    반청 · 반봉건의 사회혁명이었다.

     

    청일전쟁 패배 후 1898년 변법운동을 일으킨 강유위(康有爲, 1858~1927)는

    중국에서 최초의 근대적 유토피아론이라 할 수 있는 『대동서』를 저술하였다.

     

    그는

    서양의 사회진화론과 공상적 사회주의를 받아들여

    동서양의 문화를 융합함으로써

    중국의 전통적 대동사상을 개조하고자 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남녀평등, 가족제 폐지, 계급 철폐, ‘대일통(大一統)’의 세계 정부를 제창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 대동사상의 발전은

    다음과 같은 세 경향으로 전개되었다.

     

    첫째는 막연한 동경으로부터 구체적 구성으로,

    둘째는 피안에 대한 묘사에서 현세적 · 인간적인 것의 추구로,

    셋째는 신명(神明)을 우러러 바라보는 것에서 자신의 역량과 의지에 의존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이 과정은 동서 유토피아의 공통된 현상이라 할 수 있는데,

    다만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중국에서 공산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대동사상의 오랜 전통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유토피아의 효용과 가치

     

    인간이 소망하는 이상세계와

    인간이 만들어 가는 역사세계는 일치하지 않고 있다.

     

    유토피아는 관념적 ·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바람직한 곳이지만,

    역사적 현실에서 보면 존재하지 않는 공허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가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한편으로 현실성과 사실성을 반영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초월적이면서 현실적이고 허구적이면서 사실적이다.

    그것은 허구와 사실의 결합이며, 현재와 미래와의 대화이다.

     

    유토피아의 가장 중요한 효용은

    비판 정신과 개혁 사상이다.

     

    유토피아가 추구하는 완전사회는

    마땅히 있어야 할 당위의 세계이며 규범의 세계이다.

     

    이 점에서 유토피아는 현실 판단의 기준이 되며,

    현실 비판의 준거가 된다.

    그러므로 유토피아는

    비판이라는 부정의 원리규범의 제시라는 긍정의 원리를 아울러 내포하고 있다.

     

    부정의 원리는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여 개혁 사상을 고취시키고,

    긍정의 원리는 인간의 이성과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진보를 촉진시킨다.

    이와 같은 부정과 긍정의 원리야말로 유토피아주의의 특성이다.

     

    유토피아는

    현실에 대한 불만의 산물이며,

    동시에 현실의 구속 조건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해방 정신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것은 변화와 개혁을 촉구하고 새로운 가치와 목표를 추구한다.

     

    이러한 면에서 만하임(Karl Mannheim)은

    유토피아가 비록 현실 초월의식이라 하더라도,

    이데올로기와는 달리 현실을 개혁하려는 힘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유토피아는 개혁의 원리일 뿐만 아니라 진보의 원리이다.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는

    “유토피아는 모든 진보의 원리이며 더 좋은 미래를 위한 시도”라고 강조하였다.

     

    프랑스의 주장처럼 유토피아는 진보에 대한 신앙이다.

    진보는 이성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하며,

    이성의 신뢰란 인간은 이성을 통해 자연을 지배하고 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믿음이 인류를 원시상태에서 문명사회로 나가게 한 원동력이다.

     

    자연을 정복하고 신의 경지에까지 도달하려는 인간의 줄기찬 노력은

    참으로 경탄스러우면서도 경외적인 면이 있다.

     

    인간은 신의 계명을 어기면서 금단의 과일을 따먹었고,

    바벨 탑을 쌓아 하늘에 오르고자 하였다.

     

    사실상 현대의 인간은

    그리스 신들이 갖고 있는 권능을 박탈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처럼 과거에는 신화에 불과하였던

    꿈과 이상이 오늘날 현실이 되었고,

    현재의 꿈은 다시 미래의 현실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인류 역사의 진보는 결국 유토피아의 실현사일 따름이다.

     

    유토피아주의를 철저히 배격한

    미국의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은

    이 세상은 그것을 천국으로 만들려는 사람들로 인하여

    더욱더 지옥이 되어가고 있다.”라고 극언하였다.

     

    그러나 베르자예프(N. Bardyaev)가 지적했듯이,

    유토피아는 모든 인간에게 본유적인 꿈이며 의식이다.

    설혹 그것이 전체주의와 획일주의 같은 부정적 면을 때때로 수반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되고 또 포기할 수도 없다.

     

    유토피아는 개인과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한 시대의 유토피아는 다른 시대의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유토피아적 상상마저 거부할 만큼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꿈과 소망이 봉쇄된다면 그보다 더 큰 절망과 공포는 없다.

     

    역사적으로 유토피아는 불안과 위기의 시대,

    격동하는 전환기일수록 활발히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흔히

    불확정의 시대’,

    ‘혼돈의 시대’,

    ‘통제 불능의 세계’라고 불리는 오늘의 시대야말로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을 제시해 줄 유토피아가 절실히 대망되는 시점이라 하겠다.

     

    집필

    김영한(서강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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