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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2009. 12. 19. 20:56

 

 


꽃나무라고 늘 꽃 달고 있는 건 아니다 삼백예순닷새 중
꽃 피우고 있는 날보다 빈 가지로 있는 날이 훨씬 더 많다

행운목처럼 한 생에 겨우 몇번 꽃을 피우는 것들도 있다
겨울 안개를 들판 끝으로 쓸어내는 나무들을 바라보다

나무는 빈 가지만으로도 아름답고 나무 그 자체로
존귀한 것임을 생각한다

우리가 가까운 숲처럼 벗이 되어주고 먼 산처럼 배경
되어주면 꽃 다시 피고 잎 무성해지겠지만

꼭 그런 가능성만으로도 나무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빈 몸 빈 줄기만으로도 나무는 아름다운 것이다

혼자만 버림받은 듯 바람 앞에 섰다고 엄살떨지 않고
꽃 피던 날의 기억으로 허세부리지 않고

담담할 수 있어서 담백할 수 있어서
나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꽃나무라고 늘 꽃 달고 있는게 아니라서
모든 나무들이 다 꽃 피우고 있는 게 아니라서...

- 도종환 "부드러운 직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