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수들은 한국 교수들보다는 강의와 학생지도에 성실한 것 같습니다. 박사학위 논문지도의 경우엔 교수가 문장까지 일일이 손을 봐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저 자신 과연 그렇게 성실하게 학생들을 대했는지 반성이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다만 우리 학교는 시스템이 다른 대학과 달라 학생들과 직접 접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만.)
그러면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미국 대학에서는 교수들에 대한 강의 평가가 그런 대로 제대로 이루어지는 게 하나의 중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학기가 끝날 때 학생들이 강의 평가서를 학교에 제출하고 그걸 교수들의 인사에 반영하지요.
한국에서도 요즘은 강의 평가를 합니다. 옛날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수십년 전에는 교수가 학기가 시작하고 두서너 주가 지난 후에 한번 모습을 보인 다음에, 다시 계속 휴강하고 학기말에 다시 한번 등장하는 교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에 비하면 사정은 많이 나아졌지요.
그런데 한국 교수들에 대한 업적 평가에서, "강의와 연구" 중 강의평가는 차이가 그리 크게 나지 않기 때문에 교수들이 논문 숫자를 늘리는 데 주력한다고 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신과 심사위원밖에 읽지 않는 논문들을 대량생산하는 게 학생들에게 신경쓰는 것보다 평가에서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강의 평가'가 절대적으로 교수의 성실성을 규정한다고 단정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에선 미국같은 강의 평가를 하지 않는데도, 교수들이 한국보다는 성실하게 학생과 상대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대학을 포함한 조직사회에서는 동료의 평가 (peer review)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평가 대신에 동료의 평가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런 점에서 적어도 한국보다는 교수들이 성실하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미국과 일본에선 학생이든 동료교수든 관련자들의 평가가 일정하게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저의 인상비평이 틀릴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일본에 대해 저보다 사정을 더 잘 알고 있는 분이 많을테니, 제 이야기에서 바로잡아야 할 부분을 지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경우가 어떠한지도 잘 모릅니다. 앞으로 유럽에 지내면서 사정을 살펴볼까 합니다.
어쨌든 이런 상황은 어떠한 '교수(교사 포함)-학생 관계'가 바람직한지 하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교수-학생 관계는 한편으로 교육서비스를 주고 받는 시장관계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자식 관계 같은 인격적 관계입니다.
전자가 가장 집중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학원입니다. 후자의 관계는 예수와 12제자 또는 공자와 그의 제자 사이의 관계 같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한국사회의 교수-학생 관계에서 후자의 측면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의 경우엔 아직 그런 관계가 어느 정도 남아있겠지요.)
그렇다면 교육서비스를 주고 받는 데에선 어떤 관계가 바람직할까요.
대체로 한국사회에선 교수가 학생에 비해 우위에 있습니다. 일종의 '갑'인 셈입니다. 성적을 부여하는 권한을 갖고 있고, 성적을 잘 받아야 졸업을 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유교적인 상하관계가 작동해 그런 갑을 관계를 강화합니다.
그리해 학점 따위를 미끼로 성추행이 심심찮게 발생하는 것이지요. 이런 갑-을 관계는 학생들의 적극적 대처와 교수 징계로 인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어 가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 남양유업 사태와 마찬가지로 교수-학생 사이의 갑을관계도 '사회적 압력과 법적 대처'가 바로잡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대학원생의 경우엔 이런 갑을 관계가 더 심각합니다. 학부생에 대해선 교수가 한 과목 학점을 부여하는 힘밖에 갖고 있지 않지만, 대학원생에 대해선 장래를 좌우할 수도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석박사 논문의 통과권한과 취업추천권 등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에 따라 사정은 다릅니다만, 대학원생이 지도교수의 잡심부름을 도맡으며, 교수의 이삿짐도 날라주고, 심지어 교수가 교회에 나가면 같이 교회에도 나가주는 경우를 들었습니다. 성추행도 학부생에 대해서보다 대학원생에 대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아마도 더 많을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성추행의 경우엔 과거보다 사정이 많이 나아졌습니다만, 다른 억압관계는 그리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건 사회 전반의 인간관계가 보다 근대적인 관계로 발전해가야 나아질 것 같습니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사회인 것 같은데 다른 점도 많습니다. 제가 일본 가서 놀란 것 중의 하나는 동경대 교수가 직접 저널의 논문들을 복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국에선 이런 건 대학원생이나 조교들에게 시킵니다만, 일본에서 이런 일들을 시키려면 거의 반드시 돈을 지불합니다.
한국의 큰 학회는 재벌 등의 지원을 받아 호텔에서 하면서 거기서 일하는 대학원생에겐 땡전 한푼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일본에서는 그런 호화스런 학회행사도 별로 없고 돕는 학생들에겐 대가를 지불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들이 바뀌어 나가야 하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를 좀더 진전시켜 보겠습니다. 교수-학생 관계가 반드시 갑-을 관계인 것만은 아닙니다. 학생(부모)이 돈과 권력을 쥐고 있으면 그 관계가 미묘하게 바뀝니다.
중고교에서 옛날 육성회장의 자식에 대한 교사들의 태도는 일반학생에 대한 태도와 많이 다르지요. 대학에서는 부잣집 자식이라고 해서 교수들이 특별대우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만, 그래서 굴지 재벌의 자식쯤 되면 사정은 다를 것입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에도 굴지 재벌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가 국회의원입니다만, 그는 대학 때 시험부정 행위를 해서 1년 유급을 당했고, 그래서 남보다 일년 늦게 졸업했습니다.
당시 그의 시험부정행위를 적발해 처벌한 교수는 영어를 가르치던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연구에 집중할 때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으며, 그래서 스스로 밤낮인 줄 모르도록 집의 창에 짙은 커튼을 쳐놓았다는 전설(?)을 가졌던 분입니다.
그만큼 교수로서의 본분 (교육서비스 제공의 원칙)에 철저했기 때문에 재력에 굴복하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이런 자세를 가진 교수라면 재벌 등에서 프로젝트를 받거나 사외이사 한 자리 얻으려고 애쓰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지요.
어쨌든 교수들에 대한 돈의 위력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어느 페친의 지적처럼, 아직도 선물로 학점을 사는 행위가 통하는 경우가 있다는 흉흉한 소문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더 큰 문제는 학생이 권력을 가질 경우입니다. 제가 조교 시절에 약간 놀란 것은, 민주화 이후 대학원생들은 교수와 맞담배를 피지 못하는데, 학부생들은 맞담배를 피기도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학생이 교수와 맞담배를 피우는 게 옳으냐 그르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민주화 이후 학부생들은 "어용 교수 퇴진" 등의 운동을 벌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인 김수행 교수를 뽑게 된 데에는 그걸 애당초 요구한 대학원생이 아니라 나중에 학부생들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서울대 학부생들이 그런 데 관심이 없기 때문에 마르크스 경제학 교수는 김수행 교수의 퇴임과 함께 대가 끊겼습니다.)
이처럼 학생들이 권력을 갖게 되면서 부작용도 생겨났습닏다. 제 후배 중에 지방대 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수업에 전혀 들어오지 않던 학생회장에게 F 학점을 부여했습니다.
그랬더니 학교 행정당국에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소신을 갖고 밀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부작용은 작지 않았습니다. 학생회에서 보복공격이 들어온 것이지요.
학생회에서는 직접 학점 문제를 들고 나올 수는 없으니, 교수가 당시 어머님이 편찮아서 금요일이면 서울로 올라오던 것을 문제삼았습니다. 그리해 그 교수가 학생들을 내팽개치고 있다고 퇴진 운동을 벌인 것입니다.
다행히 그 교수는 퇴진사태에 몰리지는 않았지만 그 문제로 여러 해 동안 크게 고생했습니다. 학생 권력이 남용된 사례이지요. 학생회가 학생회비를 부당하게 쓰거나 조폭이 학생회를 장악하거나 하는 일도 이런 예입니다.
노조가 등장할 때는 자본-노동의 갑-을 관계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해서 자본-노동 관계가 일부 바로잡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권력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거대기업(공공부문 포함) 노조가 갖고 있는 문제점도 이런 부작용에 속합니다.
마찬가지로 교수-학생 사이의 관계 중에는 교수가 갑질 하면서 저지르는 문제도 있습니다만, 학생조직이 권력을 갖게 되면서 저지르는 문제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것도 "갑을 관계의 변증법"이라고 할 만 하지요.
오늘은 이쯤 하고, 계속해서 갑-을 관계의 변증법을 살펴보면서 해법을 모색해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