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통신

동숭동지킴이 2013. 10. 27. 23:27

 

베를린 통신 (8) : ‘히든 챔피언’과 자긍심

 

 

지난주에는 중앙대 독일유럽센터의 ‘독일유럽연구 최고위과정’에 다니는 분들이 베를린을 방문했습니다. 중앙대 독일유럽센터는 독문학과의 김누리교수가 주도하는 곳으로 독일정부의 지원도 꽤 받고 있습니다.

 

 

독일유럽센터와 최고위과정에 대해선 다음 한겨레, 경향신문 기사 링크를 참고하십시오.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96976.htm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4302202055&code=960201

 

이 베를린 현지연수팀은 베를린의 이곳저곳을 방문했는데, 그 중 Burmester Audiosysteme(이하 BA)회사를 방문할 때 저도 동참했습니다(아래 사진 참조). 오늘은 거기서 보고 느낀 걸 말씀드릴까 합니다.

 

 

 

 

 

BA는 독일의 유명한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히든 챔피언이란 Hermann Simon이란 사람이 같은 이름의 책을 써서 유명해진 말로서, 분야별 세계시장 점유율 1~3위로서 매출액 40억 달러 이하의 강소(强小)기업을 지칭합니다.

 

 

히든 챔피언은 한국에서도 TV 등을 통해 널리 소개된 바 있습니다. Simon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전세계 히든 챔피언 숫자는 2734개이고, 그 중 절반이 독일 소재 기업이라고 합니다.

 

 

인구 백만 명당 히든 챔피언 수는 독일이 16개, 일본 1.7개, 미국 1.2개, 한국 0.5개, 중국 0.1개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독일이 압도적인 셈이지요. 중소기업이 비교적 탄탄한 걸로 알려진 일본도 독일에 감히 견줄 바가 못 됩니다. 독일의 Mittelstand(중간층)란 말이 적어도 학자들 사이에선 번역이 거의 필요 없는 용어가 될 정도인 것도, 바로 이런 히든 챔피언의 광범한 존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물론 독일에는 미국의 애플이나 한국의 삼성과 같은 초거대기업은 없습니다.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는 Volkswagen 등 여러 개가 있지만 애플이나 삼성보다는 세계적인 위상이 낮습니다. 그러니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예전에 대만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한국은 대만에 비해 중소기업이 부진해서 큰일이라는 말이 많았습니다. 이 말은 일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20년 전 동경대학에서 대만교수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는 대만에선 한국과 같은 거대기업이 취약해서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나 남의 떡이 커 보이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거대기업과 중소기업 어느 하나가 부진한 게 아니라 양자 사이의 균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만에서는 거대기업이 좀 더 커나갈 필요가 있고, 한국에선 중소기업이 좀 더 발전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한국에선 거대기업이 중소기업의 희생을 바탕으로 커왔고, 나아가 거대기업이 정계·관계·법조계·언론계·학계를 멋대로 주무르려 하면서 오염시키고 있어서 큰 문제이지요. 이게 제가 늘 말해 온 재벌의 독재체제 문제입니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거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도 제대로 발전해야 하고, 그를 위해선 독일의 히든 챔피언 사례는 참고가 될 것입니다. 다만 외국 사례를 그냥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저 그 기본 정신을 참고하면 되겠지요.

 

 

어떻게 하면 독일의 히든챔피언을 한국에서도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논한 바 있습니다. 예컨대 아래에 링크한 유필화 교수 칼럼도 그 한 예입니다.

http://cafe.daum.net/otrsclub/63Rh/4375?q=%C0%AF%C7%CA%C8%AD%20%B1%B3%BC%F6%BF%CD%20%C7%D4%B2%B2%20%C7%CF%B4%C2%20%C8%F7%B5%E7%20%C3%A8%C7%C7%BE%F0%20%C0%CC%BE%DF%B1%E2&re=1

 

 

저는 이 분야에 정통한 경영학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리고 겨우 히든 챔피언 달랑 1개 방문하고 일반론을 펼치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 있습니다. 다만 평소 독일경제에 대해 쬐끔 알고 있는 지식과 한국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사고를 바탕으로 한두 가지 느낀 점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원래 저희는 오후 3시에 회사를 방문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를린 연수팀은 오전 일정이 길어져 30분가량 지각했습니다. 제 시간에 도착한 저는 그 30분 동안에 미리 기다리고 있던 회사측과 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베를린 연수팀이 돈 들여서 참가하는 행사에 돈 한 푼 안내고 곁다리로 끼어든 형편이었습니다. 따라서 사실 회사 방문시에 제가 따로 질문할 시간이 거의 없을 걸로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한두 가지 간단한 질문만 준비를 해갔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질문할 시간이 어느 정도 주어진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인터넷에서 읽고 간 회사관련 글과 예전에 공장 인터뷰를 할 때 주로 던지던 질문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를 확인했습니다.

 

 

공장(회사)인터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과거 일본 교수들과 함께 한국과 일본의 공장, 주로 자동차공장과 조선소를 돌아다니면서 옆에서 배운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선 글 말미에 보충하겠습니다.

 

BA는 직원 약 50명으로 세계 최고급 앰프, CD-Player, 스피커, 자동차 오디오를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앰프, CD-Player, 스피커는 수천만 원짜리로서 매니어들에게 팔리는 제품입니다.

 

 

자동차오디오는 Bugatti, Porsche, Benz에 장착되는 제품으로 1,500~7,500 유로 정도라고 합니다. 여기서 Bugatti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무슨 자동차인가 했는데, 나중에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건희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최고급 명차의 하나였습니다.(차 한 대에 수십억 원 까지 한다고 합니다.)

 

 

1977년에 창립된 회사로서 현재 50개국에 수출하고 있고, 수출의 비중이 80%이며, 고급 자동차오디오에선 거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매출이 얼마인지를 물었는데 그것은 어쩐 일인지 밝히지 않고 잘 나가고 있다고만 했습니다.(인터넷 자료를 보니 2000년 매출이 1000만 유로였고, 그 이후 급상승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까 회사측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는데, 그들은 다름 아닌 회사 창립자 사장인 Dieter Burmester씨와 PR을 담당하는 그 딸이었습니다. 회사 사장이 직접 손님을 맞아 공장 tour를 하면서 설명을 하고 질의에 응답하는 식이었던 것입니다(아래 사진 참조).

 

 

 

 

 

제가 이때까지 독일공장을 4곳 방문했는데, 사장(또는 공장장)이 직접 설명을 한 곳은 동독의 BSL(Buna Sow Leuna Olefinverband)라는 거대한 석탄화학 콤비나트가 통일 이후 미국의 Dow에 인수된 회사에서였습니다.

 

 

당시 저는 다른 한 사람과 둘이서 그 회사를 방문했는데, 동독 시대 근무했던 직원까지 4명을 배석시키고 공장장이 직접 2시간 동안 파워포인트를 써가면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설명과 질의응답이 끝나자 역시 공장장이 직접 차를 몰면서 공장 이곳저곳을 설명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국과 일본 여러 공장을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유명한 정치인이나 높은 관료도 아니고, 또 많은 인사가 몰려간 것도 아닌데, 너무나 성의 있게 응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한반도가 통일이 되면 북한의 석탄화학공장을 재편할 때 자신들의 경험을 전수(또는 판매)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고, 또 제가 미리 질문지를 보냈기 때문에 그냥 형식적으로 들리는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쨌든 그렇더라도 이렇게 성의 있게 인간을 대하는 것은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를 나타낸다는 느낌을 가진 바 있었습니다. 덴마크의 노동부, 경총, 노조를 저 혼자 방문했을 때도 비록 최고책임자가 응대하지는 않았지만 대단히 성의 있게 설명하고 답해주었습니다.

 

 

그때는 독일처럼 누가 중간에서 연락을 취하지도 않았고, 그저 제가 e-mail로 질문지를 보냈을 따름인데 성의 있게 응대한 것이었습니다. 회사나 공장을 방문해서 인터뷰하려면 빽을 동원하지 않고선 힘든 한국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지요.

 

 

이야기가 약간 삼천포로 빠졌습니다만, 어쨌든 BA에서 사장이 직접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사장은 그럴 만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력이 그의 열정을 말해주었습니다.

 

 

회사 이름이기도 한 Burmester 사장은 원래 열정적 음악가로서 고교 무렵부터 전문 록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약했습니다. 1999~2007년 사이엔 Past Perfect라는 밴드에서 연주·작곡 활동을 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맨 왼쪽이 사장입니다. 다만 2007년 이후엔 회사일이 너무 바빠져서 연주활동을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연주 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위해 엔지니어 교육을 받았습니다.(Fachhochschule를 거쳐 베를린 공대를 졸업했음.) 그리해 처음엔 의료측정계기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음악에 대한 관심 때문에 오디오 제작에 나섰다고 합니다. 도대체 제대로 된 Hifi 오디오가 없어서 자기가 직접 제작에 나선 것이지요.

 

창립 당시엔 은행이나 상공회의소 같은 곳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합니다. 6천 마르크(70년대 300만원?)짜리 CD-Player를 만들겠다고 하니 자기 딸에게 사준 300 마르크짜리도 아주 좋다고 답하더라고 합니다.

 

 

그는 technology를 파는 게 아니라 culture를 판다고 했습니다. 회사 내에는 ‘art for the ear’이란 표현도 있었습니다. 그는 the biggest company가 아니라 the best company를 지향한다고 했는데, 어디선가 들은 듯한 표현이지만 그에게선 그 말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예술가는 당대엔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그는 엔지니어이기도 했기 때문에 한 대 한 대 팔아서 조금씩 조금씩 제작 물량을 늘려갔습니다. 그리해 마침내 10년 정도 지나서 수지를 맞출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품의 부품들은 95%가 독일산이고 케이스 같은 것만 외국에서 수입한다고 합니다. 고품질의 부품을 조달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고급 오디오를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독일에선 일종의 산업 클러스터(cluster)가 형성되어 있는 셈이고, 다른 나라에서 히든 챔피언의 숫자가 크게 떨어지는 이유도 이런 게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BA의 부품생산자들이 계속해서 고급부품을 공급해줄 수 있을지는 장차의 과제인 것 같습니다.

 

 

공장은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3시 반이 퇴근시간인지 4시쯤에 공장 tour를 시작할 때에는 대부분이 퇴근했고, 몇 명만이 작업하고 있었습니다(아래 사진). 공장의 제조공정의 마지막에는 인간의 귀로 직접 테스트를 하게 되어 있다고 하는데, 사장 자신만이 아니라 음악적 재능과 공학적 재능을 겸비한 직원들도 있어서 그런 test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장의 나이를 물어보니 67세라고 해서 자식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고 했더니, 옆에 서있던 여직원이 셋째 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딸이 후계자 수업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웃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인터넷 자료를 보니 이미 후계자는 따로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학생 때부터 Burmester 오디오에 미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돈을 모았던 Udo Besser라는 인물이 회사로 들어와서 사장의 눈에 들어 후계자로 결정된 모양입니다.

 

 

기업에선 후계자의 결정이 큰 문제입니다. 재벌에선 억지로 자식에게 그룹을 물려주려고 온갖 불법을 자행하지요. 그리고 그 자식이 능력이 없으면 회사는 위기에 처합니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중소기업은 능력보다 성의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후계자 수업을 열심히 하면 기업은 계속 발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BA는 자식이 아니라 사장 자신처럼 음악에 열정을 갖고 있던 인물을 전문경영자인 후계자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다만 그 Udo Besser가 사장의 사위가 되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공장직원들은 하루 8시간씩 1주에 40시간 일하고 1년에 30일의 휴가를 즐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장 자신은 휴가를 얼마나 즐기냐고 물었더니 금년엔 너무 바빠서 휴가를 즐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시간과 영혼을 회사에 바치고 있는 셈이지요.

 

 

저는 음악에 문외한이라서 BA가 생산하는 오디오가 일반제품과 어떻게 다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을 BA의 오디오로 들어보니 라이브로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습니다.

 

 

사실 BA가 독일의 강소기업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게다가 BA의 특징을 한국에 어느 정도 적용할 수 있을지는 더욱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한두 가지 결론을 내볼까 합니다.

 

 

첫째로, 독일에서 BA를 포함해 Mittelstand가 강한 데에는 독일인이 갖고 있는 ‘직업적 자긍심’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BA의 사장이 best company를 지향한다고 하는 게 그것을 나타냅니다. 게다가 사장은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인 음악을 사업화했습니다.

 

 

독일인 모두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블루컬러도 독일인은

한국인 블루컬러에 비해 엄청난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들은 바 있습니다. 화이트컬러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 것이지요. “너희와 우리는 다르다”고 생각할 뿐이라는 것을 독일인에게서 들은 바 있습니다. 기능인과 관련된 Meister 제도도 그런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그러니 모두가 대학 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일찍부터 공장에서 일을 하고, 그들이 숙련을 쌓아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히든 챔피언의 밑바탕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대졸자와 고졸자의 학력별 임금격차가 한국보다 작을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차별도 덜한 것 같습니다.  대대로 내려오던 쇠고기 도살업자의 자식이 대학에 가겠다고 하니 집에서 반대하는 일도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은 대학 나오지 않으면 시집 장가도 가기 힘들다고 할 정도이고, 또 대학별로도 차별을 하니 많은 이들이 자긍심을 갖기 힘듭니다. 특히 숙련기술자가 자긍심을 갖기 힘들면 히든 챔피언이 많이 탄생할 수가 없지요.

 

 

나아가 한국에선 사회의 유력층도 직업적 자긍심이 취약합니다. 그래서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 같은 딸깍발이 정신을 갖춘 학자도 찾기 힘듭니다. 아니 관료·기자·검사·학자가 재벌 돈을 넙죽넙죽 받아 챙기는 것도 바로 직업적 자긍심(pride)의 결여 때문입니다.

 

 

이렇게 직업적 자긍심을 취약하게 만든 것은 아마도 일제의 식민통치가 그 중요한 하나의 요인일 것입니다. 식민지 권력과 타협해야만 출세할 수 있었으니, 민족의 기개가 살아날 수 없었고 직업적 자긍심도 뻗어나가기 힘들었습니다.

 

 

박정희 치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도성장이라는 가치 앞에 모든 것을 종속시키고, 자신의 독재체제를 싫어하는 문화인, 판검사, 기자는 제대로 커나갈 수 없었습니다. 자긍심을 꺽고 권력과 타협하는 순간 사회가 타락하는 것이지요.

 

 

뉴 라이트가 식민지 시대, 박정희 시대의 긍정적 요소를 부각시키려 애쓰지만 우리가 바람직한 선진사회로 나아가려면 오히려 그 시대의 부정적 요소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앞에서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직업적 자긍심의 회복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GH는 그나마 직업적 자긍심을 가진 검사 윤석열을 몰아냄으로써 아버지의 부정적 유산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엘리트가 제대로 된 자긍심을 갖기 못하면 일반대중도 직업적 자긍심을 갖기 힘듭니다. 사회문화가 그리 되어버리니까요. 이런 상황에선 히든 챔피언도 커나가기 어렵고 바람직한 선진사회도 연목구어(緣木求魚)입니다.

 

편, Burmester 사장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으려면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갖추져야 합니다. Burmester씨는 사업을  벌여 10년 가량은 적자상태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과 가족이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으니 그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교육과 의료 등에 대한 사회적 보장은 이처럼 히든 챔피언이 커나갈 수 있는 기반이기도 합니다. 다만 복지가 잘 되면 곧바로 히든챔피언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더 복지가 발전한 북유럽에 대해 히든 챔피언을 강조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니 일종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긍심이란 허세나 교만과는 다릅니다. 허세나 교만은 열등감이 밑바닥에 깔린 처지에서 자신을 과도하게 내세우려는 것입니다(극과 극은 여기서도 통합니다). 건전한 자긍심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직업적 자긍심도 존중하게 되는 것이니, 허세나 교만과는 정반대이지요.

 

 

둘째로, 독일의 히든 챔피언이 발전한 배경에는 거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격차가 크지 않다는 점도 작용합니다. 사장에게 BA 직원의 임금 수준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대기업과 차이가 나지 않고, 또 그래야 우수 인력을 유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독일의 노조형태가 산업별노조라는 게 작용하였습니다. 이는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숙련수준이 같은 한 같은 임금을 받기로 산업전체에서 결정하는 체제를 말합니다. 물론 거대기업에선 산별노조에서 결정한 수준을 상회하는 플러스 알파를 보태기도 합니다. 또 근래 산별노조에 포함되지 않는 기업이라든가, 외국인들이 일하는 mini-job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한국처럼 제조업 중소기업에서 거대기업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이리해서 중소기업에서도 쉽게 이직하지 않게 되고, 그리해서 숙련이 축적됨으로써 중소기업의 경쟁력도 높아집니다. 그런 중소기업이 바로 히든 챔피언입니다.

 

 

한국에서는 산업별 노조가 제대로 작동하는 경우는 전교조 이외에는 거의 없습니다. 대개가 기업별 노조이고 이름은 산별노조라도 실제로는 기업별노조입니다. 따라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를 노조체제를 통해 바로잡을 길이 없습니다.

 

 

한국에선 여러 분들이 산업별노조를 만들려고 오랫 동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 번 말씀 드렸듯이 그건 헛수고입니다. 이미 거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격차가 굳어진 상황에서 임금수준을 비슷하게 만드는 산업별노조를 거대기업 노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요. 노동자들이 석가-공자 같은 성인이 아닌 한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해법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임금(복지)을 높여서 실질적인 생활격차를 줄이면 됩니다. 그리하면 중소기업 노동자의 근속연수가 늘고 숙련이 향상되어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리해 거대기업과의 교섭력이 커지고 아예 세계시장을 상대로 사업을 벌일 수 있지요.

 

 

BA 방문을 통해 제가 느낀 것은 이 정도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한국이 무슨 기발난 정책을 통해 독일식의 히든 챔피언을 대대적으로 쉽게 보급할 수는 없습니다. BA도 정부의 특별한 지원정책 덕분에 발전한 기업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의 엘리트와 대중이 건전한 직업적 자긍심을 발전시키고, 복지를 확대해 노동자 사이의 생활격차를 줄이는 것은 한국사회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게 독일식의 히든 챔피언을 한국식으로 발전시키는 길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직업적 자긍심을 짓밟고 복지공약을 걷어차는 GH정권의 모습을 보십시오.

 

 

추가적으로, 독일에선 연구기관과 산업계의 연관이 잘 발전해 있는 것 같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예컨대 독일의 Fraunhofer라는 연구기관은 22,000명 정도가 근무하는 연구기관으로서 산업체가 주문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이런 연구기관의 존재가 히든 챔피언의 산실이 되고 있다고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연구소와 산업계의 연관실태를 모릅니다. 그리고 Fraunhofer의 실태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 깊은 이야기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1주일에 한번씩 독일어를 배우는 독일여학생이 있는데(미인이지요. 하하하), 그 여학생의 애인이 Fraunhofer 한국지사에서 인턴 근무를 한 일이 있어서 Fraunhofer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 그들을 포함해 몇몇 사람들과 우리 집에서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아래 사진이 제 독일어 선생님과 그 애인입니다.

 

 

 

 

 

이상 독일의 히든 챔피언을 방문하고 느낀 소회를 말씀드렸습니다. 베를린 연수팀의 김누리교수와 같이 간 다른 곳도 있습니다만, 그건 그와 관련된 사진을 받는 대로 보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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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참고로 일본인 연구자들과의 공장방문에 대해 추가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선 학회 같은 데서 공장을 견학하면 그냥 회사측 홍보 비디오를 보고 현장을 둘러보면서 즉흥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공장 인터뷰는 공장견학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선 질문서를 미리 보내고, 현장에서 질문서를 둘러싸고 질의응답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런 공장인터뷰가 아마도 세계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은 서구에 비해 사상과 이론의 발전이 뒤늦었습니다. 그리해 독창적인 사고 대신에 실증적인 연구에 중점이 놓여졌습니다. 경제적으로 볼 때 추격성장(catch-up) 방식을 택한 것도 이와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일본기술자들은 초기 공업화단계에서 서구의 공장을 방문하고 나와선 몇몇이 함께 기억을 되살려 공장설비를 그려냈다고 합니다. 그걸 바탕으로 일본에 돌아가 공장을 모방해 만들어 낸 것이지요. 그러니 일본에선 사실을 꼼꼼하게 따지는 훈련이 발달해 있습니다.

 

 

반면에 서구에선 독창적인 이론틀을 만들어내는 것이 꼼꼼한 실증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건 문화적 전통이 쌓인 것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일본에선 실증조사가 발달해 있는 셈입니다. 다만 일본은 이제 추격성장 단계는 끝났고 독창적인 사고를 만들어내야 할 단계에 도달했는데 그걸 잘 하지 못함으로써 정체상태를 맞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일본에선 공장인터뷰가 대단히 철저히 이루어집니다. ききとり(聽取) 조사에 관해 유명한 학자가 쓴 책이 있을 정도입니다. 원래 일본인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공장조사의 경우 밥 먹을 때도 인터뷰 조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심지어 밤늦게까지 보고 들은 것을 서로 확인해 제대로 된 공장상(像)을 그려갑니다. 저도 같이 다니면서 숨이 가쁠 정도였습니다.

 

 

한국분들 중에도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장조사를 일본연구팀처럼 하는 경우를 아직 보고 들은 바 없습니다. 열심히 실증조사도 하지 않고 독창적인 사고를 할 교육·연구 체계는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도 거의 추격성장단계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일본보다 더 정체하면서 더 갈등도 많아지지는 않을까요. 일본은 정체상태에 있긴 하지만 갈등은 우리보다 훨씬 적지요.

 

 

 

김선배의 글을 읽으니 훨씬 이해가 많이 되었네요. 제가 늦게 가서 제대로 보질 못했거든요. 한국에도 관심 있는 분들에게 소개해 주려고 합니다.
날아라독수리가 어느 분인지 모르지만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것은 영광입니다.
지난 주 독일에서 뵈옵던 곽해곤입니다
예 그러시군요. 잘 지내십시오.
반가워요. 자주놀러올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