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천을 따라 세검정, 석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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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에서떠남

2020. 10. 21.

 

 

 삼각산 서쪽 기슭과 북악산 북서쪽 기슭에서

발원한 홍제천이다. 백사실계곡을 가려고 이곳에 왔다가

다음은 홍제천을 둘러보자 했었다. 날이 좋아 어디든

가보자며 이곳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가뭄이라 물이

말라 있어서 저번보다 볼품없었지만 반가웠다.

 

 

 

 하천 바로 위로 집들이 있어서 비 많이 왔을 때

별일 없었을까 싶었다. 개인주택이나 빌라가 높이를

달리해 지어져 햇볕은 충분해 보였으며 하천 건너편에는

쓰러져가는 집도 여러 채 보였다.

 

 

 

 얼마 못 가서 세검정을 만났다.

걸음이 느릴 듯해도 여행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며 신이 났었다. 광해군 15년(1623년) 이귀,

김류 등이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씻은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 이름 지었다는데

원래 세검(洗劍)이란 칼을 씻어서 칼집에 넣고

태평성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인조반정을

의거로 평가하여 찬미하는 성격을 가졌단다.

 

 

 

 하천만 따라갔으면 자칫 이곳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멀어져 다시 하천

옆으로 가려고 할 때 제법 운치 있어 보이는 곳이

보이길래 혹시 석파랑인가? 다가갔었다.

 

 

 

 오호~~~

'석파랑'이었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본 풍경이다.

결혼식이 있었던 모양으로 와인잔을 든

선남선녀들이 보였다. 왼쪽으로 만세문이 보이고

뒤편으로 보이는 주 건물이 순종의 비인

순정 효 황후의 생가였단다. 지금은 한식 음식점으로

정원의 오른쪽 계단을 오르자...

 

 

 

 언덕에 자리한 석파정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올라갔으니

용기 있었다 싶다.^^

 

 

 

오르다 보이는 정원의 모습도 꾸밈이 예사롭지

않았고, 가을빛이 서려 혼자 보기 아까웠다.

 

 

 

 앞산이 모두 바위여서 대원군이

'석파정(石坡亭)'이라 이름 지을 만큼 주위가

온통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조선 철종과 고종 때

김흥근이 지은 별서를 흥선대원군이 탐한 곳으로,

마음대로 되지 않자 아들인 고종이 오고 싶어 한다며

이곳을 차지하여 별장으로 사용한 곳이었다.

 

 넓진 않았는데 앞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대원군이 사용했던 방이며 중간의 마루에서 종종

난을 쳤다 전해지고 상류사회를 엿볼 수 있는 난간과

손님은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넌방에서

맞이했다는데 이날은 결혼식 혼주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으로 쓰여 관리가 허술해 보였다. 

 

 

 

 대원군의 호가 석파인 것도 이곳 돌과 관련이 있었다.

붉은 벽돌의 벽과 반 아치형의 창문은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중국식 건축의 특징이란다.

 

 

 

 석파정의 뒷모습을 엿보고...

 

 

 

 다시 위로 오르니 같은 이름의 석파랑이란

갤러리와 레스토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현대식

문화복합공간이 있었는데 이곳도 온통 바닥이 돌로

이루어져 야무진 질감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꼭대기에는 스톤 힐이란 이탈리안 식당 겸 찻집이었나?

멋스런 소나무와 어우러져 한가함을 주었다.

 

 

 

 올라만 가다 내려오려고 뒤를 돌아보니,

북한산이 수려하게 보여 1910년대만 해도 건물들이

없었을 것이라 별서로서 풍경 좋은 위치라 여겨졌다.

 

 

 

 길을 달리해서 석파랑 한식점 뒤로 내려왔다.

이곳도 정갈한 돌담과 커다란 바위가 집안에 있었으니

앉아 쉬거나 호박 썰어 말리기 좋겠더란다.^^

 

 

 

 석파랑을 나와 조금 벗어났을 때 150년 되었다는

감나무가 생각나 다시 들어가 확인하였다. 

결혼식 뒤풀이가 막바지에 이른 모습이었으며,

 

 

 

 석파랑과 담으로 나누어진 옆집 역시

창문만 봐도 예사롭지 않아 궁금하였으나 

홍제천으로 고개를 돌려 건널목을 건넜다.

다음은 어떤 모습을 만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