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좋아서

이진숙 2011. 5. 4. 07:39

 

카라바조, 예수 그리스도의 매장, 캔버스에 유채, 1602-1603년, 로마 바티칸 피나코테카

그는 살인자였고 동성애자였고 도박꾼이었으며, 죽음조차도 온전치 않아서 37의 나이에 나폴리 해변가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살아있을 때는 그림 주문이 끊이지 않아 도피 중에도 그림을 그렸다. 그의 이름은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1573~1610)이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 때문에 남아있는 그림들은 혹독한 대접을 받았다. 소장자들은 카라바조의 그림을 부끄럽게 여겼으며, 작품들은 창고에 처박혀 있다가

뿔뿔이 흩어져 버렸으며 그는 한동안 잊혀졌다. 그러나 1920년대 몇몇 선구적인 미술사가들에 의해서 카라바조는 재발굴되어 17세기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손꼽히고 있다. 그로부터 17세기 바로크 미술이 시작되며 그가 없었다면 루벤스도 렘브란트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일컬어진다.

로마에 가면 그가 가장 위대한 화가로 군림하던 시절의 작품이 그대로 남아있다. 실제로 루벤스는 이태리 여행 중에 카라바조의 작품에 심취한다.

잊혀져있던 카라바조의 작품을 자신이 직접 구입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살 것을 권하기도 한다.

로마 바티칸 피나코테카에 보관되어 있는 <예수 그리수도의 매장>을 직접 모사해 그리보면서 카라바조를 연구한다.

 

카라바조는 르네상스이후에 뒤따른 매너리즘 화풍을 일거에 개혁하고 독창적인 회화적인 기법을 완성했으며, 그의 흔적은 모든 바로크 회화에서 발견된다.

예수를 매장하는 장면을 그린 이 작품은 그의 완숙기 작품이다. 모든 인물들이 좁은 공간에 쌓여있듯이 모여 있다.

관람객과 그림속 인물들 사이의 거리는 무대와 관중석의 첫 번째 줄 정도의 거리이다. 성모마리아는 두 팔을 벌려 죽은 아들을 애도하는 자세를 취하며,

막달레나 마리아는 슬픔에 빠져 얼굴을 묻고 흐느끼며 또 다른 마리아는 하늘을 향해서 간청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슬픔을 대하는 태도의 유형학이다.

각 마리아들의 자세는 연극배우의 몸짓처럼 드라마틱하게 땅에서 하늘로 슬픔을 고양시킨다.

예수님을 안고 있는 왼쪽 사람은 요셉인데, 그의 오른 손은 예수님의 오른편 옆구리에 난 상처에 닿아있다.

이것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성 토마스가 예수의 옆구리에 난 상처를 손가락으로 만지는 장면을 그렸던 카라바조의 다른 그림을 연상시킨다.

예수의 부활도 손으로 만지는 육체적 실감으로 확인하듯이 죽음도 육체적 실감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손끝이 가르키는 곳은 바로 그가 매장될 무덤 안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원래 설치장소인 키에사 누오보 교회에서는 예수의 손끝이 닿은 돌판이

보는 사람의 눈에 맞춰져 걸려있었다. 즉 교회의 신도들이 서 있는 곳은 바로 예수가 매장된 무덤 안이라는 의미이다.

갈색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순교자 니고데모이다. 니고데모는 힘겨워 보이며 도움을 청하는 듯 관람객을 쳐다본다.

맨발인 그의 다리 근육은 죽은 예수의 몸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팽팽하게 긴장되어있다.

그의 간청에 못이겨 그림 밖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대속해서 죽어간 예수를 받아들이게 된다. 종교적인 이야기가 삶의 순간에 뛰어들어 현실을 증폭시키는 순간이다.

 

배경은 어딘지 알 수 없게 어둠에 잠겨있으나 벗은 예수의 몸만을 환하게 빛나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명암법,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의 사용은

사건의 드라마틱한 성격을 고조시키며 관람객들을 주제에 몰입시킨다. 키아로스쿠로는 17세기 내내 모든 작가들의 작품에서 드러난다.

특히 렘브란트에 와서는 이것은 내면화되어 인간의 영혼을 표현하는 훌륭한 수단으로 발전하였다.

이외에도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인물들의 연극적인 배치와 연극무대적인 공간 구성, 니고데모의 긴장된 근육 묘사에서 보이는 사실주의적 수법

역시 17세기 바로크 회화 전반에 카라바조가 끼친 영향이다.

 

로마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미술관에 흩어져 있는 그의 작품은 미술관의 간판 작품 노릇을 하고 있다.

버림받고 매장되었던 카라바조가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이다.

 미술평론가 데이브 히키는 말한다. 루벤스가 카라바조의 작품을 직접 구매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소장을 권유했던 이유는 딱 하나라고.

바로 그의 작품이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점잖은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과는 달리 카라바조의 아름다움 당당하고, 우리의 육체적 실감에 자극하는 감각적인 아름다움이다.

죽은 예수의 얼굴은 바로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다. 예수의 시신을 교회안의 신도들에게 양도하듯이, 카라바조는 자신의 작품을 우리의 감각에 반복해서 각인시킨다.

 

이진숙(<러시아 미술사>(2007, 민음인), <미술의 빅뱅>(2010, 민음사) 저자)

https://bigbluebook.org/ko/188/1/
무덤에서의 시간
1. 예수의 매장
188:1.1

요셉과 니고데모가 골고다에 도착하였을 때,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끌어내리고 있고, 죄수를 매장하는 구덩이로 그의 시신을 옮겨가는 일을 예수의 추종자들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산헤드린에서 보낸 사람들이 옆에 서서 감시하고 있는 것을 그들은 발견하였다. 요셉이 주(主)의 시신에 대한 빌라도의 명령서를 백부장에게 제시하자,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소란을 피우며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들이 광란에 가까울 정도로 맹렬하게 그 시신을 가져가려고 하면서 행동에 옮기려고 하자, 백부장은 네 명의 군인에게 옆에 서도록 명령하였으며, 그들은 칼을 빼들고 땅에 눕혀져 있는 주(主)의 몸 좌우에 버티고 섰다. 백부장은 다른 군인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화난 유대인들을 뒤로 물리치는 동안, 강도들의 시체를 치우도록 하였다. 질서가 회복된 후에, 백부장은 빌라도가 보낸 명령서를 유대인들에게 읽어주고, 옆으로 가서 요셉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시신은 당신의 소유이니 소견대로 하시오.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내가 군인들과 함께 지켜주겠소.”
188:1.2

십자가형에 처해진 사람은 유대인의 무덤에 묻힐 수 없었다; 그러한 절차를 금지하는 엄격한 법이 있었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이 법을 알고 있었으며, 골고다로 가는 길에서 그들은 요셉이 새로 만든 가족묘에 예수를 묻기로 결정했었으며, 그 묘는 사마리아로 가는 길 건너편, 골고다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고 단단한 바위를 파내서 만든 것이었다. 이 무덤에는 아무도 묻힌 적이 없었으며, 그들은 주(主)를 그곳에 눕히는 것이 적당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요셉은 예수가 죽음에서 일어나실 것을 실제로 믿었지만, 니고데모는 거의 믿지 않았다. 전에 산헤드린 회원이었던 이 사람들은 그들이 그 공회를 그만두기 전에도 산헤드린 회원 동료들 중에는 오래 전부터 그들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예수에 대한 자기들의 신앙을 어느 정도 비밀리에 지키고 있었다. 이 날 이후로 그들은 온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가장 과감하게 전하는 제자들이 되었다.
188:1.3

4시 30분경에 나사렛 예수의 장례 행렬이 길 건너편에 있는 요셉의 무덤을 향하여 골고다를 출발하였다. 그 시신은 네 사람이 운반할 수 있도록 세마포로 쌌으며, 갈릴리에서 온 신실한 여인 감시자들이 뒤를 따라갔다. 예수의 시신을 운반한 사람들은: 요셉, 니고데모, 요한, 그리고 로마 백부장이었다.
188:1.4

그들은 시신을 무덤 안으로 운반하였으며, 사방 10피트 정도 되는 묘실 안에서 급히 장사지낼 준비를 하였다. 유대인들은 실제로 시신을 땅에 묻지 않았다; 그들은 실재 향유로 방부 처리하였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많은 양의 몰약과 향료를 가져왔으며, 이 액체들을 적신 헝겊으로 시신을 쌌다. 향유로 방부 처리하는 일이 끝나자, 그들은 얼굴을 수건으로 동이고, 몸을 세마포로 감았으며 무덤 안에 있는 선반 위에 존경을 담아서 눕혀 놓았다.
188:1.5

시신을 무덤에 안치시킨 후에, 백부장은 군인들에게 신호를 보내어 무덤 입구에 돌로 된 문을 굴리는 일에 도움을 주도록 하였다. 그러고 나서 군인들은 강도들의 시체를 게헤나로 옮기기 위하여 출발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유월절 축제를 지키기 위해 슬퍼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88:1.6

이 날은 준비일 이었고 안식일이 곧 시작되기 때문에 예수의 장사는 매우 급하게 서둘러 치러졌다. 남자들은 서둘러 도시로 돌아갔지만, 여인들은 아주 캄캄할 때까지도 무덤 곁에 있었다.
188:1.7

이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여인들은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도록 그리고 주(主)가 어디에 안치되는 지를 보기 위하여 아주 가까운 곳에 숨어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숨어 있었던 것은 그러한 시간에 여인들이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여인들은 예수를 장사지낼 준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자기들이 요셉의 집에 돌아가서, 안식일을 지내고 향료와 기름을 준비하고 그리고 죽음의 휴식을 위하여 예수의 시신을 준비하도록 일요일 아침에 정확히 돌아오도록 그들끼리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하면서 금요일 저녁에 무덤에 머물러 있었던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 클로파의 아내 마리아, 예수의 또 다른 이모 마르다, 그리고 세포리의 레베카였다.
188:1.8

예수의 제자들 중에서, 다윗 세베대와 아리마대의 요셉을 제외하고는, 셋째 날에 무덤에서 살아나실 것을 실제로 믿거나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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