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좋아서

이진숙 2012. 3. 4. 13:06

 

지나친 감동은 때로 사건을 일으킨다. 2008 6월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쥐 미술관에서의 일. 이 미술관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는 것이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1869~1954) <> <음악>이다. 이 두 작품들은 전문가들이 손꼽는 마티스의 중요 작품들이다. 마티스의 작품들과 피카소의 작품들이 연이어 있는 전시실은 늘 관람객들로 북적댄다. 모두들 가벼운 감탄의 소리와 함께 작품을 보고 있을 때, 한 여성 관람객이 마티스의 <> 앞에서 벌러덩 누워 버린다. 전시장 지킴이 할머니가 놀라 뛰어오고 시속 100km로 발사되는 러시아어가 전시장을 울리며 한 바탕 소란이 벌어진다. 당연히 그 젊은 여성관람객은 할머니의 야단에 못 이겨 잠시 후에 일어났고, 그 방에서 쫓겨났다. 옆방의 할머니들도 모두 그녀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지만, 더 이상 말썽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소동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나는 그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마티스는 자신의 작품이 안락의자처럼 편안하길 원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안방처럼 누워서 편안하게 마티스를 보려했던 그녀의 관람자세는 그러니까 지극히 마티스적이었다. 이런 추억과 함께 단순함과 우아함의 대명사인 이 작품들은 두고두고 에르미타쥐와 마티스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미술사가들이 마티스에게 부여한 지위는 야수파의 선도자였다. ‘야수파라는 말은 자유분방한 색채의 사용 때문에 경멸조로 붙여진 용어였다. 무엇이라 칭하건 색채의 사용에 있어서의 마티스의 제왕적 지위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입체주의를 주창한 피카소와 더불어 마티스는 20세기 초반 근대미술의 두 거인이었다. 피카소의 작품이 지적이고 남성적이고 때로 강렬한 파괴력을 발휘를 했다면, 마티스는 감성적이고 여성적이며 조화를 추구했다. 두 사람은 평생을 경쟁 관계에 있었지만 피카소는 마티스를 “20세기 최고의 색채 화가라고 기꺼이 인정했다.

 

 

사치, 고요, 쾌락, Luxe, calme et volupté. 1904. Oil on canvas.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법학도였던 마티스는 22살이 되던  1891년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1905년 야수파로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 그에게는 14년간의 긴 탐색기간이 있었다. 마티스는 1904년 여름을 점묘파 화가 폴 시냑의 초대로 남부 프랑스의 생 트로페즈에서 보낸다. 생 트로페즈의 강한 태양 광선과 쾌적한 환경은 그의 그림을 바꾸었다. 1904년에 그린 작품 <사치, 고요, 쾌락>은 점묘파적인 기법으로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신전이 있는 키테라 섬의 풍경을 표현한 작품이다. 티치아노, 푸생, 와토, 앵그르 등의 맥을 잇는 낙원의 환상을 현대적인 어법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직접적인 영감은 보들레르가 자신의 연인에게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 이상세계로 나아가자고 권유하는 시 <여행에의 초대>에서 시작되었다. 아마도 이때는 무지개가 마티스의 팔레트였던 것처럼, 그는 화려한 색채로 달콤하고 아늑한 낙원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여인들이 쉬고 있는 해변가에 눈에 띄는 색조는 주황색이다. 1906년 그려진 <삶의 기쁨>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고 있지만 점묘파적 기법에서 벗어나 마티스만의 개성을 잘 드러낸다. 자유분방하고 강렬한 색채와 단순하고 명료한 구성으로 지복의 낙원 풍경을 펼쳐내고 있다. 이 작품은 5년 뒤에 그려질 <> <음악>의 중요한 모티브를 모두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주황색이 과감하게 쓰인 것이 눈에 띈다.

 

실제 이전까지 회화에서 주황색은 그림의 중요한 색이 아니었다. 진지하고 교훈적인 내용을 담는 그림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색이었던 것이다. 마티스를 포함해서 모리스 블라맹크, 앙드레 드랭 등 야수파의 젊은 화가들은 인상주의자들조차 쓰기를 두려워하던 이 강렬한 색을 과감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주황색의 느낌을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오렌지가 춤춘다라고 표현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도전적이고 경쾌한 느낌의 색인 주황색의 느낌을 딱 잡아낸 것이다. 영어로 주황색은 영어로는 오렌지(Orange)이다. 하양이나 검정처럼 별도의 색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일의 이름을 따서 붙인 명칭이다. 한자어인 주황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빨강과 노랑 사이에 있는 색으로 새빨간 혹은 샛노란 같은 색으로 색 자체의 강도를 높일 수 없는 색이다. 색채심리학에서 주황은 튀는 색이며 외향적인 색이며 잘난 척하는색이다. 주황은 술 한잔 걸치고 흥에 겨워하는 주신 디어니소스의 색이다. 즐거움의 색이고, 행복의 색이다. 주황색은 분명 야수파의 색이었다. 그들은 모두 젊었고 거칠 것이 없었다.

 

 La Danse/ La Musique 1910.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아직 파리의 콜렉터들이 젊은 마티스의 그림 사기를 주저하고 있었을 때, 러시아의 콜렉터 슈추킨과 모르조프는 과감하게 그의 그림들을 사들인다. 슈추킨은 1909년 마티스를 러시아로 초청해서 자신의 집에 걸 <> <음악>을 주문한다. 이 여행에서 마티스는 러시아 전통 종교화인 이콘화의 단순함과 명료함에 큰 감동을 받고, 마침내 이 작품을 완성한다.

 

<> <삶의 기쁨>의 화면 가운데 보이는 강강술래를 하는 여인들의 모티브를 확대해서 그린 그림이다. 춤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토기에 등장하는 춤추는 여인들과 서로 어울려 우아한 춤을 추는 삼미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배경은 동산을 암시하는 정도로만 표현되어 있으며, 인물들 역시 모두 간략한 선묘로 표현되고 있다. 여인들의 몸은 화면의 활기찬 리듬을 부여하기 위해서 적당히 왜곡, 단순화되어 있다. 한 평론가의 말처럼 인간의 몸의 형태를 에너지와 평형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의 핵심은 활기이고, <음악>의 핵심은 우아한 조화이다. 여기서 입을 열어 합창을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들은 마치 오선지 위에 있는 음표들처럼 배치되어 있다. 마티스는 인물들을 음악적인 상형문자로 환원시킨 것이다. 바이얼린 연주자는 마치 높은 음자리표처럼 보이며 <삶의 기쁨>의 왼쪽 화면에 꼿꼿이 서있는 여인을 연상시킨다. 또한 <>은 여성이, <음악>은 남성이 주인공인 세상으로, 두 작품 <> <음악>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두 작품에서는 마티스는 4가지 색깔만을 사용해서 강렬한 색채 효과를 내고 있다. 흥미롭게도 마티스는 두 작품 모두에서 인물을 주황색으로 칠했다. 약간의 뉘앙스 차이는 있지만, 마티스가 행복한 낙원을 그릴 때 늘 등장하는 색이 주황이다. <> <음악>이 어우러진 곳이 낙원이 아니면 어디겠는가? 그런데 이번의 주황색은 파랑을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주황은 파랑과 보색이므로, 파랑의 정신적이며 사색적이고 고요한 특색과 정반대의 특성을 갖는다. 감성적이고 즉흥적이며 활기찬 느낌이다. 반 고흐는 파랑이 없는 주황은 없다.”고 말했다. 주황이 파랑으로 둘러싸여 있을 때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이다. 주황과 파랑의 조합은 1939년에 그린 <음악>이라는 동일한 작품의 제목에서도 볼 수 있다.

Henri Matisse. Music. 1939. Oil in canvas. Albright-Knox Art Gallery, Buffalo, NY, USA

 

1920년대 이후 마티스는 중산계급의 평온한 가정을 모티브로 하여 평범한 감상적인 미와 조용한 친근감을 강조하는 앵티미즘Intimism적인 작품을 주로 그린다. <사치, 평온, 관능>을 가정적 정경으로 변형시킨 듯한 작품들이다. 성숙기 마티스는 <붉은 스튜디오>, <분홍 스튜디오>같은 작품들 처럼 마티스는 빨강, 주황, 분홍 등 활기차면서도 흥겨운 색을 선택해서 작품의 장식성을 높였다. 

내가 꿈꾸는 것은 사람을 괴롭히고 기분을 저하시키는 주제가 아닌 균형과 순수와 청아함의 예술, 사업가이건 작가이건 모든 정신 노동자들을 위한 진정작용, 심적 위안물, 육체적인 피로를 풀 수 있는 편안한 안락의자 같은 예술이다.”라고 마티스는 말한다. 다분히 피카소를 의식한 말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작품세계를 잘 표현한 말이다. 1차대전,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현대미술도 각종 새로운 유파와 어려운 선언문들의 등장으로 복잡한 길을 가게 되었다. 미술도 어려워져 갔고, 삶도 어려워져 갔다. 고통과 피로, 우울은 현대인의 일상적인 심리상태가 되었고 누구에게나 치유가 필요한 시절이 닥쳐오고 말았다. 이런 현대인들에게 마티스는 위안이 되는 미술을 제공했다. 삶의 우울을 제거하고 밝고 활기 넘치는 주황색이 큰 역할을 한다. 주황색, 오렌지 색은 무엇보다 잊었던 입맛을 돋구는 달콤새콤한 소스의 색이지 않는가? ^^*

 

오렌지? 아~니죠. '아린쥐'가 맞죠? ^^

전에 로스코와 램브란트에 관한 글에서도 느꼈는데, 역시 전문가답게 색에 대한 강한 의미 부여가 가능하시군요.
저처럼 그림을 보는 대신에 텍스트를 읽는, 취미로 미술을 접하는 사람에겐 불가능한 안목입니다 그려. ^^
"주황은 술 한잔 걸치고 흥에 겨워하는 주신 디어니소스의 색이다."............. 라는 표현, 매우매우 좋습니다. ^^
니체에 빠졌다던 로스코 역시 저런 느낌으로 색을 보면서 니체의 디어니소스적 의미를 떠올렸을 거란 생각마저 드네요.

근데요,

"주황색, 오렌지 색은 무엇보다 잊었던 입맛을 돋구는 달콤새콤한 소스의 색이지 않는가? ^^*"
이 건, 어릴 적 즐겨 먹던 불량식품에 관한 추억............... 맞죠?
고급 이태리 레스토랑의 스파게티.... 뭐 이런 것에 대한 우아한 추억이 아니고요? ^^
거기서이탈리아 스파게티(?파스타인가?) 그게 왜나오는 건데!! 라는 츳코미(테클)을 걸고 싶기도 하지만
디오니시스 의 색이 주황이라... 뭔가 의미심장하네요..

학교 수행평가 때문에 잠시 들른 블로그지만 이외로 좋은 자료를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