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좋아서

이진숙 2012. 10. 7. 11:21

문제는 냉장고야!

이진숙의 아트북 깊이 읽기 <40> 영화 ‘피에타’의 수상 비밀

이진숙 | 제291호 | 20121007 입력

영화 ‘피에타’
문제는 냉장고다. 김기덕의 영화 ‘피에타’를 보면 중반쯤 흰색 대형 냉장고가 바닥에 누워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을 해독해야 영화가 제대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 엽기적인 설정에 치를 떠는 사람과 찬사의 박수를 치는 사람으로 나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지만 영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잔혹하고, 불편하다는 말이 많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가 상을 받은 이유라면? 우리에게는 단점인 그 모든 것이 외국 사람들에게는 장점이라면?

우리에겐 안 보이고, 그들에겐 분명한 코드들
영화 곳곳에 우리에게는 잘 안 보이고 그들에게는 분명히 보이는 어떤 코드들이 배치돼 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서 따온 포스터뿐 아니라 김기덕은 서양미술의 전통적인 도상을 아주 명민하게 이해하고 영화 곳곳에 교묘하게 배치해 놓았다. 젊은 시절 영화를 하기 전 프랑스에서 거리 화가로 살던 그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공개한 그림 중에는 성경의 요한 계시록을 그린 그림이 있다. 죄와 구원이라는 서양 문화의 오래된 질문에 대한 김기덕 특유의 재해석이 돋보인다. 

 

 다시 말하건대 문제는 냉장고다. 누워 있는 흰색 대형 냉장고는 바로 21세기형 시체보관함이다. 누워 있는 성인 남자 크기의 하얀 직육면체. 그것은 바로 서양미술사에서 죽은 예수를 매장하는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석관(sarcophagus)이다. 1559년 티치아노의 ‘그리스도의 매장’에도 이런 석관이 묘사돼 있다. 영화에서 여주인공 조민수는 죽은 아들의 시체를 이곳에 보관한다. 석관을 21세기 차원으로, 종교적 신화를 냉장고라는 일상적인 삶의 차원으로 전치시킨 것은 김기덕의 놀라운 감각이다.

시모네 마르티니 ‘그리스도의 매장’(1340)
영화의 공간도 예사롭지 않다. 청계천의 작은 철공소들.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비좁고 숨막히는 공간. 녹슬어 가는 금속 공구들의 어둡고 차가운 색조. 언제부터 쌓이기 시작했을지 모르는 갖가지 물건이 뿜어내는 퀴퀴한 냄새들. 배트맨 시리즈에서 유명 감독들이 그토록 보여주고 싶었던 고담시(성경의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따온 이름)의 어두운 뒷골목이자 타락과 죄악의 장소 그 자체다. 이곳은 더 이상 대한민국 서울의 단순한 청계천 뒷골목이 아니라 ‘죄와 구원’이라는 오래된 화두를 풀어나가는 보편적인 장소가 된다.

현대판 석관에 아들의 시신을 둔 여자, 조민수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은 모두 성모 스타일이다. 그녀는 눅눅한 초록색 머플러를 느슨하게 걸쳤고, 빨간 치마를 입고 있다. 빨간 싸구려 나일론 치마는 대한민국 사람 누구도 입지 않는 옷이다. 붉은색과 푸른색(경우에 따라서는 영화에서처럼 초록색)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하늘로 승천한 성모의 전통 복장 색이다. 붉은색은 피를 가진 인간을 의미하며 푸른색은 신을 상징한다.

영화 중간에 조민수의 옷은 흰색으로 바뀐다. 성경에서 예수는 자신이 신(神)이라는 것을 빛으로 변해 증명한다. 라파엘이 그린 ‘그리스도의 변용’(1520)에서처럼 서양미술사에서 흰색은 빛의 색이다. 30년 만에 어머니를 인지한 이강도(이정진 분)의 눈에 그녀는 사랑의 신이었다. 헤어스타일도 마찬가지다. 성모의 두건 대신 앞머리로 얼굴을 신비스럽게 가린 헤어스타일도 성모스타일의 변형이다. 그러나 구원의 여성 성모는 영화에서는 복수의 여성이 되었다. 찬양받는 여성의 덕성인 모성은 잔혹한 복수의 도구로 변질된다.

좋은 영화, 그러나 준비 안 된 관객은 불편한
김기덕이 바라보는 세상은 끔찍하다. 그의 표현대로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여자도, 남자도 몸을 팔아야 한다. 여자들은 성을 팔고 남자들은 이 영화에서처럼 살기 위해 사지를 절단당한다. 이런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구원은 가능할까? 김기덕은 특유의 날것의 감각으로 죄와 구원이라는 오래된 문제, 유럽 문화의 전통에 깊숙이 칼끝을 들이민다.

주인공을 향해 쏟아지는 “불에 타 죽을 것이다”라는 저주를 들으면서 혹자는 노동자들의 분신투쟁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서양 사람들은 묵시록의 예언을 떠올릴 것이다. 구약에 묘사된 신은 곧잘 분노하고 인간을 벌한다. 그러나 신약의 예수는 신의 새로운 이름을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죄에 빠진 세상에서 사랑은 자기희생과 처절한 고통과 죽음을 통해 실천된다. 기독교를 문화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극의 진행 과정은 낯설지 않은 것이다.

참혹한 죄악의 세상. 복수는 있었으나 부활(구원)은 없었다. 복수를 시도한 조민수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강도에 대해 육체적으로 복수하지 않았다. 고통의 진정한 근원은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이다. 연민과 공감의 능력이 없던 잔혹한 이강도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고통의 진원지를 심어놓음으로써 그녀의 복수는 시작된다. 그에게는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잃고 싶지 않은 것, 그것이 없으면 안 되는 무엇인가가 생겼다. 생모가 아니라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여자라는 것을 결국 알게 돼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그 사랑은 그에게 컸다. 조민수의 죽음으로 복수는 완성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함으로써 삶은 지옥으로 바뀌고 구원은 요원해진다.

조민수가 자신의 친아들을 위해 뜬 스웨터를 입고 이강도는 죽음을 택한다. 그 스웨터에도 색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앞서 말했듯 흰색은 신의 색이고 분홍색은 인간의 살색이다. 그 옷을 입고 강도는 시신을 묻은 곳에 심은 나무에 물을 준다. 서양 중세미술에 등장하는 ‘생명의 나무’라는 테마의 현대적 번역이다. 이는 죄와 구원, 인간과 신이라는 테마를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

이강도의 마지막 선택은 악의 화신 자체였던 자신의 자발적 소멸이다. 차가운 새벽 그는 붉은 피를 길게 길게 흘리면서 길에서 죽어간다. 김기덕 특유의 잔혹함의 미학이 인상 깊게 각인되는 대목이다. 미술을 포함한 서구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이 잔혹한 아름다움에 전율을 거듭했을 것이다. 그게 황금사자상이 그의 손에 쥐어진 이유고, 이런 맥락을 모르고 영화를 보면 그저 불편함과 잔혹함만 남는 이유다. 재능 있는 감독의 좋은 영화, 준비 안 된 관객의 불편한 영화. 이것이 영화 ‘피에타’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이다.

참고 자료들

 

이 자세야 뭐 말할 것도 없는 자체 십자가. 

 

성모스타일의 조민수. 초록 머플러, 빨간 치마, 두건형 머리

사랑의 화신이 될 때는 신의 색인 흰옷을 입고 등장

고탐시보다 더 우울한 청계천이 배경

조민수가 뜬 옷을 입고 생명의 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 이정진 ....... 그는 희생을 통해서 구원받았을까?

그렇게 온갖 못된 짓을 다해놓고?

오늘 중앙선데이 기사를 읽고 새삼 기뻤습니다. 모르던 것을 알게되면 생기는 묘한 희열 덕분이었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누군가 읽어주어야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래서 <파란대문>과 클림트도 누군가의 책에서 읽고서야 깨달았지요. 늘 님의 글을 무릎 치며 읽고 강의도 듣고 싶은 팬이랍니다. 언젠가는 뵐 날을 기다립니다.^^
주간지다보니 글을 쓰고 나서 3주나 지나서 발표를 했네요. 그 사이 싸이 덕분에 피에타 열기가 다 식은 듯해요. ㅎㅎㅎ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왔더니 글이 많군요.

더구나 <피에타>를 이렇게 해석하시다니... 역쉬....라고 감탄하려니...이쿵, 전 아직 영화를 못봤네요. 기둘리고 있는데, 아직 이곳까지 흘러들어오진 않았어요. ㅠㅠ 나중에 영화 볼 기회가 있으면, 작가님의 해석을 염두에 두고 열씨미 열씨미 감상토록 하겠슴다. ^^

솔직히 말하자면, 제 개인적으로는 김기덕감독 영화를 그닥 좋아하진 않아요. 근데, 어쩌다보니 최근작을 제외하곤 거의 다 봐버렸네요. ^^ 초기 작품, <파란 대문>이나 <나쁜 남자> 등에서 에곤 쉴레의 그림을 통해 수시로 뭔가를 암시하는 방식에 상당히 관심을 가졌더랬어요. 너무 거칠다는 평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저는 쉴레 그림 이야기로 반박하곤 했죠. 그땐 김감독이 미술 공부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막연하게 에곤 쉴레를 좋아하는 괴짜 감독인가보다 했어요.^^

근데요, 아무리 지젝을 차용했다지만... "바보"라고는 제목 달지 마요. "듣는 바보" 기분나빠지잖아요. ^^
어? 윗댓글에 <파란 대문>과 '클림트'라니.... 그 영화에 클림트도 있었더랬나요?????
영화 내내 냉장고 나무 옷색상등의 의미를 알지 못해 아리송했었고 혹시 해서 "피에타 냉장고"라는 검색어(^_^)로
검색을 해보니 모든것이 해결되었네요 영화의 의미를 알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파란대문>을 못 보았습니다. ㅠㅠ.김기적 감독이 클림트를 차용했다면, 클림트의 마성을 드러냈겠지요. ^^*
조만간 '클림트의 마성'에 대한 글 하나 올리시려나? 기대해도 될까요? ㅎㅎ

뭐 저 혼자 댓글놀이 하는 거였습니다만, 기왕이면 모든 글에 하나씩이라도 댓글을 달아볼까 했었는데, 생존작가분들의 글에는 댓글 달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만요. 그분들이 방문했다가 괜히 제 댓글때문에 기분나빠지실까 싶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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