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의 미술가

이진숙 2012. 11. 4. 19:33

“조각은 모르는 곳을 향해 가는 일종의 심리극”

 

리움미술관서 동아시아 첫 개인전, 애니시 카푸어를 만나다

 

이진숙 미술평론가 kmedichi@hanmail.net | 제295호 | 20121104 입력

 

애니시 카푸어(58)가 거울 앞에서 입김을 불고 있는 자료 사진. 무심한 어린애 장난처럼 보이지만, 그의 예술에 관한 생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입김 같은 무형의 실재를 탐구하는 것, 이것이 그의 예술이다. 입버릇처럼 하는 “조각 자체에 대해 나는 말할 것이 없다”는 그의 말은 기존의 설명 방식으로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회화를 보듯 보아야 하는 조각이고, 건축물처럼 공간을 체험해야 하는 조각이며, 또 끊임없이 스스로 생성되는 과정으로서의 조각이다. 2009년 영국 로열 아카데미에서 생존 작가 최초로 전관 전시를 했으며, 2012 런던 올림픽의 기념 조형물 ‘궤도’(2012)가 런던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애니시 카푸어의 개인전이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시작됐다. 그의 진면모를 알 수 있는 중요 작품 19점이 나오는 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초의 개인전이다. 작품 설치를 위해 리움 건물의 벽과 바닥을 뚫는 대공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전시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애니시 카푸어를 중앙SUNDAY가 따로 만났다. 그는 시종일관 여유 있는 웃음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1My Red Homeland(2003), Wax and oil-based paint, steel arm and motor, D1200cm CopyrightⓒAnish Kapoor, Courtesy the artist and White Dark Limited, London 2 야외 정원의 작품 앞에 선 애니시 카푸어 3Tall Tree and the Eye(2011), Stainless steel,1300×500×500㎝, CopyrightⓒAnish Kapoor, Leeum,Samsung Museum of Art, Seoul
인도인·유대인 부모 둔 ‘문화 용광로’
-당신은 왜 조각을 하나.
“우리는 사물의 세계에 살고 있다. 나에게 조각은 이러한 사물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사물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너머에 무엇인가가 있다. 나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조각에 임하고 있다. 사실 이런 질문들은 매우 심리적인 측면, 그중에서도 불안이라는 감정과 관련이 있다. 조각은 내가 모르는 곳을 향해 가는 일종의 심리극이다.”

그는 젊은 시절 15년간 정신분석을 받았는데, 그것은 내면의 삶을 올바르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내면적인 경험을 통해 그는 아는 것과 보는 것이 같지 않다는 것을, 눈에 보이는 현실 너머에도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객관적인 사물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중심에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때로 심오한 철학적인 담론을 이끌어낸다.
사실 철학적인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을 눈으로 보이는 미술작품으로 만드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이 어려운 일을 애니시 카푸어는 해내고 있다. 이 점과 관련해 헤이워드 갤러리 관장 랠프 루고프는 “그의 작품은 인식의 문제만 다룬다. 그래서 배경 지식이 없어도 눈만 있으면 다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카푸어가 가장 철학적인 조각을 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가 될 수 있는 이유를 정확하게 짚은 말이다. 2002년 테이트 모던 전시에는 전 세계에서 18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모여들었고, 벽에다 붉은 안료 대포를 쏘아대던 2009년 개인전 역시 로열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흥행한 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4Yellow(1999), Fibreglass and pigment, 600×600×300㎝ CopyrightⓒAnish Kapoor, Courtesy the artist and Lisson Gallery, London
카푸어는 인도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을 북인도의 히말라야 계곡이 보이는 아름다운 곳에서 보내고, 17세에 형과 함께 어머니의 나라 이스라엘로 간다. 3년 동안 키부츠에서 생활한 후 영국의 혼지 미술대학에 입학한다.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 대표작가로 선정되는 등 영국에서 활동하면서 영국의 대표작가가 됐다.

붉은색은 피의 색, 살아있는 사람의 색
-하버드대 호미 바바 교수는 당신 작품을 코스모폴리탄적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당신의 출신 배경, 경험과 관계가 있는가.
“그런 성장 배경도 있지만 문화적인 조건을 의미한다. 우리 현대사회를 규정짓는 조건·문화가 범세계적인 범위로 통용된다는 의미다. 특정 문화권으로 나를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

5 전시장 풍경 6When I am Pregnant(1992), Fibreglass and paint, 180.5×180.5×43㎝ CopyrightⓒAnish Kapoor, Courtesy the artist and White Dark Limited, London
특정 문화나 종교를 굳이 집어낼 수 없는 다양한 문화의 멜팅 폿(melting pot)인 카푸어는 서구미술에 없던 요소를 작품에 끌어들인다. 1979년 22세 때의 인도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안료 작품이다. ‘붉은색의 은밀한 부분을 반영하기’(1981) 같은 작품들은 부드러운 안료로 되어 있는데, 이 작품들은 당시 주류를 형성하던 리처드 세라류의 강한 남성적인 조각과 대조되는 여성적인 조각들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당신의 조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크기와 색채다. 크기는 조각의 주요한 언어 중 하나다. 테이트 모던에서 설치했던 ‘마르시아스’는 굉장히 컸다. 전체로 볼 수 없었다. 한번에 다 보지 말고 부분을 기억해 두었다가 기억을 연결하면서 보기를 기대했던 작품이다. 나는 오랫동안 색채에 대해 연구해 왔다. 특히 모노크롬 색채는 몽환적인 느낌을 강하게 준다. 이 몽환적인 느낌은 심오한 깊이감을 표현할 수 있는데, 여기에 크기가 개입되면 즉, 그 크기가 당신이나 나보다 커지면 우리는 자신이 사라져버리는 듯한 어떤 숭고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초월성, 숭고함의 느낌은 그의 작품에 중요한 요소다. 미지의 것을 체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작품 앞에서 체험하게 된다. 지름 12m가 넘는 대작 ‘나의 붉은 모국’(2003)은 색채와 크기의 의미를 그대로 보여준다. 인도의 토속적인 색, 피의 색인 붉은색 왁스 더미 위에 커다란 해머가 회전하면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가의 손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지는 이 과정을 작가는 ‘자가생성(Auto-generation)’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이것은 동양적인 세계관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서양적 사유에서 세계는 신의 창조 이후에 완결되었지만, 동양적 사고에서는 모든 사물은 음과 양의 조화 속에서 부단히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생성, 생성의 조건으로서의 음, 여성적인 것이 작품 속에서 느껴진다.
“초기의 안료 작업을 보고 나를 여성 작가로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웃음). 섬세하다고 느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예술가의 임무는 창조와 탄생의 순간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의 창조적인 능력과 에너지는 내 예술의 원동력이다.”

작품 ‘나의 몸 너의 몸’의 중심부에는 서서히 함몰되는 깊고 어두운 구멍이 있다. “눈을 감으면 붉은색은 푸른색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깊은 암흑 같은 것을 만들어 낸다”고 그는 설명한다. 이 암흑으로 귀결되는 구멍은 여성 몸의 깊숙한 곳을 연상시키지만, 에로틱함을 넘어서 세계의 시원이 되는 유현한 공간, 사물이 생성되는 시간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신비롭고 피할 수 없는 매혹을 가진 것이 그의 작품이다.

‘보이드(Void)’ 시리즈는 여성적인 공간, 음의 공간을 보여준다. 작품 ‘노랑’(1999)은 움푹 파인 벽면이다. 아무것도 없는 노란색 공간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 공간에 빨려들어갈 것 같은 느낌, 거기에 무한한 세계가 열리는 경이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지름 8m의 육중한 몸체를 자랑하는 코텐 스틸 작품 ‘동굴’(2012)은 그 둔중한 외관을 감상하는 것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여성의 자궁처럼 동그란 어둠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적 생산성은 무표정한 벽조차 생산적인 것으로 만든다. 흰 벽이 슬며시 튀어나온 ‘내가 임신했을 때’(1992)는 임신한 남자를 보는 것처럼 낯설면서 재미있다.

가장 철학적이고, 가장 대중적인 작가
조각의 물질적인 형태와 비물질적인 반사 이미지가 공존하는 스테인리스 스틸 작업은 물질 너머의 세계를 보고자 하는 카푸어의 의도를 가장 잘 전달하는 작업이다. 오목 거울 형태의 작품 ‘여전히 위아래가 뒤집힌’(2002)은 수저의 뒷면처럼 위아래가 뒤집힌 볼록한 상을 비춰 준다. “한때 사람들은 세상을 보기 위해 볼록렌즈를 사용했지만 나는 오목렌즈를 사용했다.” 이로써 그의 작품은 회화가 한때 누렸던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역할을 대신하는 회화적인 조각이 된다. 물론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광장에 설치된 사각의 오목 거울 작품 ‘현기증’(2012) 앞에서는 정말이지 현기증이 난다. 우리가 정확한 모습을 찾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작품 속의 세상은 유동적이고 불안정하게 춤을 춘다. “우리는 늘 어느 것이 진짜이고, 진짜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작가의 말을 그대로 체험하게 된다.

15m 크기의 대형 조각 ‘큰 나무와 눈(Tall Tree & the Eye)’(2009)은 릴케의 시집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서 영감을 받았다. 73개의 공은 저마다 세상을 비추고 있다. 이 작품은 2009년 로열 아카데미의 개인전에서도 선보였는데, 당시에는 주변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진가를 발하지 못하다가 리움의 탁 트인 광장에 오니 목청이 트인 시원한 합창소리를 내는 것 같아 보기 좋다.

만화경처럼 세상을 비추는 그의 작품 앞에서 아이들은 즐거워하고 어른들은 심각해진다. 세상의 다양함을 즐길 수 있는 아이들은 신기한 체험이 마냥 재미있다. 기준을 세워놓고 사는 어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지식, 나이를 떠나 모든 관객을 반응하게 만드는 작품, 좋은 작품이다. 전시는 2013년 1월 27일까지 이어진다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