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빅뱅

이진숙 2013. 1. 27. 14:44

바람과 비와 눈과 시간… 자연의 흔적을 담다

사진작가 김아타의 ‘프로젝트-드로잉 오브 네이처’

파주 글 이진숙 미술평론가,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 attakim | 제307호 | 20130125 입력

1 일본 도쿄에 설치했던 ‘프로젝트-드로잉 오브 네이처’ 작업 ‘N35°42′28″ E139°46′48″, 270 x 160 cm 2010년 5월 29일부터 2012년 5월 29일까지 설치했다. 2 ‘드로잉 오브 네이처’ 일본 히로시마 설치 장면 3 ‘드로잉 오브 네이처’ DMZ 향로봉 설치 장면 4 ‘드로잉 오브 네이처’ 인도 갠지스 강 설치 장면 5 국내 원시림에 작품을 설치 중인 김아타 작가
김아타(57). 그는 장엄함을 다룰 줄 안다. 광대한 사유의 폭과 깊이, 전지구적인 행동 반경, 철저한 실행 능력…. 한국 미술에서는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들고, 전세계 어느 작가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스케일의 작업을 그는 하고 있다.
그는 늘 큰 걸음으로 앞서갔다. 평론가·큐레이터·갤러리스트들이 겨우 따라잡았다 싶으면 그는 벌써 한걸음 앞서 가 있었다. 2006년 뉴욕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전시에서 ‘8시간 노출 사진’과 ‘아이스 모놀로그’ 시리즈로 주목을 받은 그 순간, 화면에서 모든 것이 사라진 ‘인달라 시리즈’를 발표했다. 이 작품들로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등 세계적인 사진 작가로서 본격 궤도에 진입한 순간, 이번에는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연이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프로젝트-드로잉 오브 네이처(The Project-Drawing of Nature)’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점봉산·향로봉을 비롯해 인도 보드가야, 그리스 파로스 섬, 중국 허난성, 뉴욕 맨해튼, 인디언 보호구역, 히로시마, 베이징, 베네치아, 시베리아, 티베트 등 전세계 44곳에 대형 캔버스를 설치하고 자연이 남긴 흔적을 ‘채집’하는 작업이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데, 이 중 22개가 돌아와 모습을 드러냈다.
인제의 자연림에서 가져온 캔버스를 보자. 곰팡이 꽃, 빗물 자국, 바람의 숨결과 햇빛, 나무 그림자 등 기운 생동한 자연의 은밀한 흔적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땅에 파묻어 수의처럼 썩어 들어갔던 캔버스는 검은 바탕 위에 자개처럼 피어나 죽음을 초월한 처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거제도 앞바다에 설치되었던 캔버스는 온갖 바다생물들의 흔적이 가득했다. DMZ 포사격장에 설치되었던 캔버스에는 파편의 흔적이 추상표현주의적인 강렬한 화면으로 다시 태어났다.
서양에서 아트(art)란 자연에 상반되는 인공적인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지금 이 작품들은 김아타가 디렉팅하고 자연이 협력해서 만든 예술이다. 예술의 개념을 바꾸고 있는 김아타를 15일 오후 경기도 파주 작업실에서 만났다.

6 땅속에 묻었던 ‘드로잉 오브 네이처’ 작업 ‘N37 68 02 E127 85 47’(2012), 150 x 190 cm 7 포탄 파편 작업 ‘The Target #09’(2012) 앞에 서 있는 김아타 작가 8 ‘The Target #03’(2012), 210 x 150 cm 9 소총 사격장에 설치된 ‘The Target #013’(2012) 45 x 50 x 96 cm
향로봉·히로시마·티베트 … 세계 44곳에 2년간 캔버스 설치
-해체’에서 ‘뮤지엄 프로젝트’ 다시 ‘온 에어’로, 그리고 이번 ‘드로잉 오브 네이처’까지 작품이 역동적으로 바뀌어 왔다.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사진도 빛이고 캔버스도 빛의 작용이다. 내 책 중에 『물은 비에 젖지 않는다』는 제목의 책이 있다. 물과 비의 근본은 똑같이 HO인데, 비라고도 하고 물이라고도 한다. 이런 차이와 경계를 넘어서 무차원의 차원으로 가고 싶다.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아타는 달라진 것이 없다. 똑같은 절절함으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자연에 캔버스를 세운다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나.
“1995년에 이미 부산 기장에 있던 작업실 근처의 캔버스 두 개를 야외에 세워둔 적이 있었다. 1년 동안 캔버스가 변하는 것을 보면서 힘든 시간을 버텼다. 그보다 중요한 다른 계기는 뉴욕에서 ‘아티스트 인달라’ 작업을 할 때였다. 윌리엄 터너의 작업을 보면서 많이 울었다. 터너는 죽을 때까지 그림만 그렸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인달라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나는 아티스트로서 너무 많이 찍고 너무 많이 걷고 너무 많이 관계했다. 온 에어 프로젝트의 만 장의 사진을 하나로 만든 인달라 시리즈는 클라이맥스다. 폭발해 버릴 것 같은 순간도, 지혜를 만지는 순간도 있었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웠고 그것이 이 프로젝트로 인도했다.
이런 계기들로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정확하게는 카메라나 현대 미술이 요구하는 차원에서 하차한 것이다. 다시 카메라를 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다른 의미일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주위 반응은.
“한국에서는 한마디로 시큰둥이었다. 누구는 실패할 것이라는 말까지 했고, 가까운 사람들도 냉담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내가 아티스트로 살아온 이유를 알게 해주었다. ‘이 작업을 위해서 지금까지의 나를 다 버려도 좋다’는 각오로 매진했다. 반대로 외국 친구들은 대부분 환영했다. 산타페·뉴욕 등 허락받기 까다로운 공간을 섭외하는 데 적극 도와준 친구도 있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주변의 몰이해에도 전진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
“작가는 고통스럽게 작업하는 것이 아니다. 이중섭이 은박지에 꽃게라도 그리지 않았다면 그는 죽었을 것이다. 가끔 작가가 고통스럽게 작업한다는 일반적인 통념에 편승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그건 빵을 위해 고통을 위장하는 양아치 근성이다. 나는 그런 태도를 용납하지 못한다. 초기 작업은 한국에서는 하나도 안 팔렸다. 한국에서 관계들을 생각하면서 작업했으면 이렇게 나가지 못했다.
나의 모든 것은 대화였다. 대화의 본질은 새로움이다. 새로움은 바로 손대기에서 시작한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는 수행과정에서 나는 사물과, 세계와 대화하는 방법을 꾸준히 연마했다. ‘장미의 열반’이라는 작업을 할 때였다. 17일 동안 장미가 말라가는 과정을 모두 촬영한 후에 마른 장미를 태우는 순간, 상상하지 못한 감미로운 향기를 맡았다. 그것은 살아 있는 장미에서는 나지 않는 강렬한 향기였다. 장미에 관한 상식적인 선에서 멈추었던 사유를 다시 깨어나게 했다. 표피만 보고 무언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때 나는 내가 손대지 않고, 만지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의 모든 일은 대화이고 여기서 부가적으로 나오는 것이 작품이다.
캔버스에 남겨진 흔적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동의 크기를 확인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좋아서 한 것이라면 이제는 타인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예술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히로시마에, 아우슈비츠에 캔버스를 세우는 것으로 어떻게 인류를 치유할 수 있나.
“상처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원인 제거의 가장 좋은 방법은 상처를 불러내어 상처와 대화하는 것이다. 좋은 말로 대화지만,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투쟁을 하지 않으면 소멸되지 않는다. 대화를 통해 관조의 경계에 도달해야 한다. 대화 속에서 자신을 극한의 한계까지 밀고 가면 어느 순간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순간일 수도 있지만, 하루 혹은 한 달, 일 년, 이 년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 몰입의 과정을 지나야 비로소 해체의 순간이 온다. 해체는 새로움이고, 과거의 상처 혹은 기존의 관념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히로시마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세웠던 캔버스가 어떻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나 스스로도 반복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상식적인 의문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가치가 있다. 그곳에 서 있던 캔버스는 우리의 기억과 성찰의 매개체가 될 것이다. 이런 간단한 설명이 붙을 것이다. ‘이 캔버스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철조망 안 잔디밭에 2년 동안 서 있었다. 나는 하얀 캔버스로 바람과 비와 눈과 시간의 그림자를 닦고 싶다’는.”

10 on_AIR Modigliani 016 11 on-AIR the series Sex 030 12 on-AIR the series Monologue of Ice 113 13 on-AIR EIGHTHOURS New York 110-7

최고의 美는 살코기 발라내며 칼날 세우는 ‘백정의 미학’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결국 아름답기 위해 사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시작과 끝이다. 아타는 살코기를 발라 내면서 칼의 날을 세우는 ‘백정의 미학’을 최고의 미로 본다. 나의 여정은 백정의 미학을 찾기 위한 긴 과정이었다. 지나치고, 넘치지 않으면 절대 중용의 맛을 알 수 없음을 일찍 체험했기에 자신의 한계를 긋지 않고 끝까지 자신을 투쟁시켜 온 과정들이다. 어떤 한계치까지 간다는 것은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을 대면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 이것과 저것을 차별하지 않는 경계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요하고 평온하다. 그런 과정이 작품에 담겼을 것이고, 그게 아름다움으로 보였을 것이다.”
-캔버스를 설치한 44곳의 장소를 고르는 기준이 있나.
“모든 자연이나 사회나 공간은 나름의 사연과 역사가 있다. 한 장소에 부과된 의미를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 다른 각도에서 한번 보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2007년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정신적인 리더인 인디언 할머니를 만나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감동적인 만남이었다. 그곳에 캔버스를 세워보니 그들의 영혼이 맑은 이유를 알겠더라. 이 작업은 이미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부분을 복기해 나가면서 인간의 역사, 나 개인의 역사를 힐링해 가는 과정이다.”
-캔버스가 세워지는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어려움은 없었나.
“다들 재미있어 하고 좋아했다. 중국 허난성에서는 노자사상연구회장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동양사상을 캔버스에 묻혀 갈 것인지 설득해 보라’고 했다. 유엔 중국대표부에서 마련해준 자리인데 성주, 경찰 총장 등 지방 유지들이 모두 모여 있는 가운데 냅킨에 고량주를 묻혀서 코앞에서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더니 이해를 하더라. 물론 허락이 쉽지 않은 곳도 있었다. 양구에서 포 작업을 할 때도 안전상의 이유로 허락을 받는 데만 3년이 걸렸다. 아우슈비츠는 4년 동안 허가가 나지 않아서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최근에는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캔버스를 땅에 묻었던 홍천군도 적극적으로 요청해온 곳이다. 최근에는 외국에서도 연락이 온다. 휴스턴의 한 부호는 실크로드를 따라 베이징~파리 사이 한 달간의 자동차 랠리에서 1920년대 전설적인 올드카에 캔버스를 부착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 오대양을 운항하는 배에 캔버스를 설치하자는 선박회사 오너도 있다. 점점 재미있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진행은.
“전체 1/3은 완성된 것 같다. 올 상반기 중에는 히말라야, 아프리카 지역에 4곳과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파리,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에 설치하고자 한다. 하반기에는 안데스 산맥, 예루살렘, 팔레스타인의 정치분쟁 지역에 설치하고 싶다. 기회가 되면 북한에도 설치할 것이다. 사실 어려운 지역만 남아 있는 셈이다. 앞으로도 계속 더 세워나갈 것이고, 자리 잡으면 전세계 모든 도시마다 하나씩 설치해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우주 셔틀에도 설치하고 싶다. 그리고 중간에 미술관 전시도 기획 중이다.
인달라를 했을 때도 ‘앞으로 무슨 작업을 더 이어갈 수 있겠느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드로잉 오브 네이처’ 다음엔 무엇을 할지 또 궁금해들 한다. 그러나 나는 걱정이 없다. 나는 여전히 백정의 미학 속에 있다. 현재에 몰입하고, 언젠가 이 프로젝트가 해체되면 자연스럽게 나는 다른 공간에 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치를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