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참피언 운명 최현미(崔賢美, 1990년 11월 7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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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5. 14.

 

최현미(崔賢美, 1990년 11월 7일 ~ )는 대한민국의 여자 프로 권투 선수이다.

1990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2001년 권투에 입문하여 김철주사범대학 체육관에서 활동했다. 2004년 탈북 후 동남아시아를 거쳐 7월에 서울에 들어온 뒤, 장정구의 지도를 받았다. 2007년 전국여자아마복싱대회 60kg급에서 우승하는 등 아마추어에서 두각을 보였으나, 출전을 목표로 하던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 여자 권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자 아마추어를 포기하고 프로로 전향했다.

2008년 WBA 여자 페더급 챔피언이 되었고, 총 7차례 가진 방어전에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MBC 무한도전에서 2009년 11월에 열린 덴쿠 쓰바사와의 2차 방어전 경기를 다루기도 했다.
2013년 WBA 여자 Super Featherweight로 체급을 올려 챔피언에 도전, 챔피언 벨트를 획득했다.

 



생애
평양에서 태어났다. 북한에서 무역업에 종사하던 아버지 덕분에 북한 기준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원래는 운동선수가 아니었고 아코디언을 배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전혀 자신이 운동에 소질이 있는 것을 모르고 살던 것은 아니고, 원래부터 운동에 관심이 컸지만 부모의 의지로 예능 쪽을 배우고 있었다. 이렇게 생활하다 남다른 피지컬을 눈여겨 본 김철주사범대학 총감독의 눈에 띄어 복싱 선수로 뛰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부모의 반대가 있어 아코디언을 가지고 다니면서 체육관에서 몰래 운동을 했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고, 처음에는 강한 반대가 있었으나 코치가 들고 온 스파링 결과도 있고해서 올림픽 금메달을 딸 자신이 있으면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본격적으로 복싱에 매진하게 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그 즈음 최현미에게 축구를 권유해온 감독도 있었는데, 이때 올림픽 최현미는 선수촌을 방문했다가 얼떨결에 국가대표 복서와 스파링을 가졌고 이걸로 북한 유소년 복싱 국가대표까지 됐었다고 한다. 여성으로서 172cm까지 자랄 만한 피지컬이 북한에 흔치는 않았을 것이니 있었을 법한 일이다.

이후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20명의 북한 선수들과 합숙을 하며 치열한 경쟁을 했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스파링을 해서 1위부터 20위까지 랭킹을 매기며 성적이 좋지 않은 선수는 퇴출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대신 잘 살아남으면 당국으로부터 월급과 쌀 배급도 받았고, 여자 축구와 여자 복싱 등 여성 스포츠 인기가 상당한 북한이었기 때문에 권투에만 충분히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3년 겨울에 아버지의 치밀한 준비와 주도로 온 가족이 함께 북한을 탈출하게 된다. 당시 아버지가 보안상의 이유로 탈북 사실을 최현미에게 전혀 알리지 않고 중국 여행을 가는 것으로 포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탈북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남조선과 한국이 같은 나라인 줄 모르고 한국이라는 또 다른 나라에 간다니 기대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아무튼 탈출 후 중국을 거쳐 베트남의 한 숙박시설에서 오랜 기간 머물었는데, 혹시 모르니 방도 다 따로따로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상태로 몇 개월을 버텼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국정원이 유복한 집안을 이끌던 아버지의 탈북 동기를 의심하여 조사를 강도높게 하는 바람에 오래 걸렸다고 한다.

아버지가 최현미에게 나중에 설명한 탈출 이유는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였다고. 헌데 최현미의 집은 할아버지가 중앙당 소속이었고 아버지와 형제들도 무역업에 종사할 정도의 명문가였다. 가족이 평양에 거주하고 폐쇄적인 북한에서 무역업에 종사할 정도면 절대 보통 집안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큰아버지가 숙청을 당했다고 하니 결국 신변의 위협때문에 탈출을 기도했을 확률이 높으며 최현미 본인도 그런 식으로 회고하고 있다. 탈북 과정에서 국정원의 조사를 몇 개월이나 받았다고 하는 것도 이 부분과 부합한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중학교 1학년 때 한국으로 입국하여 당분간 평범하게 생활을 했으나, 새로 다니게 된 학교의 급우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지 않았고, 가족 부양때문에 고생하는 부모님을 보고 나니 본인이 성공하여 집안을 일으켜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추어 복싱 선수 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체육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여기서도 승승장구해 16세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지만, 학교 선배들의 군기교육과 텃세, 질투 등으로 체육고 생활을 계속하지 못하고 일반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후 생활고때문에 경기를 갖기 어렵게 되자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는 일명 '헝그리 복서'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나서 프로로 전향하려는 생각이었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 복싱의 정식종목 도입이 취소되자 프로진출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이후 2012년 올림픽에서 여자 복싱이 생기고, 2016년 올림픽에서는 프로 선수들의 출전도 허용되면서 올림픽 도전을 다시 고려한 것으로 보이나, 출전은 하지 않았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에도 관심이 있다고 하며, 최현미의 나이를 감안하면 이게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지만, 이 대회가 언제 열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애매해진 상태다.

프로 준비과정에서는 복싱 레전드 장정구의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2008년 마침내 WBA 세계 챔피언이 되며 프로복서로 데뷔했다. 이후 방송에서 밝히길, 남한 생활 적응 과정에서 "너는 세계 챔피언이 될거다"라며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장정구를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전문 트레이너로는 이용훈 관장의 코치를 가장 많이 받았다. 최현미 선수가 탈북한 뒤로 다시 복싱을 하려고 할때 장정구가 도움을 주거나 잠시 코치를 봐준 것은 맞긴하지만 장정구는 생계를 위해 사업을하고 있었기에 계속해서 코치를 해주지 못했다. 그 후에 코치를 해준 것이 바로 후배인 이용훈 관장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복싱 혹은 그 외적인 일로도 장정구는 최현미 선수에게 도움을 주면서 은사로서의 위치는 틀림이 없었다.

최현미 본인은 이미 탈북은 오래전 일이고 탈북으로 시선을 끌기보다는 복싱선수 최현미로 인정을 받고 싶은데 자꾸만 탈북 얘기만 거론되어서 아쉽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질문이 나오면 탈북 상황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도 해주고 탈북은 물론 복싱을 시작하고 세계 챔피언으로 롱런하기까지 항상 필수적 역할을 해온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도 틈날 때마다 강조하는 걸 보면 탈북 관련 얘기를 하기 싫다기보다는 복싱 선수로서 어필할 기회를 더 가지고 싶기에 나오는 아쉬움인 듯하다.

 

https://youtu.be/pMhCYVzH1Wc

 

플레이 스타일
겉보기에는 인상적인 피지컬로 골로프킨(러시아어: Геннадий Геннадьевич Головкин)마냥 강인한 인파이팅을 펼칠 것만 같지만 실제로는 아웃복싱을 구사하며, 본인 스스로도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Floyd Joy Mayweather Jr.)에 가까운 스타일로 꼽고 있다. 그렇게 플레이 해야 롱런도 가능하고 얼굴도 덜 상한다고.. 아마추어 시절에는 상대를 대부분 KO로 눕힐 정도로 펀치력이 좋았다고는 하지만, 프로 데뷔 이후에는 평범한 여성 선수들과 비슷한 KO율을 보여주고 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르쳐온 전문 트레이너 이용훈 관장의 영향이 큰 듯하다. 이용훈 관장의 경우 세계챔피언까진 오르지 못했으나 랭킹 1위까지 올랐던 선수였는데 테크닉을 지향한 타입이었기에 본인의 타입대로 훈련을 시켰을테니 영향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자료 위키, 나무워키

 

https://youtu.be/5KE2dERJT2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