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들의 성욕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21. 5. 17.



모택동
아버지가 지정한 결혼에 반대하여 가출한 것을 제외하면 결혼은 총 3번 했다. 첫번째 부인은 스승 양창제 교수의 딸인 양카이휘(양개혜)였다. 둘은 호남 사범의 동급생이었고 아이는 3명을 낳았다. 남편의 혁명 운동 뒷바라지를 하다가 국민당군에 잡혔고, 국민당은 전향을 종용했으나 이를 거부, 총살당했다. 이 중 장남 마오안잉은 6.25 전쟁에서 전사하고 둘째 마오안칭은 2007년까지 살아남았다. 셋째 마오안룽은 양카이휘가 처형된 후 보살핌을 받지 못했는지 4살의 나이로 죽었다.
2번째 처 허쯔전(하자정)은 아직 첫번째 아내가 살아있던 때인 1928년 장시 소비에트에서 결혼했다. 여자이지만 홍군의 명사수였다고 하며, 장정도 같이 했다. 마오와의 사이에서 무려 6명의 아이들을 낳았으나, 너무 어렸던 4명은 장정 중 인근 농가에 맡겼는데 3명은 행방불명되었다. 이렇게 맡긴 아이들 중에서 리민이라는 자는 후에 천하를 통일한 아버지가 찾아내어 베이징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허쯔전과도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 1937년 허쯔전은 모스크바로 갔고, 이후 마오는 장칭과 결혼하기 위해 허쯔전과 이혼했다.
이후 심복이었던 캉성의 소개로 배우 출신 이혼녀 장칭과 결혼했다. 여기에 대해서 말이 많고 허쯔전이 모스크바에 가있는 동안 바람 피웠다는 것이 정설이다. 마오와 장칭은 1938년 결혼했고 둘은 딸 하나를 낳았다.
마오쩌둥은 호색한이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성인 여자가 아닌 10대의 소녀들을 좋아했다. 나이 든 여자들은 세상 물정에 너무 밝은 데다 순진한 맛이 없다고 멀리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일설에 의하면 유부녀를 좋아했다고도 한다. 마지막 부인 장칭도 이혼녀 출신. 마오쩌둥은 특히 교육 수준이 낮은 순박한 시골 아낙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70대 늙으막에 현지 지도할 때 눈에 든 20대 초반의 유부녀가 있었는데, 마오쩌둥은 이름을 물어본 후 수첩에 이름을 적으며 좋아했다. 이를 본 심복 왕둥싱이 그 유부녀 남편에게 이혼을 종용하고 마오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 유부녀 사이에 사생아 몇 명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하렘. 또한 마오쩌둥은 남색을 즐겼다. 여색을 즐긴 후엔 항상 양기를 보충한다며 10대 소년들을 방으로 불렀다고 한다.

리즈수이가 쓴 <모택동의 사생활>에 의하면 마오쩌둥은 평생 자신의 성기를 손수 씻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한 번은 그의 주치의인 리즈수이가 위생 문제를 거론하자 계속 여자의 몸 안에서 씻고 있으니 상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링크. 또한 마오쩌둥은 몸 자체도 잘 씻지 않았고, 하인들이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식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단, 이런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그가 샤워를 자주 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실제로는 당대 기준 평균 이상의 위생 관념을 지녔기 때문에 몸을 아예 씻지 않았다는 것은 후대의 과장 섞인 이야기다.
마오쩌둥은 성적으로도 왕성했는데 불륜을 저지르기도 했고, 성병의 일종인 트리코모나스 질염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마오쩌둥과 성관계를 맺은 여자들은 모두 그 병에 걸렸다. 그러나 마오의 여자들은 그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당시 중국에서 살아있는 신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숭배되던 마오쩌둥과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이나 자랑거리였던 것이다. 링크. 오히려 마오의 성병에 함께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일종의 훈장처럼 여겨졌다고 하니 안습. 마오에게 여자를 조달해 소개시켜주는 채홍사 역할은 그의 심복인 예쯔롱과 왕둥싱이 맡았다. 하지만 마오의 방탕하고 지저분한 성생활에 그들도 가끔씩 "우리가 이런 더러운 짓만 해야 하나?"라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왕둥싱은 마오 사후에 4인방을 실각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마오쩌둥의 주치의 리즈수이에 의하면 마오쩌둥은 죽는 순간까지 트리코모나스를 가지고 갔다고 한다. 이런 마오쩌둥의 성 생활은 1970년대 이후로 파킨슨병 혹은 루게릭병으로 추정되는 질환에 시달리면서 끝나게 되었다.

스탈린
러시아 NTV는 26일 시베리아 노보쿠즈네츠크에 스탈린의 손자인 유리 다브이도프(52)가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탈린은 혁명 활동을 하다 체포돼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때 14세 소녀 리디아 페렐리지나와 관계를 맺고 아들 알렉산드르를 얻었다. 아버지 덕을 보지 못한 채 탄광촌에서 지낸 알렉산드르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에 참전했으며 87년 평범한 삶을 마쳤다.그의 아들 다브이도프씨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어렸을 때 들었지만 별 관심도 없었으며 특별히 주목받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스탈린은 이밖에도 사생아가 있었으며 집권 후 권력을 이용해 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공간부들
중공고관들의 불륜 행태다. 그것도 상대가 중국 최대 규모의 국영방송인 CCTV 아나운서들이라니 더욱 놀랄 일. 내연녀로 지목된 아나운서들뿐만 아니라 다른 아나운서들까지도 모조리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CCTV 아나운서들은 상반신으로는 중국인들을 기만하고, 하반신으로는 공산당 간부들을 즐겁게 한다”라고 비아냥대고 있다. 
2013년 12월 체포돼 부패 혐의를 조사받고 당적이 박탈된 저우융캉의 경우, ‘비리로 축적한 재산이 1000억 위안(약 17조 원)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보다도 ‘지금까지 그가 범한 여자들이 400명에 달한다’는 의혹이 더욱 관심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백계왕(100마리 암탉을 거느린 왕)’이라고 불리는 저우융캉은 카사노바도 울고 갈 정도로 여성편력이 심했다. 대부분 자신의 권력과 돈을 이용해서 여자를 ‘선물 받는’ 식으로 불륜을 저질렀으며, 이 가운데는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여대생, 여배우 등 다양한 여성들이 있었다. 홍콩의 <핑궈일보>는 지금까지 밝혀진 저우융캉의 내연녀가 최소 28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는가 하면, 복수의 중국 언론들은 그가 베이징에 6곳의 ‘행궁’을 마련해 이곳에서 여성들을 거느리고 파티를 즐겼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번 감찰 조사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그가 외도를 저지르기 시작했던 것은 이미 1985년 랴오닝성 판진시 시장으로 재직할 때부터였다. 당시 여러 차례에 걸쳐 수많은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그는 1998년에는 선량, 다롄, 우한, 난징, 청두, 창사, 톈진 등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27명의 여성들을 범하기도 했다. 
성상납 대가로 그가 여성들에게 제공했던 것은 대부분 일자리나 승진이었다. 그와 하룻밤을 보낸 여성들은 대부분 능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과분한 자리에 앉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서 성상납을 받기 시작했던 것은 1999년 쓰촨성 당서기 재직 시절부터였다. 지방 관리들로부터 여성들을 제공 받았던 그는 그것도 모자라 호텔의 여종업원과 부하 여직원들을 상습적으로 강간하기도 했으며, 사무실로 매춘부를 불러 성관계를 맺는 행태도 서슴치 않았다. 
그의 주색잡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국의 일부 매체는 심지어 그가 공산당 동료 및 부하 관리들의 아내와 스와핑 행각을 벌였다고 보도했는가 하면, 이 가운데는 보시라이의 아내인 구카이라이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홍콩의 <청밍 매거진>은 그가 문란한 성생활로 인해 2005년부터 성병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저우융캉이 CCTV 아나운서들을 첩으로 둘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측근이자 친분이 깊었던 리둥성 CCTV 부사장 덕분이었다. 특히 예쁘고 젊은 아나운서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리둥성은 아나운서들과 고위 관리들로 이뤄진 사조직을 운영했으며, 이 사조직을 통해 공산당 고위 관리들에게 아나운서들을 성상납해왔다. 리둥성이 저우융캉에게 뇌물을 제공한 대가로 받은 것은 ‘공직’이었다. 저우융캉에게 주기적으로 여자 아나운서를 ‘선물’했던 그는 그 대가로 저우융캉이 중앙정법위원회 서기로 재직할 당시 공안부 부부장까지 오를 수 있었다. ‘리둥성은 중난하이의 ‘포주’이고, CCTV 아나운서는 ‘후궁’이다’란 말이 돌았던 것도 이런 까닭에서였다. 

저우융캉이 28세 연하의 두 번째 부인인 CCTV 아나운서 출신의 자샤오예(44)를 만난 것도 리둥성을 통해서였다. 장쩌민 전 주석의 부인 왕예핑의 외질녀인 자샤오예는 빼어난 미모로 CCTV 수습기자 시절부터 리둥성의 눈에 띄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항간에서는 리둥성이 원래는 자신의 내연녀였던 자샤오예를 저우융캉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선물했다’는 설도 있다. 

1999년 저우융캉을 처음 만났던 자샤오예는 얼마 지나지 않아 CCTV 경제채널의 편집인으로 승진했으며, 2000년 저우융캉의 부인인 왕수화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6개월 후 저우융캉과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저우융캉의 나이는 58세, 자샤오예는 31세였다. 

중공 공산당 고위급 간부들의 부패 규모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부터는 은밀한 사생활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다름 아닌 공산당 부패 고관들과 중국 국영방송인 중국중앙TV(CCTV) 아나운서들 간의 불륜 행태가 그것이다. 이번 스캔들에 연루된 아나운서들은 줄잡아 수십 명. 더욱이 모두 중국에서 꽤나 유명하고 인기 있는 아나운서들이어서 파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부패 혐의로 체포된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을 비롯해 링지화 전 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등 ‘신4인방’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도 바로 미녀 아나운서를 첩으로 두었다는 점이었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첩을 거느릴 정도로 상상을 뛰어넘는 공산당 간부들의 축첩 행태를 들여다봤다.

‘백계왕’ 저우융캉이 CCTV 아나운서들을 첩으로 둘 수 있었던 건 그의 측근이자 친분이 깊었던 리둥성(작은 사진) CCTV 부사장 덕분이었다.

13억중국인들이 부패 혐의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공산당 핵심 간부들의 통 큰 부패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진 것도 잠시. 최근 이보다 더 중국인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부패 고관들의 불륜 행태다. 그것도 상대가 중국 최대 규모의 국영방송인 CCTV 아나운서들이라니 더욱 놀랄 일. 내연녀로 지목된 아나운서들뿐만 아니라 다른 아나운서들까지도 모조리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CCTV 아나운서들은 상반신으로는 중국인들을 기만하고, 하반신으로는 공산당 간부들을 즐겁게 한다”라고 비아냥대고 있다. 

2013년 12월 체포돼 부패 혐의를 조사받고 당적이 박탈된 저우융캉의 경우, ‘비리로 축적한 재산이 1000억 위안(약 17조 원)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보다도 ‘지금까지 그가 범한 여자들이 400명에 달한다’는 의혹이 더욱 관심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백계왕(100마리 암탉을 거느린 왕)’이라고 불리는 저우융캉은 카사노바도 울고 갈 정도로 여성편력이 심했다. 대부분 자신의 권력과 돈을 이용해서 여자를 ‘선물 받는’ 식으로 불륜을 저질렀으며, 이 가운데는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여대생, 여배우 등 다양한 여성들이 있었다. 홍콩의 <핑궈일보>는 지금까지 밝혀진 저우융캉의 내연녀가 최소 28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는가 하면, 복수의 중국 언론들은 그가 베이징에 6곳의 ‘행궁’을 마련해 이곳에서 여성들을 거느리고 파티를 즐겼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번 감찰 조사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그가 외도를 저지르기 시작했던 것은 이미 1985년 랴오닝성 판진시 시장으로 재직할 때부터였다. 당시 여러 차례에 걸쳐 수많은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그는 1998년에는 선량, 다롄, 우한, 난징, 청두, 창사, 톈진 등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27명의 여성들을 범하기도 했다. 

성상납 대가로 그가 여성들에게 제공했던 것은 대부분 일자리나 승진이었다. 그와 하룻밤을 보낸 여성들은 대부분 능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과분한 자리에 앉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서 성상납을 받기 시작했던 것은 1999년 쓰촨성 당서기 재직 시절부터였다. 지방 관리들로부터 여성들을 제공 받았던 그는 그것도 모자라 호텔의 여종업원과 부하 여직원들을 상습적으로 강간하기도 했으며, 사무실로 매춘부를 불러 성관계를 맺는 행태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주색잡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국의 일부 매체는 심지어 그가 공산당 동료 및 부하 관리들의 아내와 스와핑 행각을 벌였다고 보도했는가 하면, 이 가운데는 보시라이의 아내인 구카이라이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홍콩의 <청밍 매거진>은 그가 문란한 성생활로 인해 2005년부터 성병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저우융캉이 CCTV 아나운서들을 첩으로 둘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측근이자 친분이 깊었던 리둥성 CCTV 부사장 덕분이었다. 특히 예쁘고 젊은 아나운서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리둥성은 아나운서들과 고위 관리들로 이뤄진 사조직을 운영했으며, 이 사조직을 통해 공산당 고위 관리들에게 아나운서들을 성상납해왔다. 리둥성이 저우융캉에게 뇌물을 제공한 대가로 받은 것은 ‘공직’이었다. 저우융캉에게 주기적으로 여자 아나운서를 ‘선물’했던 그는 그 대가로 저우융캉이 중앙정법위원회 서기로 재직할 당시 공안부 부부장까지 오를 수 있었다. ‘리둥성은 중난하이의 ‘포주’이고, CCTV 아나운서는 ‘후궁’이다’란 말이 돌았던 것도 이런 까닭에서였다. 

저우융캉이 28세 연하의 두 번째 부인인 CCTV 아나운서 출신의 자샤오예(44)를 만난 것도 리둥성을 통해서였다. 장쩌민 전 주석의 부인 왕예핑의 외질녀인 자샤오예는 빼어난 미모로 CCTV 수습기자 시절부터 리둥성의 눈에 띄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항간에서는 리둥성이 원래는 자신의 내연녀였던 자샤오예를 저우융캉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선물했다’는 설도 있다. 

1999년 저우융캉을 처음 만났던 자샤오예는 얼마 지나지 않아 CCTV 경제채널의 편집인으로 승진했으며, 2000년 저우융캉의 부인인 왕수화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6개월 후 저우융캉과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저우융캉의 나이는 58세, 자샤오예는 31세였다. 

저우융캉의 아내가 된 후 CCTV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자샤오예에 대해서는 현재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인터넷에서도 그녀에 대한 사진이나 정보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 이와 관련, 홍콩의 <애플 데일리>는 저우융캉이 권력을 이용해서 인터넷에서 자샤오예에 대한 모든 정보를 삭제하도록 지시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저우융캉의 또 다른 내연녀로 거론되고 있는 CCTV 아나운서로는 예잉춘(40)과 선빙(38)이 있다. 둘 모두 미모를 겸비한 스타급 아나운서들로, 역시 리둥성의 소개로 저우융캉을 만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1년 생방송 뉴스 시간에 브래지어 끈이 흘러내리는 방송 사고로 더욱 유명했던 예잉춘은 언제부턴가 갑자기 중국어 국제방송인 CCTV-4 채널의 아나운서로 초고속 승진했는가 하면, 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직에 오르면서 공직에도 진출했다. 

그녀의 이런 승진의 배후에는 저우융캉이 있었으며, 이는 지난 2013년 11월, 베이징의 한 쇼핑몰 지하 주차장에서 저우융캉과 성관계를 맺다가 발각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정설로 굳어진 상태다. 

CCTV에서 경제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던 선빙은 2012년 CCTV를 퇴사한 후 중앙정법위원회 정보센터 부주임으로 승진하면서 화제가 됐었다. 하지만 그녀의 승진에는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당시 중앙정법위 서기가 바로 저우융캉이었던 것이다. 

또한 선빙은 부동산 개발업자인 남편의 사업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저우융캉에게 도움을 청했으며, 그때마다 저우융캉은 지역의 공산당 간부들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해주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예잉춘과 선빙은 모두 행방이 묘연한 상태며, 당국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전 중국군 예술단 소속 가수인 탕찬(39)의 경우에는 공산당 간부들의 ‘공동의 정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탕찬을 공유한 간부들로는 저우융캉, 보시라이,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왕리쥔 전 충칭시 공안국 국장, 리둥성 등이 있었으며, 심지어 저우융캉의 비서였던 위강과는 동거까지 했다는 소문도 파다한 상태다. 

하지만 탕찬은 2011년부터 실종 상태며, 현재 간첩죄를 선고 받고 후베이성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죄목은 고위 간부들과 잠자리를 가지면서 군사 및 경제 정보를 수집한 후 외국 정보기관에 팔아넘긴 혐의였다. 

이밖에 저우융캉의 첩으로 지목된 CCTV 아나운서들로는 리샤오멍(41), 어우양샤단(37), 라오춘옌(42) 등이 있지만 모두 관계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2008년 쓰촨성 지진 보도 당시 눈물을 흘리면서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리샤오멍은 온갖 소문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방송을 계속하면서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저우융캉 못지않게 호색한이었던 보시라이의 경우에는 첩이 100명에 달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전 CCTV 아나운서였던 장펑(44)과 다롄 TV 아나운서 출신인 장웨이제 등과 불륜을 저질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상태. 하지만 보시라이의 섹스 스캔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여배우 장쯔이와의 불륜설이었다.

지난 2012년 처음 불거졌던 이 소문은 사실 여부를 떠나 빠른 속도로 확산됐으며, 당시 이 소문으로 인해 장쯔이 측은 75만 달러(약 8억 원) 상당의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보쉰>에 따르면 장쯔이는 보시라이를 비롯한 공산당 간부들에게 성접대를 하면서 1000만 위안(약 17억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장쯔이는 <보쉰>을 비롯한 해당 언론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링지화 역시 여러 명의 CCTV 아나운서들을 첩으로 두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이름이 거론된 아나운서로는 펑줘(40)가 있다. 1998년 CCTV 기자로 입사했던 펑줘는 2000년 시사뉴스부로 자리를 옮기더니 2008년에는 부주임으로 승진하는 등 초고속으로 고위직에 올랐다. 또한 평사원 시절에도 개인 분장실을 제공받는 등 CCTV 측으로부터 일찌감치 ‘특별대우’를 받아왔었다. 

이 모든 것이 링지화의 입김 때문이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2005년부터 CCTV 내부에서는 펑줘가 링지화의 내연녀란 소문이 돌기 시작했으며, CCTV 직원들은 당시 공산당 중앙판공주임이었던 링지화가 후진타오 주석과 관련된 보도 때문에 CCTV 사무실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던 중 펑줘와 눈이 맞았던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펑줘는 지난해 9월부터 행방불명이 된 상태며, 현재 감찰당국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김일성
김일성은 공식적으로 세 명의 부인을 뒀다. 첫 번째 부인은 만주 빨치산 시절에 만나 결혼한 김 주석의 첫사랑 한성희다. 16세의 김 주석은 비밀독서클럽을 만들고 한성희를 가입시켜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러다 빨치산 유격대 대장이 된 25세 때 한성희를 빨치산 활동에 끌어들이고 첫 번째 결혼을 했다. 그러나 일본경찰의 습격으로 한성희가 포로로 끌려가면서 2년 만에 첫 번째 결혼 생활이 끝난다. 한성희와 헤어진 김 주석은 두 번째 부인 김정숙과 결혼했다. 김정숙과는 1936년 항일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김정숙의 소생이 김정일과 김경희다. 김정숙은 1949년 넷째를 출산하다가 32세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김정숙은 사망 후 아들 김정일에 의해 장군으로 추존돼 ‘백두여장군’이란 호칭으로 불리게 됐다.
두 번째 부인 김정숙이 사망하자 김일성은 한국전쟁 중 자신의 비서였던 김성애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김성애는 김일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먼저 임신 한 뒤 비밀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의 결혼은 1958년 가족사진을 공개하는 형식으로 알려지게 됐다. 두 사람의 관계는 김정숙이 살아 있던 시절부터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 사람의 불륜을 알게 된 김정숙이 출산 당시 김일성이 보낸 의사의 진료를 거부했고, 그로 인한 난산으로 고통 받다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김정일은 김성애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의 집권 이후 김성애는 권력에서 밀려났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알려진 3명의 부인 외에도 김일성에게는 두 명의 내연녀가 있었다. 첫 번째 내연녀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아 흔히 ‘제갈씨’로 불린다. 제갈씨는 김일성의 주석궁 안마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녀는 김일성과의 사이에서 아들 김현을 두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녀의 아들이자 김일성의 사생아 김현은 지난 2001년 김정일에 의해 숙청 당했다.
김일성의 두 번째 내연녀는 무용수 출신의 미녀 김송죽이다. 김송죽은 지난 1992년 스웨덴에서 김일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김백연과 함께 쇼핑을 즐기다가 외신 언론에 포착돼 알려졌다.

김정일
김정일을 위한 수십 명의 여성들로 구성된 기쁨조가 항상 대기하고 있어 김정일이 몇 명과 사랑을 속삭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김정일의 자녀도 마찬가지다. 현재 3남4녀로 알려졌지만 사생아까지 포함하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정일의 첫 번째 부인은 배우 성혜림이다. 김정일과의 사랑을 키워나갈 무렵 성혜림은 아이까지 있는 유부녀였다. 그러나 그녀의 결혼사실은 김정일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김일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1969년부터 성혜림과의 비밀 동거에 들어갔다. 두 사람 사이에서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태어났지만 김일성은 성혜림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결국 성혜림은 김정일의 사랑이 식은 후 북한 밖으로 내쫓겼다. 그리고 2002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김정일의 두 번째 부인 김영숙은 김일성 집무실 전화교환수 출신으로 김일성이 직접 며느리로 선택한 사람이다. 공식적으로는 김정일의 유일한 아내다. 그러나 김정일은 아버지의 강요로 인한 결혼을 처음부터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인지 김영숙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김정일의 세 번째 부인 고영희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교포 출신이며 1970년대 예술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했다. 그러다 공연조로 뽑혀 연회에 참석했다가 김정일의 눈에 띄어 연인사이로 발전했다. 이후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했고 그때 태어난 아들이 바로 김정은이다. 김정일의 사랑을 받던 고영희는 유방암으로 치료를 받다가 2004년 사망했다.
네 번째 부인 김옥은 평양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음악단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김정일의 비밀 파티에서 인연이 시작됐고 그 뒤 김옥은 김정일의 최측근이 됐다. 두 사람의 관계는 고영희가 살아 있을 무렵부터 시작됐지만 두 여자는 친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고영희가 죽기 전 김옥에게 자식들을 부탁할 정도였다. 그 뒤 김옥은 김정일이 죽는 순간까지 그 옆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1966년 결혼식을 올린 첫 번째 부인 홍일천이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김정은
김정은의 옆자리는 퍼스트레이드 리설주가 지키고 있다. 모란봉중창단 단원으로 활동했던 리설주는 2011년부터 김정은과 교제를 시작했고 김정일 사후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2012년 7월 공식행사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면서 김정은의 정식 부인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예술단원 9명이 공개처형된 이유가 리설주를 둘러싼 성추문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그의 숙청 의혹이 제기됐지만 다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리설주와의 결혼 전 김정은에게 3명의 여자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정은의 첫 번째 여자는 가수 현송월이다. 김정은과 현송월은 2000년 초반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당시 현송월에게 애인이 있었지만 김정은이 끈질기게 구애를 해 결국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요구로 두 사람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 헤어졌을뿐 현송월이 결혼한 후에도 두 사람의 만남은 계속됐다. 현송월은 지난해 총살 당했다고 알려졌지만 지난 5월 공식석상에 대좌 군복을 입고 나타나면서 소문을 무마시켰다.

김정은의 두 번째 여자는 이여심이다. 이여심은 리설주와 같은 은하수관현악단 소속 피아니스트다. 국내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여심과의 결혼을 원했지만 김정일의 강력한 반대로 결국 리설주와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두 사람의 만남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의 세 번째 여자는 은하수관혁악단의 배우 서은향이다. 김정은은 서은향의 외모에 빠졌지만 결혼상대로는 리설주를 선택했다.
그리고 김정은의 여성편력은 현재진행 중이다.


한국 진보좌파들
 요즘 사회적으로 ‘미투 운동’이 확산 되면서, 사회 유력 인사들의 난잡하고 문란한 성범죄와 엽기적인 성추문 문제들이 들끓고 있다. 그런데, 그와 관련된 인사들 거의 모두가 ‘진보’ 또는 ‘진보진영’ 이라는 간판을 건 운동권 좌파 세력들로만 집중되는데, 이런 현상에 대해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대체 왜 그럴까? ‘진보진영’ 인사들이 왜 그런 성적 일탈에 빠져들까?

 80년대 학번이라면, 대부분 들어 보았을 만한 흔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소위 ‘운동권’ 내지는 ‘민주화세력’ 이라는 이름으로 자칭하거나 불리우는 주사파 진보세력, 즉 김일성 주체사상파 운동권 학생들의 ‘남녀혼숙’ 내지는 ‘문란한 성생활’ 이야기, 그러니까 “소위 의식화 교육을 하면서 운동권 남녀가 합숙교육을 하고, 남녀가 한방에서 나체 상태로 교육하고 돌아가면서 함께 잠까지 잔다” 라는 등의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당시 “운동권 좌파” 선배들이 신입 여학생을 사상교육 및 세뇌 시키고 ‘혁명전사’ 간에는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둥의 이유를 대면서 운동권 후배 여학생들을 운동권 선배들이 돌려가며....성적으로 어쩌고 하는 이야기들이 당시에는 많은 학생들 간에 술안주로 쓰이던 흔한 ‘얘깃거리’였다.

직접 목격 했다거나 들었다는 그런 이야기들이 몇몇 건만 있는 게 아니라 아주 흔히 들리던 이야기들이고, 한번 ‘운동권 진보’이면 평생 그 물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힘든 이유도 그런 이유라고 하는데, 물론, 필자가 그런 현장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아니 땐 굴뚝에 그렇게 시커먼 먼지가 곳곳에서 솟아오르기는 힘들 것이다.

 이에 대해서 과거 대공분야 최일선에서 근무했던 전직 수사관 우헌근 박사가 증언을 하기도 했었는데, 우 박사는 당시 수사 내용을 말하면서, 의식화 교육 과정의 남녀혼숙 문제 등 쉽게 꺼내기 어려운 얘기들을 언급했다.

그의 증언을 요약하면, “의식화 된 운동권 세력은, 소위 의식화 교육(공산주의 사상교육, 김일성 주체사상 교육)을 하면서 남녀가 한 방에서 벌거벗은 상태로 교육하고, 돌아가면서 함께 잠까지 잔다. 전문 사진사를 고용해서 현장에 잠입해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해 명백한 증거 자료를 갖고 있다.” 라는 것이다.

 그들 운동권 진보세력이 그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으로 의식화 교육을 하는 이유는, 노동현장에 위장취업을 하고, 노동자들에게 의식화 교육을 주입하기 위해 스스로의 수치나 부끄러움을 해소하기 위함이고, 여럿이 함께 자거나 돌려가면서 행위(?)를 하는 이유도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라며, 그것이 운동권 주사파의 기본원리 라고 부언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교육 장소를 제공하고 또 도피를 위한 은신처를 제공한 ‘도시산업선교회’, ‘천주교 평신도 협의회’ 등의 단체를 거명하고는, 당시 자신이 수사하고 검거했던 전,현직 유명 정치인과 유명 연예인 가족의 본명을 대기도 했다.

 이는 과거 필자가 들어온 이야기들과 일치하는 증언인데, 필자가 들어온 바를 첨언하면, 그들 운동권 세력은 번갈아 성적 관계는 갖지만 자기들 ‘혁명전사’들끼리의 연애는 절대 금지 하는 것으로 들어왔다. 혁명과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훗날 심경의 변화가 있더라도 쉽게 전향 하거나 그들 종북세력을 등질 수 없는 이유도 그런 성적 일탈의 과거가 족쇄가 되기 때문이라 들어왔다.

'운동권 진보진영'의 이런 행태가 그들 '진보간판 진영' 모두의 문제인지 일부의 문제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운동권 인사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속된 말로 ‘대가 세고 성격이 강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 진영의 여성들 마저도 대부분 일반 사람들 같이 유순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남녀 동지 간에 돌려가면서 행했던 문란한 성적 일탈 등을 통해 부끄러운 심리까지 없애고 혁명 전사로 태어나게 만드는 그들의 이념사상적 세뇌교육의 배경이 있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들 소위 ‘진보’ 또는 ‘진보진영’이라 불리우는 소위 ‘운동권 진보세력’은 크게 2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PD계열(민중민주주의 계열, 마르크스 레닌주의자), 즉 '오리지널 공산주의자'이고, 둘째는 NL계열(민족해방 계열, 김일성 주체사상파) 즉 '김일성식 공산주의자'다.

 이 두 세력의 공통점은 ‘공산주의자’ 라는 것인데, 이 둘 중에서 현재 한국의 ‘진보진영’의 주도 세력은 NL계열의 ‘김일성 주체사상파’ 종북세력이다. 운동권 진보진영은 자신들이 공산주의자 임을 전략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진보’라는 간판을 건 운동권 세력의 거의 모두는 '공산주의자'라는 공통점이 있고, 이들이 바로 요즘의 잇따른 성범죄와 문란한 성추문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진보좌파 진영의 잇따른 성범죄와 성추문의 원인은 바로 ‘진보간판 좌파’ 세력의 비뚫어진 사상과 철학에 기인한 ‘진보적(?) 성의식’ 때문이다. 사람의 행동을 유발 시키는 동기는 바로 인간의 사상과 철학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성범죄와 성적 일탈 행위에 대해 범죄라는 의식을 갖지 못하는 의식 구조로 이념사상 교육되어 그리 살아온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공산주의와 김일성 주체사상이 정치사기꾼들의 ‘사기극’이라는 말은 앞서 누차 밝혔으므로 추가 언급을 생략한다. 그렇다면, 왜 운동권 좌파들이 그런 비뚫어진 성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툭하면 그런 성적 범죄로까지 이어질까? 필자의 사견으로는, 그것은 그들이 따르던 주군과 닮아 가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진보진영' 또는 ‘진보세력’이라 자칭하는 운동권 인사가 김일성 김정일을 비판하거나, 공산주의를 비판하거나, 중국을 비판하거나, 김일성 주체사상을 비판하거나, 북한을 ‘주적’이라 부르는 것을 당신은 본 적 없을 것이다. 누구도 본 적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그들은 일종의 종교 광신도로서, 그들 진보진영 인사들이 김일성이나 김정일이나 공산주의를 비판 한다는 것은, 기독교인이 예수를 비판하거나, 불교인이 석가모니를 비판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그들 '진보진영'의 금기 사항이다.

그들 운동권 좌파 진보세력이 철저하게 '종김종중' 성향을 띠는 것은, 그들이 공산주의(마르크스 레닌주의, 김일성식 공산주의)를 숭앙하는 ‘이념사상적 노예상태’ 때문이다. 그들 운동권 진보세력은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이름을 절대 함부로 부르지 못했고, 반드시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이라 경칭을 붙여 불러 왔고, 그들 북한 왕조를 '주적'이라고 절대 부르지 못함은 이미 흔히 알려진 사실이니, 굳이 부연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그들은 그들이 따르고 존경해 오던 김일성과 김정일을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곳곳에 수십명 내지 백여명 씩의 기쁨조 집단을 자신들의 성노예로 두고 밤마다 10대 기쁨조 미녀들을 데리고 성적 환락에 빠져 살던 이야기들과 탈북자들의 그런 증언들은 이미 흔한 이야기들이니, 그들이 기쁨조 미녀들과 함께 성적 환락에 빠져 살던 점에 비추어, 남한의 운동권 수구좌파 세력이 김일성 주체사상의 맹신자로서, 자신들의 태양인 김일성과 김정일을 따라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북한 김씨 왕조의 성노예인 기쁨조들은, '처녀 검사'를 받고 선발 되어 김씨 왕조의 수청을 드는 온갖 성적 서비스 교육을 받은 후, 몸으로 김씨 왕조의 수청을 들면서도 그것을 부당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그녀들은 김씨 왕조의 수청을 든 댓가로 받는 ‘김일성시계’를 ‘가보’로 간직 하는데, 이는 지배자를 따르고 존경하도록 이미 세뇌교육 되어 완전한 정신적인 노예로 길러졌기 때문이다.

 진보간판의 ‘수구좌파’진영의 경우도 정신적으로 세뇌되어, 운동권 후배 여학생이 많은 선배들의 수청을 번갈아 들면서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그랬다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그들이 악용하는 이념사상이 한 인간을 정신적으로 세뇌 시키고 정신적으로 지배하여 자신들의 환락을 위해 타 여성을 성적으로 유린하고 악용하기까지 하는 인간의 사악한 면모를 발견 할 수 있다.

또,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에는 남한 고위층 인사들(종김세력 인사들)의 처자식이 거주하는 가족촌이 있다고 한다. 북한의 기쁨조는 김씨 왕조의 성노예로써 김씨 왕조의 성적 노리개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남한에서 방북한 유력 인사들을 포섭하는 중요 역할을 띠고 있다고 증언 하는데, 남한 고위 인사가 방북하면, 술좌석이나 그들이 묵는 호텔 등에, 기쁨조 미녀들을 투입해서, 심지어는 나체 상태로 유혹을 하게 해서, 임신을 하거나, 성관계 동영상 사진 등을 기쁨조 여성과 방북 인사가 공유하게 하는 과정을 만들어 그런 과정 속에서 '종북'할 수 밖에 없는 ‘골수 종북’ 인사들을 꾸준히 만들어 왔다고 증언 한다.

심지어, 나체 여성이 “선생님과 동침하지 못하면 저는 죽습니다” 라고 애원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하고, 한번 방북했던 종북 인사가 자꾸만 북한을 방문하는 것도 북한의 기쁨조 미녀 아내와 그 자식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남녀의 성을 이용하는 포섭 공작은 방북 남성만이 아닌 여성도 같다고 한다. 방북 여성에게는 북한의 미남 스타 배우를 붙여 준다고 하고, 방북한 어느 유명 좌파 여성에게는 모모 미남 배우를 붙여서 ‘환락’을 선물 했다고 하는 등, 탈북자들은 남한에서 방북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남,녀 유명 종북 인사들의 구체적인 실명과 단체까지 밝히면서 종북남녀 들에 대한 ‘성접대’ 사실을 폭로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종북이 아니었던 남한의 인사들이 한번 방북한 이후에는 자꾸만 김씨 왕조를 두둔하는 쪽으로 달라져서 완전 종북 성향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그런 남녀 간의 성적 수단 속에서 포섭 된 것이라 증언 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발적인 종북 간첩 진영이 갖은 방법으로 수십년간 끝없이 형성 되어 온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종북 인사들 입장에서 보면, 북한 왕조는 무너지면 큰일 나는 존재다. 만약 북한 왕조가 붕괴 되어서 자신들의 명단이 공개 되면 자신들에게는 재앙이기 때문에, 절대로 남한 주도의 통일이 되어선 안되고, 남한 주도의 통일을 막기 위해서는 북한 정권만 살리면 되는 것이다.

북한 정권만 생존 유지 시킨다면, 북한 정권이 바보가 아니므로 그들이 스스로 권력을 내어 놓고 북한이라는 상속 재산을 포기하는 통일을 할 턱이 없기 때문에, 즉 남한 주도의 통일이 절대로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북한 정권에게 갖다 바치는 대북 지원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이해구조가 형성 되는 것이다. 즉 북한 주민들이야 어찌 되건 말건, 북한 정권을 생존 시키는 것이 그들 진보간판 수구세력의 목표인 것이다.

그리고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남한 내 종북 인사들의 첫째 임무가 바로 자유 우방인 미국과 일본을 한국으로부터 떼어 놓아서 한국을 외토리로 만들어 놓아야만 적화통일이 가능해진다. 종북 인사들의 행위를 보면 철저하게 종김종중 성향을 띠고 철저하게 반미반일 성향을 띠는데, 그것은 자유우방인 미국과 일본을 몰아내야만 북한 주도의 적화통일을 할 수 있다는 북한의 대남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

진보간판의 종북세력, 그들의 관심사는 북한 주민이 아니라 오로지 북한 김씨 왕조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진보진영이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인권 말살에 대해 절대 함구하고, 오로지 북한정권 지원에만 혈안이 된 것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종김종중, 반미반일의 노선을 간직한 반통일 세력, 즉 말로만 통일을 외치는 '통일방해꾼 종북세력'이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남녀간의 성 문제는, 대남 적화전략과, 북한에서 남한 인사를 포섭하는 과정, 남한 내에서 운동권 종북 세력들 간의 결속과 충성을 강요하는 수단 등으로 철저하게 이용되어, 북한과 남한 내의 종북진영에서는 성이라는 게 정치적 수단으로서 존재 해 왔다.

 현재 진보진영(진보 간판을 건 전체주의 수구좌파 진영)의 문제가 된, 성범죄와 성추문 사태를 이와 대입 해 보면, 현재 진보진영 인사들의 성범죄와 성적 일탈 문제는 과거의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과거 운동권 시절도 그렇게 성적 일탈로 살아 왔고, 일부 방북했던 인사들도 여성을 한 인간으로서 보지 못하고 성적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그런 부류들이 많으니 그런 성적 일탈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진보라는 가짜 간판의 운동권 종북세력, 그들 집단 내에서는 그들의 성적 일탈 행위가 전혀 이상한 행동이 아닌 당연한 행위일 수도 있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운동권 남녀들 간의 성적 일탈이나 난잡한 성의식들은 나름 그들이 누리는 ‘진보’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이념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것을 ‘진보’라고 믿고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들만의 어둠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일이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로 나와서는 허용 될 수 없는 범죄행위 들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일반인들에게 그런 짓을 하는 그들의 성적 일탈 행위는 범죄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