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냥년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21. 6. 18.


생성시기는 조선, 1637년(인조 15년)에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라가무능하여 청나라에 침략당하여 병자호란 ( 丙子胡亂 ) 때 오랑캐에게 끌려갔던 여인들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이라는 뜻의 환향녀 ( 還鄕女 )라고 부르던 데서 유래되엇다고한다.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인원은 약 60만 명 정도인데, 이중 50만명이 여성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이 귀국하자 엄청난 사회 문제가 되었고 사람들은 적지에서 고생하고 귀향 이들을 따뜻하게 위로해주기는커녕 오랑캐들의 성(性) 노리개 노릇을 하다 왔다고 하여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을 뿐더러 몸을 더럽힌 계집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병자호란 이전 임진· 정유 양난에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던 여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환향녀들은 가까스로 귀국한 뒤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았는데, 무능했던 임금 선조와 인조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특히 인조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 대신 첩을 두는 것을 허용하여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다고 한다.

이 무렵 영의정 장유의 며느리도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와 시부모로부터 이혼 청구를 당했다. 처음에는 인조의 허락을 받지 못했지만, 장유가 죽은 후 시부모에게 불손하다는 다른 이유를 내걸어 결국 이혼시켰다고 한다.

환향녀들이 이렇게 사회 문제가 되자 인조는 청나라에서 돌아오는 여성들에게 “홍제원의 냇물(오늘날의 연신내)에서 목욕을 하고 서울로 들어오면 그 죄를 묻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환향녀들의 정조를 거론하는 자는 엄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핍박은 그치지 않았다. 특히 환향녀의 남편들은 이혼은 왕명 때문에 하지 않더라도 다른 첩을 두고 죽을 때까지 돌아보지 않는다거나 갖은 핑계를 대서 스스로 나가도록 유도했고,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들의 경우에도 스스로 자결하거나 문중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등, 수많은 환향녀들이 죽을 때까지 수모를 받았다.

화냥년 또한 ‘호로’와 마찬가지로 신계영이 속환사로 청나라에 들어가 포로 6백여 명을 데리고 돌아온 1637년을 생성 시기로 잡는다. 이후로도 많은 포로들이 도망치거나 속전을 내고 귀국했다.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나라가 얼마나 유약하고 인조왕이 얼마나 무능했으면  적들에게 침략을 당하고 적국으로부터 겁먹은 개소리를 듣는 문재인만큼 무능해서 국민이 당한 역사적인 치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