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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초 2010. 7. 15. 19:34

삼계탕이라고 하면 약병아리에 인삼.황기.대추.찹쌀 등을 넣고 푹 고아서 만든 음식을 가리킨다.

보통 삼계탕이라고 부르지만, 예전에는 백숙(白熟) 혹은 계삼탕(鷄蔘湯)이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문제는 삼계탕 또는 계삼탕  혹은 백숙과 관련된 조리법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조리서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670년(현종 11년)경 안동 장씨(安東張氏)가 쓴 <음식디미방>에는 주로 꿩고기를 이용한 음식이 나온다.

원래 17세기까지만 해도 음식의 재료로는 닭보다는 꿩이 더 높게 여겨졌다.

 

설날에 먹는 떡국의 국물도 꿩고기로 맛을 냈다.

왜냐하면 일반 가정에서 닭을 기르는 이유는 계란을 얻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꿩은 야생에서 자란 동물이라 매로 잡아 고기로 쓰기에 적당했다.

 

그러나 18세기가 되면서 닭고기도 음식의 재료로 보다 많이 사용되었다. 그만큼 양계 방식이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에 쓰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복날에 개고기를 파와 함께 푹 삶은 음식인 개장(狗醬)을 먹는데

거기에 닭고기와 죽순을 넣으면 더욱 맛이 좋다고 적었다,

 

심지어 아욱국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와 오이, 그리고 닭고기를 넣어서 먹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미역국에도 닭고기와 국수를 넣어 먹으면 복날을 보내는 데 좋다고 했다.

하지만 위 기록이 반드시 삼계탕과 관련이 있지는 않다.

 

삼계탕의 원조로 황계탕(黃鷄湯)을 꼽는다.

황계탕이란 음식 이름은 인조 임금 때의 상소문이 실린 <응천일록(凝川日錄)>이란 책에 나온다.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가 사경을 헤매자

인조는 1632년 음력 9월 7일에 신하들의 뜻에 따라 인목대비에게 황계탕을 잡수도록 하였다.

어떤 약으로도 차도가 없자 신하들이 제안한 약탕(藥湯)이 바로 황계탕이었다.

 

보통 황계탕이라 하면 두 가지가 있다.

누런 털빛을 띤 황계를 곤 국을 가리키거나,

아니면 약재인 황기와 닭고기를 푹 삶은 다음에 그 국물을 짜낸 것을 가리킨다.

황기의 약리성에 기대면 인목대비가 병중에 먹었던 황계탕은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