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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리샴의 새 책 '카미노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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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2020. 6. 24.

존 그리샴의 새 책 ‘카미노의 바람’(Camino Winds)은 ‘카미노 섬’의 후속작이다.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연결고리가 길지 않아 전편을 읽지 않고 보아도 된다. 카미노 섬에 허리케인 ‘리오’가 상륙하며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그 와중에 변호사 출신 추리 소설가 ‘넬슨 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카미노 섬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작가들의 대모 역할을 하는 주인공 ‘브루스 케이블’이 친구들과 그의 의문사를 파헤쳐 간다.

 

무능한 지역경찰이 그의 의문사를 사고사로 몰아가려고 하자, 브루스는 과거 고서적 도난 사건과 연류하여 이용한 적이 있는 보안회사를 고용하여 그의 죽음이 마지막으로 쓰고 있던 소설 때문인 것을 알아낸다.

 

미국에서는 65세 이상의 노인에게는 국민건강보험인 ‘메디케어’(Medi-Care)가 제공된다. 본인의 재정 능력에 따라 진료비를 일부 부담하기도 하지만 수입이 적거나 없는 경우에는 전액을 정부가 부담한다. 장기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경우에도 해당이 된다. 노인 인구 증가와 함께 요양병원은 큰 비즈니스다. 노인이 침대를 하나 차지하고 누워있으면 매달 정부에서 돈이 나온다.

 

책에는 실명 등의 심한 부작용이 있지만 노인의 심장을 계속 뛰게 하는 약을 이용하여 치매와 각종 질환으로 죽음에 이른 노인들을 살려 놓고 엄청난 돈을 버는 요양병원이 등장한다. 내부 고발자는 이 사실을 소설가 넬슨에게 알려 주고, 그는 이를 책으로 쓴다. 결국 그의 입을 막기 위해 청부살인이 저질러진다. 

 

우여곡절 끝에 악인들은 모두 벌을 받게 되고, 우리의 주인공은 석양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인다. 

 

이야기는 독자의 예상이 가능한 궤적을 따라가며 서스펜스나 반전이 부족하다. 뒤로 가면, 서둘러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도 받게 된다. 그럼에도 책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계속 읽게 된다. 독자를 끌고 가는 그의 탁월한 능력이다. 그의 묘사는 독자의 눈 앞에 재미있는 한 편의 '미드'를 틀어 놓은 것 같다.

 

그리샴의 책은 쉬운 영어에 단문 위주로 쓰여 있기 때문에 원서로 읽기에 적당하다.

 

그와의 인연은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가판대에서 집어 들었던 ‘펠리컨 브리프’(Pelican Brief)로 시작되었다. 어찌나 흥미진진하던지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앞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죽일 시간’(A Time to Kill)과 ‘회사’(The Firm)를 연달아 읽었다. 그 후, 그가 발표하는 책은 빼놓지 않고 읽었다.

 

그는 지난 30여 년 동안 전 세계 수십 개 국가에서 2억 5천만 부의 책을 팔았으며, 10여 편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세계 최고 소득 작가 6위에 오르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 추리소설 작가들 중에는 같은 주인공이 계속 등장하는 시리즈 물을 쓰는 이들이 많다. 주인공과 친해지는 면이 있긴 하지만 스토리 전개가 예측 가능하다는 단점도 있다. 그리샴의 책에는 새로운 인물, 다양한 스토리가 나와서 더욱 흥미로웠다. 게다가 문장이 쉬워 영어를 외국어로 배운 내게는 쉽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Painted House' 나 'Skipping Christmas' 같은 책들은 그가 얼마나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헌데 몇 년 전부터 그의 책이 예전과 같지 않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40-50년 지난 낡은 신문에 실린 과거의 사건을 가져와 적당히 살을 붙이고 포장을 해서 내놓는다. 이제 스토리가 바닥이 난 건가.

 

오래전 월간지에 실렸던 점쟁이 관련 취재 기사가 생각난다. 점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족집게처럼 잘 맞추던 점쟁이도 유명세를 타고나면 그 신통성이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취재기자는 점쟁이가 그에게 주어진 신기를 다 써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장편소설 한, 두 권은 쓸 수 있는 분량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소설가들은 이걸 더 늘려서 10-20권으로 쓸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어떤 소설가는 가장 쓰기 쉬운 것은 자신의 이야기지만 계속 쓰다 보면 바닥이 나게 되고, 그다음에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워와 쓰고, 그것도 끝이 나면 상상력을 동원해서 쓴다고 했다. 물론 작가들은 이 세 가지 부류의 이야기들을 적당히 섞어서 쓸 것이다.

 

존 그리샴의 이야기가 바닥이 난 것 같다는 느낌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닌 듯싶다. 지난 몇 년 동안 발표한 그의 작품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놓는 새 책을 펼칠 때면 설렘이 있다. 그가 풀어놓을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대단한 이야기꾼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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