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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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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2020. 11. 28.

'힐빌리'(Hillbilly)는 ‘촌뜨기’라는 의미로 미국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계층을 이르는 말이다. 미국의 중남부 시골은 한국의 시골보다 훨씬 더 낙후되어 있다. 흔히들 미국인들은 기회를 찾아 자유롭게 자리를 옮기며 사는 것 같지만 자기가 태어난 고장에서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마치 한국에서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골을 이루어 살던 것처럼, 이들은 인척들이 무리를 지어 산다.

 

발전이 없는 지역사회에는 기회도 없다. 아이들은 일찍부터 술과 담배를 배우고, 여자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기도 한다. 남자아이들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란 군대에 가는 것이다. 대다수의 미군은 이런 지방 출신들이다.

 

무대는 1997년 미국 켄터키주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주인공 J.D. 에게는 열세 살에 임신을 하여 도망치듯 고향을 떠났던 엄마 ‘베브’와 누나가 있다. 간호사인 베브는 수많은 남자와 사귀며 병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여 약물중독에 빠진다.

 

그녀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알코올 중독과 가정폭력을 보며 자랐다. 공부를 잘했지만 아무도 그녀를 이끌어 주지 않았다. 책이 필요해도 도서관에 데려가지 않았고, 대학에 가도록 밀어주지도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망가진 인생을 어머니 탓으로 돌린다. 어린 나이에 낳은 자녀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실패하고 만다. 

 

J.D. 는 베브가 새로 만나 결혼한 남자의 집에 들어가 살며 비행 청소년인 그 집 아들의 영향으로 나쁜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한다. 사고를 쳐 경찰에 체포될 위기까지 이르게 되자 외할머니가 중재에 나선다.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키운다.

 

할머니 역시 가난하다. 정부에서 배달해 주는 노인 식사로 끼니를 잇고 있다.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다시 공부를 시작한 J.D. 는 오하이오 주립대를 나와 예일 법대에 진학하여 신분 상승을 이룬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J.D. 가 처했던 암담하고 처참한 환경을 보여 준다. J.D. 밴스가 쓴 동명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그는 2013년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쓴 이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영화는 불행한 성장 환경을 딛고 성공한 그의 과거를 미화하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가난한 백인 노동자 계층이 처한 무기력한 상황을 보여 준다. 뉴욕타임스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책으로 꼽기도 했다.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엄마 ‘에이미 애덤스’와 외할머니 ‘글렌 클로스’, 두 배우의 연기가 훌륭하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실제 주인공들의 사진이 나오는데, 역을 맡았던 배우들이 실존 인물들과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가족이 무엇인지, 가족을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영화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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