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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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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2021. 2. 23.

소비를 미덕으로 삼는 자본주의 사회 미국에서 은퇴한 노인들이 받을 있는 국민연금은 소셜 시큐리티다. 공무원이나 교사들은 별도의 연금이 있고, 회사에 따라서 개인연금인 401K를 주기도 하지만,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65세에 은퇴하며 받는 국민연금의 평균치는 월 $1,321인데, 조기 은퇴를 해서 미리 받게 되면 그 액수가 줄어들어 $1,130를 받는다고 한다.

 

영화 ‘노마드랜드’(Nomadland)는 경기침체와 불황에 직장을 잃고 집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노동자들을 취재한 동명의 논픽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은퇴 나이의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은 오랜 세월 남편과 함께 일했던 네바다의 광산이 문을 닫으며 실업자가 된다. 남편은 얼마 전 죽었고, 모아 둔 돈도 없는 그녀는 낡은 밴을 타고 직장을 찾아 길을 떠나게 된다. 직업소개소에서는 그녀에게 조기 은퇴를 권유하지만, 그녀는 채 $600가 되지 않는 돈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마존 창고에서 임시직으로 일을 하며 겨울을 난 그녀는 동료였던 ‘린다’의 초대로 애리조나 사막을 찾게 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돈 없이 떠돌이로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서 길 위의 생존 요령을 배우게 된다.

 

RV 캠프장에서 일을 하며 ‘데이비드’(데이비드 스트러세언)를 만난다. 그가 갑자기 아프게 되자, 그를 병원에 데려다준다. 그 후 사우스 다코타의 식당에서 함께 일하게 된다. 어느 날 데이비드의 아들이 찾아와 아내가 임신했다며 집으로 오라고 한다. 펀은 주저하는 데이비드에게 손자를 보러 가라고 한다. 함께 가자는 그의 초대는 거절한다.

 

펀은 비트를 추수하는 작업장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어느 날 차가 고장이 난다. 수리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하지만, 돈을 구하지 못해 결국 동생의 집을 찾아간다. 동생은 돈을 빌려주며 왜 그녀가 가족을 떠났으며, 남편이 죽은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가를 묻지만 펀은 대답하지 않는다. 데이비드를 찾아 간 그녀는 그가 가족 곁에 남기로 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집에는 별채가 따로 있고 가족들에게도 이미 말을 해두었다고 속내를 고백하며 그녀를 잡으려 하지만, 며칠 후 그녀는 다시 길을 떠난다.

 

그녀는 다시 아마존의 임시직 일을 하고, 애리조나의 떠돌이 여행자 모임에 간다. 지난해 여행에서 만나 도움을 받았던 ‘스웽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떠돌이 여행자 모임을 조직한 ‘밥’은 떠돌이들에게 이별은 끝이 아니고, 언젠가 길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라고 말한다. 

 

펀은 밥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녀에게는 자식이 없으며, 죽은 남편이 광산촌 '엠파이어'를 너무 좋아해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아 그를 떠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남편은 죽고, 광산이 문을 닫자 비로소 그녀는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대단한 이야기가 있는 영화는 아니다. 줄거리나 대사보다는 화면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전해준다. 나이 든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며, 노후대책으로 모아놓은 돈이 없으면 결국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죽음을 앞두고 아쉬워하는 일 중의 하나는 더 많은 곳을 여행하지 못한 것이다. 많은 노인들이 은퇴를 하고는 RV를 사서 여행을 한다. RV에서 살며 철 따라 동서남북을 오가며 산다. 고급 RV에는 집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욕실, 부엌, TV와 냉장고는 물론 세탁기까지 갖춘 RV 도 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까지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떠돌이들이 타고 다니는 차는 그런 RV 가 아니다. 개조한 밴이나 트럭에 캠핑용 버너와 물통, 아이스박스 정도만 싣고 다닌다. 변기 대신 뚜껑이 달린 5갤런 버킷을 사용한다. 이들은 집을 등에 달고 다니는 거북이나 달팽이 같은 인생이다. 이렇게 다니다가 차가 고장이 나서 더 이상 타고 다니지 못하면 홈리스로 전락하는 것이다.

 

가난한 중남미에서는 오늘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이 겨울 온기 없는 밴 차에서 낡은 슬리핑백에 몸을 눕히는 떠돌이 인생들이 있는 곳이 오늘의 미국이다.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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