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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남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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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2021. 4. 17.

한 가정의 가장이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가족은 망연자실하게 될 것이다. 하물며 다정하고 약속을 잘 지키며 늘 가족에게 따뜻하던 사람이 낯 모르는 여자와 자살을 했다면, 그 가족이 겪게 될 충격과 상실감은 훨씬 더 클 것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장편소설 ‘안녕 시모키타자와’는 그렇게 아빠를 잃은 주인공 ‘요시에’와 그녀의 엄마가 서로를 위로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밴드 멤버였던 요시에의 아빠는 남몰래 사귀던 여자와 함께 죽었다. 의도한 동반자살은 아니고, 그녀가 몰래 술에 넣은 약을 먹고 함께 죽은 것이다. 아빠를 잃은 요시에는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나 홀로 시모키타자와로 간다. 시모키타자와는 실제 존재하는 지역이며 도쿄의 홍대 거리라고 한다.

 

그녀가 겨우 자리를 잡고 일상을 되찾았을 무렵, 외로움과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엄마가 찾아와 단칸방에서 그녀와 함께 지내게 된다. 엄마는 그녀와 살며 훨씬 자유로워진 모습을 찾아가고, 요시에는 일하는 식당을 자주 찾는 손님인 ‘신야’에게 호감을 느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녀는 아빠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들을 알게 된다. 아빠와 함께 밴드를 했던 ‘야마자키’ 아저씨를 통해 아빠의 감추어진 이야기를 추적하며 그녀는 조금씩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간다.

 

엄마는 집에 있던 물건을 하나씩 요시에의 단칸방으로 옮겨오고 아르바이트도 시작하며 그녀 나름의 일상을 찾아간다. 두사람은 마지막으로 아빠의 사진을 가져오며 다시는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게 될 것을 예감한다.

 

신야와 가까워진 그녀는 마침내 그와 섹스를 하지만, 그들의 인연은 거기가 끝임을 안다. 여자를 능숙하게 다루는 그에게서 자신은 그가 좋아했던 많은 여자들 중 하나임을 느낀다.

 

아빠 일로 가끔 야마자키를 만나고 전화를 하며 요시에는 그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아빠의 친구이기는 하지만 아빠보다는 나이가 어리고 외모도 훨씬 젊어 보인다. 어쩌면 그녀는 중년의 야마자키에게서 아빠에게서 받았던 보호와 포근함을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이혼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와 함께 아빠가 연인과 동반 자살한 장소를 찾아가 부적과 아빠의 부서진 전화기를 땅에 묻고 돌아오던 날,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녀의 청을 간곡히 거절하던 그는 결국 그날 밤 그녀와 자게 된다. 젊은 여자를 품에 안고 싶은 욕망을 떨쳐버릴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요시에는 엄마에게 함께 아빠의 산소를 찾아 가지고 하지만, 엄마는 그럴 수 없다고 한다. 딸과 아내의 입장은 다르다고, 자신은 아직 그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책은 요시에와 엄마에게 펼쳐질 희망찬 미래를 예감하며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소설에 굳이 여성 또는 남성을 위한 책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뭣하기는 하지만, 이 책은 여성 독자들에게 더 어울리는 책이다.

 

책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오노 마이’의 삽화가 들어 있어 이를 보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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