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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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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2021. 5. 26.

나이가 들며 겪는 일 중의 하나는 나와 익숙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 곁에서 멀어져 가는 일이 아닌가 싶다.

 

시작은 몇 년 전 내가 20년이나 단골로 다니던 자동차 정비소의 주인 ‘밥’이 갑자기 사라진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10-15만 마일이나 된 10년도 넘은 낡은 차들을 마음 놓고 타고 다녔던 것은 순전히 그의 덕이었는데, 어느 날 가보니 자리에 없었다. 아파서 병원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웃집 주유소 주인에게서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암을 너무 늦게 발견했다고 한다. 그 후 지금까지 나는 새로운 정비소를 찾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딜러에 다니고 있다. 

 

두 번째 이별은 내 주치의였다. 그는 머리가 빠져 훤하게 드러난 이마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머리숱이 많아졌다. 물어보니 머리카락을 심었다고 한다. 그 후 몇 차례 더 시술을 받더니 나보다도 숱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얼마 후, 은퇴를 준비한다며 진료시간을 확 줄여버려 약속을 잡기가 힘들어지더니 결국 병원 일을 그만두었다. 할 수 없이 주치의를 새로 선택해야 했다. 3년 전의 일이다. 새로 만난 주치의와는 이제 조금 친해졌다. 

 

10여 년째 나와 아내의 치아를 관리해주던 치과의사 ‘닥터 먼델’과도 인사 없이 헤어졌다. 조금은 퉁명스러운 듯, 친절과는 거리가 먼 것 같던 그는 알고 보니 욕심 없고 배려심 많은 노인이었다. 그 덕에 치아건강은 별문제 없이 지켜왔는데, 얼마 전 그동안 코로나로 1년 넘게 미루어 오던 치과를 방문했더니 은퇴를 했다는 것이다. 

 

한국말을 아주 썩 잘하는 새로 만난 치과의사는 보자마자 보험으로는 커버되지 않는 미용치료를 권하는 것이 아닌가. 다음 약속을 잡으며 다른 의사로 바꾸어 간단한 치료를 마쳤다.

 

최근에는 18년째 우리 집 마당을 관리하던 가드너 ‘호세’에게 버림을 받았다. 처음에는 혼자 다니던 그가 조수를 데리고 다니더니 언제부턴가 자기는 오지 않고 일꾼들을 보내곤 했다. 한 달에 2번 오더니, 3주에 한번, 가끔은 내가 연락을 해야 겨우 오곤 했다. 이달에도 와야 하는 날에 오지 않아 연락을 하니, 이제 바빠서 올 수가 없으니 다른 사람을 구해보라고 한다. 그동안 비즈니스가 커져 이제 작은 일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섭섭하긴 해도 사업이 잘되어 그만두는 것이니 나도 기분은 좋다.

 

옆집에 오는 가드너를 쓰기로 했다. 오늘 처음 왔는데, 제법 깔끔하게 잘 치우고 갔다. 그도 나이가 좀 있어 보여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걱정이다.

 

나는 한번 마음을 준 사람과의 인연은 오래도록 이어간다. 영원할 것 같던 인연도 세월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하나 둘 떠나갈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진다. 나이가 드니 이제는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것에 기대고 싶은데, 등을 기댈 터전은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이래서 사람은 모두를 잃고 난 후에는 별 아쉬움 없이 죽음을 맞게 되는 모양이다. 

 

자꾸 떠나지 말고 내 곁에 좀 남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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