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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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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2021. 6. 1.

나는 활어회보다는 생선을 숙성시켜 먹는 사시미를, 사시미보다는 매운탕이나 소금구이를 좋아한다. 매운탕은 명태, 대구, 민어, 우럭 같은 담백한 생선이 좋다. 비린맛이 너무 강한 생선은 매운탕에 적합하지 않다. 생선 매운탕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생선 알과 내장을 넣고 끓인 알탕이다. 음식에도 유행이 있는 모양이다. 20여 년 전 LA에서는 알탕이 크게 유행했었다. 한식을 먹을 수 있는 집의 메뉴에는 꼭 알탕이 들어 있었다. 요즘은 알탕 먹기가 쉽지 않다.

 

모든 생선은 구워 먹으면 맛있다. 좋기는 연탄이나 숯불 같은 직화에 올려 굵은소금을 뿌려 구워 먹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생선구이를 먹을 때는 하루키 식으로 먹는다. 구운 생선 살에 와사비를 약간 묻혀 간장에 찍어먹는 것이다. 와사비가 생선의 비린 맛을 잡아 주고, 간장은 깊은 맛을 더해 준다. 싱싱한 꽁치나 고등어를 구워 이렇게 먹으면 한우구이보다 (미국에서 한우는 구할 수 없지만) 맛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무라카미 라디오’를 읽었다.  ‘anan’이라는 주간지에 1년 동안 연재한 50편의 짧은 글들을 모은 책이다. 잡지에 연재한 글들이라 2페이지 반 정도의 분량이지만 내용은 짧지 않다. 

 

하루키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기는 하지만 동시대 사람이며 외국에 나가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런지 그의 글에는 쉽게 공감하게 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김밥 양끝의 내용물이 다 튀어나온 부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 그럴까?” (김밥과 야구장, 57 페이지)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내에게 말하니 내용물이 많이 들어 있어 좋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가?

 

“나는 카메라를 향하는 순간 거의 반사적으로 얼굴이 굳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카메라 맨이 ‘예, 힘을 빼고 웃어 주세요’라고 해도, 나는 긴장해서 더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웃는다는 것이 사후 경직 예행연습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 (코트 속의 강아지, 64 페이지)

 

이건 완전히 내 이야기다. 결혼식을 앞두고 웨딩촬영을 했는데, 도무지 웃는 얼굴을 만들 수 없었다. 사진사도 지치고, 아내도 짜증을 냈지만 안 되는 일은 안된다. 웃는 얼굴이 훨씬 더 보기 좋다는 것은 나도 안다. 아내가 슬쩍 찍은 스냅사진 속의 나는 내가 보아도 그럴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언젠가 책을 내게 되면 쓰겠노라고 골라놓은 두 장의 사진도 아내가 나 몰래 찍어 놓은 것이다. 

 

하루키는 동물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 편안한 얼굴이 된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나는 평소에는 아침에 한 번 면도를 하는 정도이지만, 가끔 저녁 무렵에도 면도를 한다. 예를 들면 저녁 콘서트에 간다든가, 좀 중요한 사람과 식사를 한다든가 하는 경우다.” (저녁 무렵 면도하기, 71 페이지)

 

그는 이글에서 전기면도기와 면도기의 차이도 이야기하고 있다. 전기면도기로 면도를 하면 약간의 그루터기가 남는다. 매끈한 면도를 하려면 셰이빙 크림을 발라 면도기로 천천히 면도를 해야 한다. 공무원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매일 면도기로 면도를 했다. 딴생각을 하며 면도를 하면 얼굴을 베이기 십상이다. 나이가 들며 면도기를 쓰는 번거로움이 싫어 전기면도기를 쓰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칩거를 하며 수염을 길렀다. 4일에 한번 1밀리로 수염을 다듬는다. 

 

“나는 옛날부터 단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넛만은 예외로 가끔 이유 없이 무작정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도넛, 73 페이지)

 

나도 달지 않은 도넛을 좋아한다. 동부에서 시작한 던킨 도넛이 캘리포니아 주에 들어오기 전의 일이다. 한국에 나갔는데, 강남의 숙소 근처에 던킨 도넛이 있었다. 아침으로 사 먹은 도넛과 커피가 너무 맛있었다. 그 후 우리 동네에도 던킨 도넛이 문을 열자 서둘러 가서 사 먹었다. 결코 그런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지금도 커피와 도넛은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다. 

 

별것 아닌 주제를 가지고도 독자의 마음을 두드리는 하루키의 매력을 볼 수 있는 책이다.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고 유머 있는 글을 쓸 수 있는지 놀랍다. 그러니까 하루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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