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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배기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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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2021. 8. 7.

작가 최민석은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 ‘윤고은의 EBS 북카페’의 월요일 고정 게스트다. 나는 그가 방송에서 소개하는 대부분의 책을 구해 읽었음에도 막상 그가 쓴 책은 읽은 적이 없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말처럼 인기 작가라기보다는 인기 방송인이 맞는 모양이다. 중고 책방에서 그의 책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권을 발견하고 무조건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읽은 책이 그의 에세이집 ‘꽈배기의 맛’이다. 

 

이 책은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로 2012년에 나왔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 후 내용을 수정하고 제목을 바꾸어 2017년에 새로 출판한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신문이나 잡지 등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에세이집을 낸다. 하물며 나도 20여 년 전, 2년 동안 장애인신문에 실었던 칼럼을 모아 책을 낸 적이 있다. 에세이를 쓰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다는 그는 매주 마감일을 정해놓고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모아 이 책에 실었다. 등단은 했는데 아직 작가로 잘 알려지기 전,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살기로 결심한 후 쓴 글들이다. 

 

방송에 나오는 그는 달변에 개그맨 버금가는 유머를 구사한다. 그의 글도 다르지 않다. 이렇게 써도 되나 싶지만, 전혀 거칠거나 천박하지 않다. 최민석의 냄새가 배어있는 글들이다.

 

그는 미리 쓰는 유서에서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권하고 있다. (85-86 페이지)

 

“글을 쓰기 바란다. 멍하게 지내기 바란다.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하기 바란다. 음악을 듣기 바란다. 돈은 적게 벌기 바란다. “

 

난 전적으로 그와 같은 생각이다. 우리는 매일 잠을 자고 밥을 먹듯이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어 나의 잘, 잘못을 보게 되며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가끔 멍하게 지내는 것도 비슷한 효과가 있다. 기계가 계속 돌면 열이 생겨 결국 고장이 난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고 가끔은 작동을 멈추고 쉬게 해 주어야 한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돈은 적게 버는 것이 좋다. 돈이 적은 사람의 돈 걱정은 쉽게 해결된다. 어쩌다 공돈이 조금만 생겨도 엄청 즐겁다. 돈 많은 사람들은 결코 돈으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의 돈 걱정은 결코 주변에서 쉽게 해결해 줄 수도 없다. 

 

그는 홍상수 감독과 그의 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136-139 페이지)

 

“홍 감독의 놀라운 점은 현실과 영화를 솜씨 좋게도 은근슬쩍 버무려버린다는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 세계를 한 줄로 설명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별것도 아닌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적당히 엮어 나를 그 속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바로 그의 영화다. (나는 홍상수 영화의 팬이다.)

 

그리고 학창 시절 여학생과의 미팅을 이야기한다. (174-179 페이지)

 

"우리의 앞에는 향이 그윽한 브라질 산 커피, 따위는 물론 없었고, 콜라와 감자튀김, 햄버거만 있었다."

 

방학을 맞아 머리를 기르고, 아직도 짧은 머리에 물을 말라 넘겨 빗고, 빵집에서 여학생과 마주 앉았던 기억을 가진 세대라면 잊고 지내던 옛일을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다. 아마도 어떤 세대는 소보로빵과 팥빵을, 또 다른 세대는 찐빵을 앞에 놓았을 것이다. (요즘 세대는 무엇을 앞에 두나?)

 

제목처럼 이 책은 딱 꽈배기 같은 맛이다.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가끔은 생각나는 맛. 토스트처럼 매일 먹을 수는 없지만, 생각이 나면 좀 멀더라도 찾아가서 사 먹게 되는 맛.

 

(한국의 독자들이라면 이 부분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내가 사는 남가주에서는 꽈배기 먹기가 쉽지 않다. 미국 도너츠 가게에도 꽈배기 비슷한 모양의 빵이 있긴 한데, 맛은 완전히 다르다. 한국식 꽈배기를 먹으려면 차를 타고 20마일쯤 달려 한인타운에 가야 겨우 먹을 수 있다. 아, 먹고 싶다, 꽈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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